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현지 시각 오전 8시 55분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공항에 도착했다.
보통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하면, 모든 순례자들의 종착점이 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나의 출발점이라는 점이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5월 11일부터 18일까지 이스라엘에서 정치, 종교,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iTrek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어 내게는 2주가 채 안 되는 시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년 간 샌프란시스코에 있으면서 2년 전에 걸었던 순례길이 너무나 그리웠다. 엄마는 꼭 그렇게 두 번의 대륙이동을 해야겠냐며 차라리 미국에 더 남아서 이스라엘로 갈 것을 권하셨다. 나는 미국여행은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이유를 대었지만 실은 핑계였고 그 무엇보다 산티아고가 너무 그리웠던 것이다. 결국 이 고집불통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티아고까지 바르셀로나에서의 한 번의 경유를 통해 대륙이동을 하게 된다.
첫 순례길은 2023년 여름이었다. 36일 간 프랑스길 779km을 완주했는데 시간관계상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묵시아-피스테라 길'은 걷지 못하고 귀국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묵시아-피스테라 길을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고.
배낭 하나를 멘 채로 산티아고 공항에서 2유로를 내고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등산스틱을 꽂은 거대한 트레킹 배낭을 멘 순례자들으로 복작복작한 버스를 타니 그제서야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며 속으로 외쳤다.
'산티아고여, 내가 돌아왔도다!'
정작 버스에서 내리니 설레는 마음은 이미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 다다랐을 때는 평온하리만큼 덤덤했다. 사실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2년 전 프랑스길을 걸을 때, 순례길을 완주하고 성당 앞에 서면 눈물콧물 쏟으며 기쁨과 성취감에 취해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도 생각보다 덤덤했다. 이는 모든 순례자들이 순례길을 마치며 공통적으로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길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분명 한 번 깨달았던 사실인데 어쩌면 나는 그걸 바보처럼 또 잊어버린 채, 몸소 다시 깨닫고 싶어 이 길에 오른 것일지 모르겠다. 성당 앞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완주의 순간을 맞이하는 이들이 있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 영상과 사진으로 그 순간을 기록하는 사람들, 기둥에 기대어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날아온 '내일부터 순례자'였고.
2년 전 프랑스길을 완주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그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려나요. 지금쯤이면 우리 모두 이미 깨달았겠지만, 길은 끝나지 않죠.'
역시 나는 이 깨달음을 몸소 경험하고자 이곳을 다시 찾은듯 했다. 이날은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묵고 그 다음날 아침부터 걸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성당 주위를 맴돌며 유유자적하게 오후를 보냈다. 순례자 사무소에 가서 순례자 여권도 발급받고 가방에 달고 걸을 조개껍데기도 구매했다. 바에서 오랜만에 카페라떼가 아닌 카페 꼰 레체(cafe con leche)를 주문하니 기분이 묘했고 설레기도 했다.
*카페 꼰 레체는 스페인어로 우유가 들어간 커피라는 뜻으로, 카페라떼와 같다.
너무나 설렌 나머지, 다음날 알람도 없이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졌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다음화 예고] 장비가 없어서 쪼리로 순례길을 걸었다 (부제: 쿠팡 만 오천원의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