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회고록
작년 회고록에서 나는 세상이 악의 투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런 생각까지 도달했다. 아, 이럴 때 사람들이 죽으려고 하겠구나. 지금 죽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이럴 때 삶을 포기하고 싶어지겠구나. 그래도 마지막 문단에서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며 희망을 꿈꾸기도 했다. 어떻게든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게 끄나풀 같은 희망을 붙잡고 24년의 끄트머리에 선 나는, 비관적이지만, 이러다 갑자기 죽어도 상관없겠다는 곳까지 생각이 닿았다.
24년은 침체기였다. 나는 정체되어 있었고, 내 모든 상황은 안 좋은 쪽으로 흘렀다. 이직한 회사는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희망퇴직을 신청받았다. 전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고 겨우 마음을 다잡은 지 1년도 안 됐던 때였다. 내가 의지하던 사람들은 대거 퇴사 의사를 밝혔다. 이 회사가 나의 지난 5년간의 고통을 겨우 회복시켜 주고 있다 생각했었는데, 나의 은신처는 어느 곳에도 없다고, 아직도 미련하게 그런 것을 꿈꿨냐고 무참히 짓밟히는 기분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에게 좋은 선택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희망퇴직을 할지, 안 할지 적어 내야 하는데, 좋은 선택 그딴 걸 고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해서 퇴사만이 그나마의 살길이라 생각했다. 그래 나는 너무 지쳤지. 뭐든 좋은 선택 같은 건 없을 테니 당장의 쉼을 찾아 떠나는 게 맞아. 하지만 팀 리더는 나의 현실을 걱정하며 퇴사를 만류했다. 나는 좆같게도 전세 사기에 휘말리고 있었으니.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잔류한다는 건 나에게 꼭 상처 부위를 난도질하며 살아가라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래서 정말 남아 있기 싫었는데. 이것만이 나의 살길일까, 오히려 최악이지 않을까, 하염없이 울며 고민하다 나는 결국 잔류했다.
전세 사기. 끝까지 아니겠지, 아니겠지 생각하던 그걸 내가 당했다. 집이 압류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이사를 앞두고 왜인지 불안한 마음에 우리 집 등기부 등본을 떼 보니 압류가 걸려 있었다. 급하게 부동산, 대리인,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나는 급해 죽겠는데 다들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며 나를 달랬다. 세금 800만 원 그거 금방 납부하실 거고 압류 풀리면 문제없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구청 부동산과에 전화하고 개지랄 떨어서 겨우 풀린 압류는 풀리자마자 다른 세금 문제로 다시 걸렸고 우리 집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주인은 연락조차 안 되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때 관리인이라는 사람이 나와서는 지금 새로 올리고 있는 빌라가 있으니 거기 세입자들이 들어올 때까지만 계약을 연장해 달라 그랬다. 너는 어디서 나온 놈인지 모르겠고 씹구라 같았다. 하지만 힘없는 나는 별다른 방도가 없어 계약을 연장했다. 연장 과정에 있어 감사하게도 이모부께서 그 관리인을 죽일 듯이 협박하여 보증금 중 이천만 원은 먼저 받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나머지 보증금 반환을 계속 독촉하였으나, 돌아오는 말은 한 달만 기다려 주세요, 한 달만 더 기다려 주시면 진짜 드릴 수 있습니다, 저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달이면 백 퍼센트 들어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저도 한 달은 약속을 못 드리겠고 두 달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2월부터 11월까지 말도 안 되는 사기꾼의 희망 고문에 시달리다, 결국 그 사기꾼은 돈을 주겠다던 날에 감방에 수감됐다.
수감돼서 다행인 것 같은가? 수감되면 뭐하나. 나한테 돌아오는 돈이 없는데. 미련하게도 나는 우리나라 법이 나를 어느 선까지 당연히 구제해 줄 줄 알았다. 보증금은 당연히 돌려받는 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더 좆같은 나라에 살고 있었다. 법은 피해자를 구제해 주지 않는다. 피해자는 구제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갖가지 서류로 입증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런다고 해서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은 피해액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러니까 잘 알아봤어야지, 그러겠지. 그런데 솔직히 사회생활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회 초년생이, 부동산 계약하러 가서 “이거 위험한 것 같은데요” 하니까 “제대로 공부 안 하셨어요? 이만큼 안전한 매물 없는데요. 의심되면 저 신고하시든가요”로 쏘아붙이는 사기꾼을 어떻게 이겼겠는가.
내가 전세 사기를 당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처음으로 나의 선택을 후회하게 됐다는 것이다. 살면서 후회할 만한 선택을 한 적 없었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다면 나의 책임인 것이고 그 안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모든 선택을 아꼈다. 하지만 전세 사기는 달랐다. 대학생 때부터 일찍 취업해 가고 싶던 유럽 여행도 안 가고, 아끼고, 권고사직 당한 채 아버지를 여의고도 쉴 틈 없이 바로 다시 취업해 악착같이 모은 내 1억. 그게 순식간에 날아갔다.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그때 내가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이런 생각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는데 올해 내가 미친 듯이 한 게 그거다. 내가 그때 부동산에서 사기 치는 미친 새끼 모가지를 땄더라면. 그때 계약 안 했더라면. 다른 부동산에서 전화 왔을 때 그 부동산 말을 들었더라면. 조금이라도 일찍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집주인이 빈털터리 되기 전에 미리 방을 뺐더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비관적인 상황 그 자체만의 힘듦도 있었지만, 사실 힘든 소리 듣는 게 더 괴로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겨우 마음을 잠재운 채 인생 2막 살아 보자 마음먹고 잠들면, 사기꾼이 사기 친 빌라 단체 채팅방 속 100명의 피해자들이 욕하고 비관하는 메시지를 보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해야 했다. 일말의 정보를 놓칠까 봐 단체 채팅방에 들어갔지만, 내가 얻는 것은 삶을 저주하게 되는 어떤 방식 같은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으니 개인회생을 신청한다고, 집주인 죽여 버리고 싶다 한다. 어떤 사람은 새벽부터 집주인의 집 앞에서 집주인이 나오길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집주인의 문에 포스트잇으로 협박 편지를 붙인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건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이제 세입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하세요 같은 말들. 나도 내가 모은 돈만으로는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 결국 엄마에게 손 벌렸다. 엄마, 나 신용불량자 될까 봐 무서워. 조금만 도와줄 수 있어? 집주인이 다음 달이면 진짜 줄 수 있대. 조금만. 엄마는 나더러 그 말 믿지 말라 한다. 몇천을 계좌로 보내 준다. ‘사랑한다’는 입금명으로.
나는 죄인 된 기분이 된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는 나를 많이 걱정했다. 불안하니까 본가로 들어오라 그러면서, 엄마도 나와 비슷한 때에 엄마 잘못 하나 없이 수억을 갑자기 잃게 됐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쩌면 나는 엄마와 같은 길을 걷는 걸까. 삶은 모두에게 주어진 형벌이고 나는 오직 죗값을 치르러 온 죄인인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 하루를 보내더라도 해결되지 않은 내 상황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고 삶을 비관하게 됐다. 지긋지긋했다. 끝나지 않는 싸움 같은 거. 나는 늘 해결하려 하는 쪽이었는데 잘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지. 내 슬픔을 공감해 줄 사람도 없지.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한테는 미안한 마음만 들지. 그렇게 나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깨닫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삶은, 나를 가만히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상담, 사랑, 우정이 나를 살렸다. 삶이 필요하지 않다 생각되던 순간들에도 앞선 세 가지로 나는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을 많이 인정하며 한 해를 보낼 수 있었고, 그동안 깨달을 수 없었던 나의 특징을 깨닫게 되었다. 여과 없이 나열해 본다.
나는 어려운 개념은 대충 알아보고 이 정도면 괜찮지 하는 성정을 지녔는데, 이것은 결국 큰돈을 잃게 한다. 큰돈을 쓸 때는 무조건 공부하고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사기꾼은 약자를 멍청한 사람인 것처럼 밀어붙이며 사기 치려 한다. 우리나라는 사기꾼이 살기 좋은 나라다. 현재의 슬픔과 괴로움보다 무조건 큰 괴로움이 있고 예고 없이 닥친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발버둥쳐도 안 되는 게 분명히 있다. 무력하게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나는 삶에 굴곡이 없는 사람이 싫다. 나는 버림받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 나의 수많은 불안은 어린 시절 부모의 영향이 크다. 엄마와 친한 줄만 알았는데 영향받은 일이 많았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린다. 나는 질투와 독점욕이 있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다. 나에게는 문학적 소통이 가능한 연인이 필요하지 않다. 나는 사랑을 좋아한다. 나는 미운 사람도 웬만해선 결국 좋아하게 된다. 순간의 선택은 내 삶을 크게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희망퇴직 안 하고도 잘 산다. 나는 집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집에서 나의 온갖 안정 욕구가 다 채워진다. 세상사 좆같아도 나는 무언가 계속 시도한다. 나는 내 취향에 확신이 있다.
나를 끊임없이 옭아매던 날삼재에도, 나는 디제잉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발굴했고 나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꾸준히 블로그를 썼고, 요가를 시작했고, 내가 얼마나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지 느꼈다. 작년 버킷리스트 일곱 개 중 네 개를 달성했다. 엄마의 도움과 나의 자금으로 대출을 상환했고, 빌라 단체 채팅방에서는 나왔으며, 경매 배당 요구 신청을 했고, 사기꾼의 시간 미루기 스킬 같은 건 들을 일도 없고, 배당금을 기다릴 일만 남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가 왔다. 25는 내가 좋아하는 숫자이고 올해 나의 생일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25525라는 아주 아름다운 숫자로 이루어졌다. 애인과의 1주년에는 첫 만남 때 갔던 식당에 가야지. 더 늦기 전에 유럽 여행을 가야지. 근력 운동을 다시 열심히 해야지.
내가 좋아하는 나의 공간을, 그 안에서의 모닥불 같은 마음을, 나는 새로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