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시절인연

마음의 계절이 바뀔 때

by 채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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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 사이의 권태를 너무 잘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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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할 만큼 사람 사이의 권태를 빨리 느낀다.
누군가를 새로 만나면 처음엔 진짜 좋다.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알아가고, 말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고,
“우리 진짜 잘 맞는다”는 말도 쉽게 나온다.
그 시기엔 모든 게 괜찮다.
그 사람의 말투도 귀엽게 느껴지고,
조금 이기적인 부분도 ‘성격이구나’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세 달이 지나면 꼭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부터는 그 사람의 단점만 보인다.
말투가 거슬리고, 생각이 얕아 보이고,
내가 예전에는 웃었던 농담이 이제는 피로하다.

나는 그 시점이 오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아, 이 사람은 여기까지구나.”
그때부터 연락을 조금씩 줄이고, 만나도 대화가 짧아진다.
억지로 이어가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관계를 붙잡지 않는다.
그냥 ‘시절인연이 다한 거겠지’ 하며 마음을 접는다.
그렇게 끝난 관계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권태를 느낀 그 친구들도 나에게서 권태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들도 어느 순간부터 내 말투가 거슬렸을지도 모르고,
내 사소한 자랑이 짜증 났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그들도 나를 ‘이제는 재미없는 사람’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관계의 권태는 혼자 느끼는 게 아니라
서로가 동시에 조금씩 멀어지는 시기 같은 거다.
누군가의 단점이 유난히 크게 보이기 시작할 때,
그건 사실 둘 다 같은 속도로 식어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걸 느낄 때 ‘노력’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굳이 장점을 보려고 애써야 하나?”
“어차피 멀어질 사람인데.”
그런 생각이었다.
사람이 떠날 때가 되면 떠나는 거고,
그걸 억지로 붙잡는 건 나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근데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그때 내가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어땠을까?
한 번쯤 그 친구의 장점을 보려 애썼다면,
그 권태의 시기를 넘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런 노력을 ‘필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지속’보다 ‘순간’에 더 진심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에만 진짜 좋아하고, 그 시기가 지나면 덤덤해지는 사람.
그래서 나는 오래가는 관계보다는 진심이 느껴졌던 순간을 더 기억한다.
누군가와의 웃음, 그 사람의 말 한마디,
그 짧은 온기가 그 관계의 전부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떠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도, 붙잡지도 않는다.
그냥, “이 시절이 끝났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물론 내 곁에 남은 사람들도 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모두,
내가 권태를 느낀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어쩌면 권태를 느꼈지만 그걸 견뎌낸 사람들이겠지.
서로의 단점을 다 알아도, 여전히 연락을 하고,
이상하게 또 만나면 편한 사람들.
그게 아마 ‘진짜 인연’이라는 거다.

나는 이제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이 내 인생에 머물렀던 **‘시간의 길이’보다 ‘온도의 기억’**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좋았던 시간, 따뜻했던 말, 그게 남으면 그걸로 됐다.
인연은 결국 오래 머문다고 깊은 게 아니라,
그 순간 진심이었느냐로 남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멀어져도 덜 슬프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시절이 끝났다는 신호일 뿐이다.
권태는 나쁘지 않다.
그건 그냥, 마음의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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