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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윤 Aug 16. 2021

제주 한 달 살이 (2)

2021년 8월 15일 일요일, 아침과 마음

  나를 잘 다스리고자 아침 루틴을 만들었다. 일어나자마자 물 한 컵 마시고, 명상하고,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을 쓰고, 읽고, 독서하고, 몸과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쓰고, 스트레칭이나 운동하는 일. 줄글로 쓰고 나니 방대한 양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글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각 십 분 내외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다지 부담되는 일은 아니었다. 당장 오늘부터 이 루틴을 지킬 생각에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정도였다.


  명상의 도움을 이미 받아 봤던 적 있는 터라 더 기대됐을 수도 있다. 여러 계기를 통해 저번 달부터 비건을 다짐하고 실천하고 있는데, 비건 관련 영상을 보다 보면 꼭 마음공부 영상이 추천 동영상에 자리했다. 평소 같았으면 흥미 없는 주제라며 눈길 주지 않았을 텐데 어쩐 일인지 관심이 갔다. 그리고 삶이 변화했다. 그동안 왜 그렇게 나를 다스리려 하지 않았나 싶었다.


  많은 명상 영상에서 그런다. 생각은 생각일 뿐, 내가 아니라고. 외부의 것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고 어찌할 이유 없지만, 내부의 것(마음)만큼은 내가 다스릴 수 있다고. 이 말로 나를 통제하는 법을 배웠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려 하면 그런 생각을 하는 주체가 나이니 생각이 들지 않게 할 수 있는 것도 나라고 생각하고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다. 명상은 이 단련을 더 지속 가능하게끔 도왔다.


  명상으로 아침을 시작하니 부정적인 기운을 치워 두고 살게 됐다. 내가 자주 듣고 있는 인디 모음곡을 틀어 놓고 되고 싶은 내 모습을 그렸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가볍고 자연스러워진 모습. 주어진 삶에만 안주하며 살지 않고 노력해 본 적 없던 방향으로 노력하여 새로운 세계와 먼 미래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모습.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사랑을 표현하며 부정적인 관계에 대한 잡념을 떨치는 모습. 나의 동심으로 원하는 모든 것들을 배우는 모습. 몇 년 뒤의 내가 되고 싶은 모습 이런 것 없는 줄 알았는데 잘만 적혔다. 이렇게 되고 싶었고, 될 것만 같았다.


  계획했던 루틴을 마치고 나니 낮이었다. 냉장고에 재워 둔 오버나이트 오트밀을 먹고 숙소에 구비되어 있던 핸드 드리퍼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천천히 가는 것. 커피콩을 갈고, 뜨거운 물을 여러 차례 천천히 붓고, 추출되는 커피를 천천히 바라보고, 잔으로 옮기기 전에 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 잔을 천천히 데우고, 천천히 내린 커피를 천천히 마시는 일. 몸을 천천히 움직이는 것으로 마음도 천천히 흘렀다.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커피를 마시곤 유정에게 줄 선물을 찾아 시내로 나섰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친구에게 확실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유정은 예상치 못한 때에 엽서와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책갈피를 만들어 선물했다. 언젠가 오로라를 같이 보고 싶다는 말에 오로라를 전시한 전시장에 앉아 있는 내 사진을 보냈더니, 그걸 수채화로 그려 책갈피를 만들어 줬다. 유정은 늘 나와 가 보고 싶다는 곳이 많았고, 그중 하나는 애월이었는데, 이번 제주행을 들었을 때는 애월에서 자기 생각을 얼마나 해 줄 거냐고도 물었다. 귀여운 질문에 애월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 줘야지 생각했지만 애월에 가기 전부터 유정에게 마음을 전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소품샵에서 예쁜 오로라가 담긴 것 같은 와인잔을 구입했다. 유정을 닮은 엽서도 한 장 구매하고, 그려 준 책갈피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오로라를 담아 보낸다 적었다.


  2020년의 제주에서 나를 가장 편안하게 만들었던 무상찻집에 재방문했다. 여전히 차분하고 친절한 공간이었고, 분위기는 같은 분위기의 사람을 불러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차분하고 친절했다. 말소리가 조용해서 헤드폰을 끼고 차단할 필요 없었다. 차를 다 마신 뒤에는 모든 손님들이 트레이를 자리에 두지 않고 사뿐사뿐 걸어 나와 사장님 앞으로 내어 두었다. 사장님은 "아이구, 감사합니다" 하며 배웅해 주었다. 모두 다정했다.


무상찻집의 도라지차와 곶감단지


  근처에서 귀여운 티셔츠를 한 장 사고, 찾아 뒀던 제주 비건 지도에 수록된 밥집에 갔다. 따끈하고 쫀득한 밥알을 입에 넣고 싶어 연잎밥을 시켰고, 내어 주신 반찬이 모두 끝내주게 맛있어서 한입 한입을 소중히 생각하며 씹었다. 잘 지은 밥에서는 이렇게 단맛이 난다는 걸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그동안 돌려 먹던 간편 밥과는 차원이 달랐다. 휴대 전화를 들어 구매 목록에 간편 밥을 삭제하고 쌀을 추가했다.


  아침이 좋았더니 하루가 좋았다. 잠들기 전에 유독 나와 잘 맞는 타로 유튜브를 봤는데, 이번 주의 에너지가 좋단다. 스트레스받을 일이 생기더라도 내 에너지가 좋기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그랬다. 역시 명인이시구나 생각하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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