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이슈 대응이 업무의 대부분이라면 빠르게 도망치세요
개발자로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업무들이 있다. 외부 문의에 대한 대응, DB 값 보정,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 확인 요청, 로그 확인 등 운영 이슈에 대응하는 것이다. 모든 개발자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업무 대부분이 이런 일들로 가득 차 있다면, 커리어를 한번 더 되돌아보고,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운영 이슈 대응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레버리지가 낮은 일이고, 성장과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슈 대응은 단발성 이벤트에 가깝고 레버리지도 작아서, 성과로 인정받기도 어렵다. 늘 바쁘고, 어딘가에 신경을 뺏기지만, 정작 이력서에 최근 6개월간 한 일을 적으려고 하면 적을 말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력은 늘어나지만, 의미 있는 이력은 늘지 않는다. 스스로도 불안하고,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레버리지가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드는 노동과 에너지 소모는 비등하다. 30분이면 처리할 수 있는 단순한 확인 작업이라도, 여기저기서 요청이 오고 하루에도 10개, 20개씩 요청이 온다면, 정신없이 바쁘고, 잦은 컨텍스트 스위칭으로 지치고 에너지가 고갈된다. 반면, 성취와 성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한달 동안 시간의 대부분을 외부 요청을 응대하고, 로그를 확인해 주고, DB 보정을 하고, 코드 상의 로직을 확인하는 데 보낸 개발자와 한 달의 시간을 들여 자동화 툴을 만들어 10명의 인건비를 절감한 개발자가 있다고 하자. 당연히 자동화를 통해 10인분의 인건비를 절감한 게 더 레버리지가 큰 일이고, 성과에 반영되는 일이다.
리더들은 운영 이슈 대응도 중요한 일이고, 자신이 잘 지켜보고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대체로 거짓이다. 리더 역시 자신보다 윗 리더에게 성과를 평가받는 입장이다. 명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성과가 리더에게도 필요하다. 만약 팀 전체가 운영 이슈 중심이라면, 본인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고, 회사 내 경쟁에서도 밀려나게 된다.
그렇다. 사실 이 글은 나 스스로의 고백록이다. 나 역시 운영 업무 위주로 2년 넘게 일한 경험이 있다. 이직을 하려고 정리하다 보니, 일은 정신없이 했는데 정작 이력서에 쓸 말은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2년을 헛되이 보냈구나 싶어 허탈했다. 우여곡절 끝에 새 조직으로 옮긴 후 돌아봐도 운영 이슈 대응을 했던 경험은 지금 업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간 동안 시스템 디자인과 알고리즘에 대한 고민을 등한시했던 것에 지금도 발목을 잡히고 있다.
퇴근하고 스스로 공부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공부는 한계가 있다. 특히 백엔드 개발자라면 말이다. 현업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기술자는 성장을 한다. 혼자서 복잡한 분산시스템을 구현한다고 한들, 트래픽도 없고, 현업만큼의 처절한 고민도 수반되지 않는다. 엔지니어는 어쩔 수 없이 현업에서 성장하고 배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운영 업무가 중심인 일을 하고 있다면, 지금 하는 일의 레버리지가 작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탈출하자.
레버리지가 큰 일을 해야, 연봉도 그에 맞춰 높일 수 있고 이직 시장에서 경쟁력도 올라간다. 맹모삼천지교는 아이 교육에 대한 말이지만 스스로의 커리어와 발전을 위해서도 성립하는 명제다. 자신이 맡는 일이 운영 이슈 중심이라면, 도망쳐라. 그리고 회사를 위한 일이 꼭 나 자신을 위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나 자신을 위한 것이 회사를 위한 것과 겹칠 수 있는 환경으로 스스로를 이주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