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8일 토요일, 잡지
벅찬 감동을 느껴서 뮤지컬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잡지를 좋아하게 됐다. 단번에 깊이 빠졌다. 지난주 독립서점에서 구입했던 Bear 매거진이 계기람 계기였다. 사람이 궁금하고 예술적인 배치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 잡지는 완벽한 해소로 느껴졌다. 그런 잡지가 하루 종일 보고 싶은 날이었다. 동문시장 근처의 <종이 잡지 클럽>을 찾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의자에 꼭 붙어 앉아 잡지만 읽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사장님께서 내 취향의 책을 물어보신 뒤 취향 기반의 책을 다섯 권이나 가져다주셨고, 둘째, 의자가 너무 안락했고, 셋째, 모든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가 분명하게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중인 나와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궁금했다. 그 사람들은 어느 규모의 집에 살고, 어디까지 포기하고 어디까지 포기하지 않는지, 업무 환경이 분리되지 않는 삶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는지에 대한 잡지가 눈길을 끌었다. 가장 먼저 집어 읽기 시작했다. 제각각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사는 곳도, 형태도 모두 달랐다. 일과 삶의 경계를 따로 두지 않는 사람은 집 정가운데에 업무용 테이블을 두었고, 세상사와 단절된 자신만의 공간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노 와이파이 존’ 방을 따로 만들어 두기도 했다. 오롯이 자신을 기준으로 가구를 배치하고 삶의 중심을 두는 것. 그것이 집의 가치인 것 같았고 나는 서울에서 그렇게 살고 있느냐 고민해 보면 아니라는 답이 나왔다. 집은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게 하지만 그만큼 포기하게도 하는 곳이니까. 나는 강아지와 가족을 택하고 내 삶의 중심을 집에 맞추었다. 독립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내가 서울에 돌아간다면 제주에서처럼 일어나자마자 명상하고 차를 우릴 수 있을까. 나를 바로 세워야 가족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던 차에 사장님께서 잡지를 한 아름 안고 오셨다. 인터뷰집을 선호한다는 말에 인터뷰집으로만 다섯 권을 들고 오셨고, 각각의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나는 모든 것들에 이유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잡지를 추천받는 그 시간이 좋았다.
“이건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강화길 님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인데요. 다른 부분은 안 읽어 보더라도 이 부분은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잡지만큼은 직접 펼쳐 주셨다. 그 부분만 오래 펴 두었는지 이미 펴진 지 오래돼 보였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다는 것, 그 소설가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를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는 것, 다른 부분은 아니더라도 이 부분이라도 읽어 봤으면 좋겠다 말할 수 있다는 것, 좋아하는 것이 이미 티 나고 있었다는 것. 잡지의 내용을 떠나서 추천받는 그 모든 과정들과 느껴지는 감정들이 좋았다. 내가 잡지를 좋아하는 이유와 닮아 있어서 그런지 더 좋았다. 세상에는 확실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나는 잡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잡지마다의 레이아웃이 다른 것이 좋고, 잡힌 각이 좋고, 통일된 색감과 행간에 눈이 편안한 것이 좋다. 독립 잡지들 특유의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느낌은 더 좋다. 그중에서도 인터뷰집이 가장 좋다. 세상에 얼마나 재미있는 생각을 하며 사는 멋진 사람들이 많은지 알 수 있고,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가장 자연스러운 때에 뱉은 가공 없는 멋진 말들을 책을 통해 만나 볼 수 있으니까. 책 한 권으로 사람 열 명을 새로 아는 기분이다. 그것도 아주 멋지고 단단한 사람들을.
멋진 사람들을 잔뜩 만난 뒤 근처 프라이탁 매장에서 귀여운 카드지갑을 구매했다. 그리고 귀여운 직원을 만났다. 목에 걸린 카메라를 보고 그녀는 기종이 무엇이냐, 자신은 필름 카메라를 쓰는데 새로운 카메라를 알아보는 중인데 궁금하다,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느냐 물었고, 나는 사진들과 이 카메라를 잘 쓰고 있는 이유를 읊었다. 내 손목의 애플 워치를 보고 스트랩도 예쁘다고 그러기에 구매처를 알려 드렸다. 좋아하는 것이 확실한 사람들을 잔뜩 만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