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산책
야트막한 뒷산 뒷길로 오르기를 좋아한다. 선물 받은 소설책 한 권, 닳도록 읽고 있는 시집 한 권 슬링백에 넣고 쉼터까지 오른다. 한 손에는 쌉쌀한 카카오 맛이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랑달랑. 들어 올릴 때마다 구슬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벤치에 앉아 한쪽 다리 꼬고 무릎 위에 책 올려 읽는다. 일렁이는 햇빛은 책 말고 자기 좀 보라고 투덜대는 귀여운 방해꾼 같다.
한적한 뒷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말소리도 차분하다. 주로 배경이 되는 소리는 발소리와 숨소리. 오 분이면 오르는 짧은 언덕인데도 헥헥하는 소리가 멈추질 않고, 가끔 어른들은 강아지 같지, 나는 뭐 그런 생각. 앉아만 있어도 풀잎 짓이긴 향이 난다. 집에서 만났다면 질겁할 만한 벌레가 신발 위를 기어 다녀도 허공에 발차기 몇 번 하고 만다. 참매미 소리와 비실거리는 산모기가 지나갈 여름을 붙잡고 있다.
오늘 해 세던데. 그늘 있어? 너는 다정하게 묻는다. 햇빛 쨍쨍해도 산은 시원한 데가 있더라. 가만히 있으면 시원하다는 어른들 말씀 다 산 때문에 나온 게 분명해. 나는 거실 한가운데에 앉아 부채질하던 할머니를 생각한다. 아무튼 나 지금 너무너무 행복해. 답장하는 사이 벌레 먹은 낡은 잎사귀 몇 장 떨어지고. 책갈피로 쓸까. 들어 올려 보고. 몇 모금 안 남은 커피를 다시 쪼록. 안화한 한낮이 바스락바스락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