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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 그리고 숲 Aug 14. 2022

내가 좋아하는 사람

밉지 않은 고집, 취향

 과유불급이지만 나는 적당한 고집이 있는 사람이 좋다. 다른 말로 하면 취향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 언젠가, 어떤 이가 나에게 싫어하는 사람의 유형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는데 난 그때 줏대가 없는 사람, 취향이 없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마도 10년 전의 나는 배려심이 없는 사람을 싫어했는데, 살다 보니 ‘배려’만큼 주관적인 기준을 갖는 단어도 없더라. 아마 나와 ‘배려 코드’가 다른 사람을 싫어했던 거겠지. 아무리 조심한데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배려 없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데, 거꾸로 뭘 바라겠나. 그저 기본적인 윤리 의식만 가져도 고맙고, 거기에 배려 코드가 잘 맞는다면 금상첨화인 걸로 결론지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유부단하고 이끌려 다니는 사람보다는 과정이 미숙하고 결과가 미흡하더라도 주체적인 태도로 본인의 삶을 지휘하는 사람이 좋다. 그런 모습에 매우 이끌린다. 이러한 것도 내 취향의 일부인데, 종합해 보면 나는 정말 ‘적당한 고집’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높이 사는 것 같다. 이 ‘적당한 고집’을 ‘취향’이라고 말하고 싶고, ‘밉지 않은 고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인간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해서 기질과 성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던 사이도 어느 순간 사소한 계기로 틀어질 수 있다. 하지만 취향은 그런 것들을 보완한다. 말의 온도와 형태가 다르더라도 취향이 비슷하면 대화는 매끄럽게 이어진다. 실제로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겹치는 취향이 있다.


 취향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몇 가지 취향만 알게 돼도 그 사람의 생활을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게 한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취향이야말로 자기 인생에 대한 성의라고 본다. 그 정도가 지나치면 까탈스러운 고집불통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착하지만 취향 없는 사람보다 조금 차가워도 본인의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 훨씬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결국 승리하는 사람은 취향이 있는 사람이다. 이 정도면 너무 취향 예찬인가 싶긴 한데.


 가끔 운이 좋으면 취향이 진하게 겹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그때 느껴지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치 향긋한 풀내음과 청량한 초저녁 공기를 맞으며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는 느낌? ‘아, 이게 삶이지!’, ‘이게 청춘이지!’ 하는 마음? (청춘과 취향의 겹침이 무슨 연관인진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그렇고, 자전거는 탈 줄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람을 ‘소울메이트’로 취급한다. 왜 영혼까지 들먹이냐 하면은, 취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기에….


 베이킹에는 관심도 없고 재주도 없지만, 여러 겹의 패스츄리를 떠올려 보자. 한 겹, 한 겹 쌓아가면 어느 순간 근사한 형태의 고소한 빵이 되어 있듯, 취향도 그렇다. (실제 빵이야 오븐에서 한 번에 구워지긴 하겠지만 베이킹과는 무관한 비유) 나는 그 겹을 만들어나가는 게 흥미롭고 만족스럽다. 뜬금없는 접근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고양이는 조심성이 많아 큰 소리나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싫어하고, 부드럽고 소심한 손길을 좋아한다. 또 참치 파우치를 선호하고 동결건조 닭가슴살 큐브에 환장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 고양이를 설명할 수 있게 한다. 취향은 이러한 힘이 있다.


 나는 내가 가진 취향들이 더욱 짙어졌으면 좋겠다. 그것들이 나를 말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내 취향을 존중하는 사람을 여럿 만나게 되면, 신나게 떠들면서 교감하고 싶다. 고양이, 1920년대 무드, 재즈, 모던락, 미드나잇 인 파리, 이터널 선샤인, 윤종신, 야자와 아이, 명탐정 코난, 패션, 미술사, 얕은 심리학, 바다보다 숲, 미국보다 유럽, 그중에서도 런던, 자기계발서보다 인문서적, 소금보다 간장, 화려한 프린팅이나 복잡한 스타일링보다 단조로운 룩 안에서의 컬러플레이, 보정 앱보다는 기본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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