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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 그리고 숲 Jan 11. 2024

2023년, 내가 가장 잘한 일

2023년이 시작되자마자 계획한 대로 아기가 생겼다

 결혼하고 2년 정도는 아기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임신을 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도, 그동안 아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랬던 내가 2023년이 시작되면서 (만 나이가 적용되기 전) 서른다섯이라는 나이가 됐다는 것을 깨달으니, 그간 아기 계획을 미루며 누렸던 자유로움에 대한 책임을 한 번에 지듯이 답답하고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난임은 흔한 일이니까, 아기가 쉽게 생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서둘러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아기 천사는 우리에게 곧바로 찾아와 주었다.


 ‘어쩌면 무의식 속의 나는 아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과, ’이게 바로 여성에게 탑재된 모성 혹은 엄마의 촉이라는 건가‘라는 생각이 교차할 정도로 나의 조심성은 의미가 있었다. 단박에 아기가 생긴다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아기가 생기진 않았을까 흔히 복용하던 두통약도 먹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1월 18일 오전 9시 10분, 임신 테스트기의 확인 창에 두 줄의 핑크색 선이 떴다.


 아기와 함께한 겨울은 남편과 함께 무리한 런던 여행을 즐겼고, 겨울 내음이 사라져 갈 무렵 가족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다. 봄에는 제법 불러온 배를 한복 스커트 안에 숨기며 여동생의 결혼을 축하해 줬고,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날에는 불룩 튀어나온 배를 부여잡고 태교랍시고 일을 했으며, 아기를 위해 작은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2023년 상반기는 제법 활동적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내가 계획했던 굵직한 일들에는 차마 손을 대지 못했다. 그리고 찾아온 가을. 모든 것을 줄여야 했다. 하던 일도, 나의 움직임도, 머릿속에 가득하던 여러 가지 생각과 목표도, 그리고 스치듯 찾아오는 우울하고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하반기는 내 뜻과는 무관하게 정신없이 흘러갔다. 하루빨리 시간이 흐르길 바라는 나날이었다. 남들보다 큰 배를 가졌던 나는 만삭 시절 의자에 앉는 것도, 서는 것도, 침대에 눕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얼른 아기를 낳고 가벼운 몸이 되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9월 17일. 미리 잡아두었던 출산 희망일을 3일 앞두고 양수가 흘러 38주 1일이 되던 날, 드디어 아기를 마주하게 됐다. 어떤 방법이든 출산은 모두 힘들고 어렵겠지만, 수술로 아기를 낳은 나에게 출산 이후의 시간은 그저 묵묵히 견디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만삭의 고단함, 산후의 고통 다음 찾아온 것은 공포의 젖몸살. 유선염을 진단받고 약을 쓰고 나서야 불타오르는 듯했던 가슴이 잠잠해졌다. 유선염에서 해방되니 그 힘들다는 신생아와의 밀착 육아가 나를 반겼다. 그렇게 30일, 50일, 70일, 100일이 지나니 길었던 2023년도 겨우 5일을 남기고 있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올해는 임신하고 아기 낳은 것 말고는 제대로 한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남편은 말했다.

 “가장 대단한 일을 했는데?”


 내색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그 한마디로 불안하고 허기지던 마음이 양질의 식사로 꽉 채워진 듯 든든해졌다. 인간의 평생을 좌우하는 엄청난 일,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지 않는 일,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이 특별한 아이를 만날 수 있게 한 일. 그래, 나는 2023년 내 34년 평생 가장 뜻깊고 숭고한 일을 한 거야. ‘이것’밖에 못한 해가 아니라, ‘이것’을 해낸 대단한 해를 보낸 거야. 임신과 출산을 겪은 모든 어머니들은 인생에 이러한 대단한 해가 한 번 이상은 꼭 있었겠지. 어머니들이여, 우리 모두 축배를 들어요. (술도 못 마시면서)


 나의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잊을 수 없는 나의 2023년도 안녕,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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