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겹의 교복

숨 막힘의 끝, 이어지는 호흡처럼

by 김채이





은진은 단추를 끼우며 숨을 들이켰다. 어깨를 으쓱해 보았지만 몸짓은 뻣뻣했고, 억지로 지은 미소는 금세 흘러내렸다. 그래도 웃어보려는 건, 괜찮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엄마는 꽤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이게, 가장 큰 사이즈죠?”


다음날 아침, 은진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살폈다. 머리를 하나로 단정히 묶고, 동그란 안경을 걸쳤다. 누구나 알아볼 법한 튀는 구석 없는 그 또래의 얼굴이지만 혹여 튀어나온 부분이 눈에 띌까 허리를 매만졌다. 손끝에 닿는 낯설고 둔한 감촉이 느껴졌다. 마치 스타킹을 허리까지 당겨 입은 듯, 몸을 꽉 조여왔다. 어제 엄마가 급히 사준 보정속옷이었다. 간신히 은진의 살을 붙잡고 있는 것이 꼭 교복을 동여맨 것 같았다. 거울 속 은진의 팔은 소매 끝에서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팔이 아니라, 튀어나온 살이 먼저 보였다. 은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가 문제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시 한번 안경을 고쳐 쓰며 괜히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려 했다. 하지만 거울 속 은진은 자꾸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돌아가는 건 얼굴이 아니라 마음 같았다.


‘그래도 안 입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래도 이게 나으니까”


은진은 입술을 깨물며 어제 엄마가 했던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숨이 가빠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탈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었다. 애써 시선들을 회피하며 몸을 감출 빈자리를 찾았지만 애석하게도 빈자리는 없었다. 은진은 버스의 뒷문 근처에 서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어서 학교 앞의 정거장까지 버스가 달려주길, 오늘따라 버스에 서있는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허리와 배를 감싼 낯선 압박이, 짧은 정거장마다 시간을 늘려놓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걸으며 은진은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여름을 실감했다. 눈이 부실정도로 빛이 퍼졌고 그늘 없는 등굣길에 은진의 목덜미에 살짝 땀방울이 맺혔다.


교실로 들어와 은진은 곧장 맨 뒷자리로 향했다. 시간에 쫓기는 압박감이 싫어 은진은 친구들보다 등교를 빨리 하곤 했다. 일찍 일어나고 일찍 도착하기. 그리고 텅 빈 교실을 유유히 걸어가 맨 뒷자리에 앉아 친구들이 한 명 한 명 도착할 때마다 손을 흔들며 반기는 것. 그것이 교실에서 시작하는 은진의 일상이었다. 이내 희미하게 내려앉은 분필가루를 닦으며 장난치는 친구들, 책상에 걸터앉아 창밖 햇살에 화사하게 웃는 친구들, 삼삼오오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은진은 그 틈을 비집지 않았다. 창가에 앉은 민지가 교복 치마를 아무렇지 않게 살짝 추켜 올리고 웃었다. 가느다란 허벅지가 치맛자락처럼 예쁘게 살랑이는 듯했다. 은진은 순간 시선을 빼앗겼다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부러움이 들킨 것 같아 가슴이 철렁했기 때문이다. ‘아니야, 괜히 쳐다본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며 책상 위에 문제집들을 올려놓았다.


모두가 빛나는 순간들임에도 그 빛은 이상하게도 뒷자리까지는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자리를 바꿀 때마다 은진은 뒷자리를 원했다. 은진의 자리에는 그저 옅은 그림자만 드리운 것 같아도 그 그림자 속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도 숨이 조금은 편해졌다. 마치 ‘여긴 괜찮아, 여긴 안 보이잖아’ 하고 속삭이는 것처럼. 앞에 앉으면 누군가 자신의 큼지막한 등을 보고 있다는 상상이 늘 따라왔다. 구부정한 자세와 울퉁불퉁한 그림자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두려웠다. 뒷자리에 앉으면, 그런 상상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지난번 수업 시간, 비만얘기를 하며 은진을 힐끔 바라보던 선생님의 눈길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친구들도 그 눈길을 알았을까,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말랐다, 날씬하다, 통통하다, 자신도 모르게 친구들을 평가하게 되었다. 가장 뚱뚱한 친구마저 자신보다는 살이 찌지 않았음에 선생님의 눈길이 자신에게 오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은진은 선생님들의 눈에도 덜 뜨일 수 있는 이 뒷자리에 앉으면 조금은 안심이 됐다. 사실은 몸만큼이나 굽은 마음까지 가려질 거라 믿고 싶었던 걸까.



쉬는 시간, 어깨를 주물러주던 수혜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은진아! 이게 뭐야!”


옷깃 안쪽으로 보정속옷의 끈을 잡아당기며 장난기 가득하게 웃었다. 수혜는 웃느라 시원한 눈매가 가늘어질 정도였고, 딱 달라붙게 줄인 교복을 입은 몸매는 유쾌하게 흔들거렸다. 은진은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이내 수혜는 미안한 눈빛을 남겼지만 은진은 애써 그 눈빛조차 모른 척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내보였다. 친구들의 웃음과 농담은 어느덧 익숙하다 못해 모른 척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며칠 전 학원 복도에서 넘어졌을 때도, 소리가 컸다며 친구들이 깔깔댔다.


“야, 코끼리인 줄!”


은진은 함께 웃으며 코끼리 울음소리까지 흉내 냈다. 마음이 작아졌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밤, 잠들려다 문득 들린 건 복도에서 들었던 코끼리 소리였다. 며칠 동안 학원 복도를 지날 때마다 그 말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악의 없는 웃음들. 은진은 친구들의 농담이 뾰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뾰족하게 듣고 싶지 않았고 찔리고 싶지도 않았다. “살 좀 빼!”라는 말에 “대학 가서 빼면 돼!”라고 답하며 털털하게 넘어가는 것이 은진이 하는 덧붙이는 말의 전부였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은진의 몸은 계속 불어났다. 교복은 세 번째였다. 중학교 때 은진을 가르쳤던 선생님은 이제 은진을 알아보지 못했다. “왜 이렇게 살이 쪘어!” 하고 지나가며 놀라는 목소리에 은진은 “저도 모르겠어요!” 하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은진은 정말 몰랐다. 왜 살이 찌는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왜 교복이 자꾸 작아지는지


집에 들어서자 이른 저녁을 먹고 있던 아빠의 눈길이 잠시 은진의 다리에 머물렀다.


“완전 코끼리 다리네!”


숟가락이 공중에서 멎었다. 아빠의 말에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마저 멈춘 듯했다. 학교에서는 억지로 웃으며 넘겼지만, 집에서는 웃는 흉내조차 나지 않았다. 웃음이 끊긴 자리에, 아빠의 말은 더 크게 요동쳤다. 아빠는 농담이라며 같이 식사하자고 불렀지만 은진은 학원에 일찍 가야 한다는 말만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는 순간, 집안의 소음이 모두 멀어졌다. 마치 자신만 남겨진 것처럼.

농담. 친구들의 장난도, 선생님들의 흘러가는 말도 그냥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빠의 말은 달랐다. 웃음으로 덮을 수 없었다. 오래 쌓아 올린 벽이 단숨에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 내가 좀 더 신경 써야 했는데.‘ 라며 미안해하던 엄마의 얼굴, 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동생의 몸짓. 그리고 코끼리다리.

집안 공기가 금방 낯설어졌다.


은진은 귓가에 맴도는 코끼리소리를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쿵쿵, 자신의 발자국 소리마저 울리는 듯했다. 멍하니 방안을 보고 있자니 문제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은진이 친구들보다 내세울 수 있는 건 성적뿐이었다. 반 1등. 그 체면으로 버텼다. ‘난 공부해야 하니까.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니까. 다이어트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어쩌면 은진을 감춰주던 건 교복도, 보정속옷도 아닌 성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릎이 내려앉을 듯 힘없이 책상에 앉아 묵묵히 가방을 다시 챙기기 시작했다. 가방을 열고 학원문제집과 필통을 넣고 지퍼를 잠갔다. 가방을 잠시 끌어안고 앉으니 입고 있던 교복이 눈에 들어왔다. 조여 오는 속옷이 또렷이 느껴졌다. 잠깐 눈을 감았다. 풀어낼 수도 있었지만, 은진은 가쁜 숨을 내 쉴 뿐이었다.


다음날, 은진은 여전히 코끼리 소리를 어깨에 짊어진 채 운동장에 섰다. 햇별은 운동장 위에 그대로 쏟아지고 있었다. 달리기 두 바퀴째. 이미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자리에서 밀려난 지 오래였다. 은진은 달리기를 싫어했다. 어쩌면 시간의 압박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등굣길에 서둘러 달리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앞서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수혜의 짧은 단발머리가 리듬에 맞춰 찰랑이는 게 보였다. 친구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박자를 맞춘 듯 일정한데 은진만 엇박자로 달리는 것 같았다. 다리는 더 무겁게 움직였다. 발끝에 차이는 모래마저 자신의 발을 붙들고 있는 듯했다. 숨이 제대로 내려가지 않는 걸 느꼈다. 갈비뼈 안쪽이 꽉 막힌 듯했고, 들이마신 공기가 목에서 걸려 더 내려가지 않았다. 보정속옷이 허리를 죄어올 때마다 목까지 서서히 조여와 머리까지 하얘졌다. 입 안은 바싹 말랐는데, 등줄기엔 땀이 흘러 몸과 옷은 더 붙고 있었다. 숨소리가 자꾸만 들쭉날쭉해졌다. 한 번 크게 들이마시면 폐가 터질 듯했고, 조금만 내쉬면 바로 공기가 바닥나 버렸다.


‘캄캄해, 어지러워.’


은진은 무릎이 풀려가는 걸 억지로 버텼지만 몸이 휘청거렸다. 거의 다다랐을쯤 먼저 도착해 있던 수혜가 은진을 살피며 서둘러 다가왔다. 은진의 어깨를 잡아주는 수혜의 손에 의지해 간신히 주저앉았다. 그늘에서 좀 쉬라는 선생님의 말이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듯했다.

그냥, 너무 더웠나 봐,

은진은 아무렇게나 뱉어낸 그 말에 그저 매달려있었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자, 온몸이 푹 꺼지는 것 같았다. 거울도 볼 것 없이 바로 교복을 벗고 서둘러 보정속옷을 제꼈다. 마치 ‘퉁’ 하고 풀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리는 것 마냥 몸이 펑 터질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한결 시원해진 숨을 고르자 눌려 있던 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천천히 퍼졌다. 한참 동안 은진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뱉는 걸 반복했다.


다음날 아침, 은진은 거울 앞에 섰다. 한 손에는 교복 윗옷을, 나머지 한 손에는 보정속옷을 쥐고 있었다. 오른손에 쥔 보정속옷을 몸에 맞춰 대보자 속옷 옆으로 넓게 퍼져있는 허리가 보였다. 은진은 자신의 몸을 천천히 마주했다. 2년여 동안 축적된 살들. 불툭 튀어나온 팔뚝과 둔해 보이는 가슴, 옆으로 울퉁불퉁한 허리와 둥글게 튀어나온 아랫배. 그리고 굵고 펑퍼짐한 코끼리 다리.


‘보정속옷이 내 다리까지 가려주진 못해.’


하지만 동시에, 그 다리가 자신을 여기까지 버티게 했다는 사실이 보였다. 은진의 어깨가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은진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방 안은 조용했지만, 은진의 호흡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아침바람이 은진의 온몸을 부드럽게 지나가듯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숨이 막혀오던 가슴이 조금씩 열렸다. 바람이 방 안을 채웠다. 눌려있던 공기가 방안 구석구석 흘러들어왔다.

가슴이 막히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래. 이게 나야.‘


은진은 중얼거렸다.


“숨은 쉬어야 하니까.”


은진은 손에 쥔 보정속옷을 내려놨다. 거울 속의 자신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은진은 처음으로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완전한 극복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해방감. 오늘은 그걸로 충분했다.



본 글의 인물과 사건들은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했으나, 여러 파편을 엮어낸 창작소설임을 밝힙니다.



그저 무난하다고 여겼던 날들이

사실은 아픈 흔적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낯설던 몸, 감당하기 벅찼던 마음.

그때의 나, 그럼에도 참 애썼다.

괜찮아.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