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도, 합격도 없는 P(Pass)

'인간 실격'이라고 느끼는 감정 또한, 그대가 인간이기에.

by 풀 그리고 숲

오늘은 정말 마음먹고 동화 원고를 써야 하는데, 지금 내 감정과 마음을 정리하지 않으면(이라고 쓰고, '토해내지 않으면'이라고 생각) 도무지 해야 할 일이 손에 안 잡힐 것 같아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30분 정도 다른 글을 쓴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니니. 잠시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이 향하는 대로.


주말에는 육아로 도무지 개인 시간이 없어서 글을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불가능해서 월요일만 기다리게 되는데(육아맘에게는 월요병 대신 금요병이 있다...) 지난 월요일, 그러니까 6월 2일에는 도무지 원고 파일에 손이 가지 않았다... 오후 4시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야 하니까 단 30분이라도 써 내려가야 후회하지 않을진대.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오후 3시 10분을 향하는 시곗바늘. 초조해진 나는 읽고 싶던 책을 손에 쥐었다.


"그래, 책이라도 읽자." 하고, 집어 든 <인간 실격>.

(보통 집중이 안 될 때는 책을 읽거나 영어공부 앱에 접속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말 그대로 의미 있는 딴짓을 할 수 있기 때문. 분명 딴짓인데, 딴짓은 아닌 그런 경우.)


감사하게도(읽는 재미를 갈수록 알아가고 있어서) 읽지 못한 고전들이 수두룩한데, 그중 하나가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다. 내 책장은 내가 좋아하는 책, 아름다운 소장용 책, 읽고 싶은 책으로 채워져 있다. 읽기 싫은 책, 소장하기 싫은 책, 나와 맞지 않는 책은 가차 없이 처분하는 편.


<인간 실격>은 단숨에 읽혔다. 4시가 가까워지는 게 안타까워 시계를 보면서 한 장 한 장 더 읽어나갔다.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에 임박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책장을 덮어야 했지만, 짧은 거리를 운전해 아이를 품에 안아 카시트에 태우고, 집에 데리고 올 때까지 내 머릿속은 다자이 오사무, 아니 <인간 실격>의 요조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와 놀아주면서도 몰래몰래 책을 읽었다. 나머지 내용은 넉넉히 한 시간이면 찬찬히 다 읽고도 남을 텐데, 몰래하는 독서는 그저 느릿느릿 거북이의 움직임처럼 더디게 진행됐다. 그리고 오후 여섯 시를 넘겼을까. 후기와 작품 해설, 작가 연보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참으로 마음이 먹먹했고, 한 사람의 생애를 이 짧은 글로 감히 탐닉했다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감사해서, 읽는 동안 그 마음을 눌러가며 내 마음에 닿은 문장들에 진한 밑줄을 그었다.


물론 요조의 삶이 다자이의 삶과 100%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다자이의 삶 자체를, 아니 그의 짧고 굵은 생애 동안 이어진 마음의 변화 곡선을, 하나의 드라마로 감상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 공감이 되었다.


내 글의 키워드는 성찰, 사랑, 감사, 행복이다. 큰 테마로 정리하자면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무언가로 자신의 생각이나 존재 자체를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테지만.)

다자이는 그보다 훨씬 강렬하게 일생동안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고 성찰하며 괴로워했다.


인간답게 살고자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한참 고뇌했던 그는 죽음만이 인간다운 삶의 종착이라 느꼈는지도 모른다. 왜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고자 노력하고 싶지 않다. 야매 심리학자로 빙의해 어설프게 그의 삶을 짚어내기가 송구해서. 그저 그가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결론을 도출했고, 결국 뜻에 따라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을 숭고하게 받아들이고 싶을 뿐이라서.


반대로 나는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그렇다면 과연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만큼 고민하지 않았다. 심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사고 회로, 그 안을 파고드는 집요하고 구질구질한 감정, 왜곡된 시선, 복잡한 사건들을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았고, 살고 있다는 점이 그와는 다른 점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덕분에 나는 같은 주제로 아예 다른 길을 걸었던 놀라운 문인의 족적을 따라 걸어볼 수 있었다. 마침내 세계를(세상을) 개인으로 여기며, 모든 것은 개인일 뿐이라는 마음으로 음울한 사고와 감정을 다독여 나갔던 요조.

반대로 나는 세계가 개인이든, 세계가 세계이든, 개인이 또 하나의 세계이든 상관없다.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편하기에.


나는 인간답게 살기 위함에 집중한다. 나라는 인간, 나라는 존재, 나라는 세계에 집중하고, 그 외의 인간, 존재, 세계를 존중하고 가끔 적당히 따스하게 살피는 것. 그 자세로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 개인이, 세계가 어떤 생각을 하든 나는 그저 존중하고 싶다. 다르게 말하면 의연하고 싶다. 더 나아가 초연하고 싶다. 초연을 향한 나의 마음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애달픈 짝사랑과 같다. 그러나 나는 계속 사랑하고, 바라보고, 원하고, 닮아가기 위해 노력할 테다.


월요일 밤에 주문한 책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또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어떤 책으로 인도할까, 궁금한 수요일 정오.

이제 마음을 정리했으니(?) 동화 원고에 집중해 볼까. (더는 도망갈 데 없음)


샤워하며 느낀 생각을 시로 정리한 지난달의 브런치 글을 소환해 본다.

https://brunch.co.kr/@chaerimma/71




끝으로. 다자이 오사무, 당신의 일생 전체를, 오래 간직하고 제련한 무거운 감정을 나눠 주어 감사합니다. 이 마음은 앞으로도 오래 품게 될 것 같아요. 부디 그곳에서는 편안하기를, 그리고 그곳에서는 인간이 아닌 만큼 좀 더 마음껏 웃고 울고 무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말씀 올리자면, 인간 삶에 성적을 매긴다면 A+나 F가 아닌 오직 P(Pass)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 나를 사랑하고,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이것으로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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