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창작 세포를 헤아리는

그런 관계를 꿈꾸며

by 풀 그리고 숲
괴테에게는 실러가, 세잔에게는 졸라가 있었듯. 내 곁엔 누가 남을까?


가끔은 나의 창작 세포와 작품 세계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분명 지금도 존재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방향이 잘 맞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시절 그 친구와 글쓰기, 작품, 꿈, 존재,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의 미래를 응원하고 각자 마음을 다졌다. "(서로)넌 진짜 예술가적 기질을 가졌다"거나, "한국의 조앤 롤링이 되겠다"거나,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집을 사자"는 등의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으며 눈을 반짝였던 시간들이었다.


아마 그 친구는 여전히 문학과 가까울 것이며, 성찰과 고찰을 반복할 것이며, 글을 써 내려가고 있겠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싱거운 말을 나누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각자 결혼을 하고 가정을 만든 후 자연스럽게 아득한 과거가 되어버린 거다.


물론 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날 응원하는 남편은, 중요한 대목에서 늘 진지하고 날카로운 피드백으로 나를 어디론가 올라서게 한다. 그러나 표현의 욕구, 동기, 방향이 일치하지는 않으니 세세한 과정까지 심도 있게 나누지 못할 때가 많다.


생각을 주고받는 기쁨과 생각들이 일치하는 기쁨은 다르니까 조금 아쉽다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거리감이 배우자로서는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퍼스널 스페이스가 확보되어야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듯이, 1) 남편과의 약간의 거리감이 호흡하기에는 더 편안함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2) 밀착 소통할 상대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스스로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내가 항상 나와의 대화에 목말라 있고, 새롭고 견고한 세계를 만드는 데 열망을 느끼고, 농도 짙은 한 명의 독자를 소중하게 기다리는 것처럼. 언젠가는 서로의 작품 세계와 표현의 방식을 가까운 곳에서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는 상대 또한 분명 생길 거라 믿는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소울메이트라 칭해도 되겠지. 그런데 그 호칭은 Soul Mate 의미와는 반대로 도리어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다가와서, 그런 존재가 생겨난다면 꼭 특별한 것을 만들고 싶다.

뭐가 좋을까?

하기야, 그 또한 자연스럽게 떠올려질 거라 믿으니 억지로 만들 필요도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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