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힌 마음의 자리
우리가 모인 건 단지 책상의 그 낙서 때문이었다. 그것은 책상 위에 대충 연필로 그려 넣은 것이 아니었다. 샤프의 철심으로 긁어낸 자국은 손끝에 닿을 듯 깊었다. 왜 그랬을까. 수업이 지겨웠거나 교실에서마저 단단해진 그것을 잡지 못해 그렸거나. 할 수 없는 욕구를 파내고 싶었거나. 뭐가 됐든 보는 사람에겐 그저 흉측하고 철없는 낙서일 뿐이었다.
그림을 그린 건 내가 아니다. 난 이런 걸 그리지 않는다. 학원책상에까지 이런 짓을 할 만큼 미련하진 않다. 집중이 안된다면 차라리 시답지 않은 조각난 하루의 기억을 맞춰보거나 되지도 않는 글 몇 줄을 적어보는 것이 낫다. 뭐, 그것도 아니라면 휴대폰 게임 속 캐릭터나 맵, 나의 플레이 순위를 떠올린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와 함께 원장 앞에 앉아있었다. 그림은 우리 셋 사이에 놓여있었다. 엄마의 긴 머리카락이 주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 너머 엄마의 얼굴까지 바라볼 용기는 나지 앉았다. 엄마는 짧게만 대답했다. 믿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민망해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이 상황을 빠르게 넘기고 싶어서였을까.
“우리 성철이가 이런 아이가 아닌데 말이죠. 그렇죠, 어머님.”
우리 둘 앞에 앉은 원장은 매우 놀랐다느니, 너도 당황스럽다느니 말을 쏟아냈다. 까무잡잡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고조된 상태였다. 통통한 두 볼이 올라붙고 목소리는 자꾸만 위로 솟았다. 엄마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자꾸 꼬이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 말문이 막힌 것에 가까운 침묵이었다.
나도 내가 이런 일로 앉아있을 줄은 몰랐다. 난 깔아뭉갠 시선 끝으로 책상 위의 그림을 흘겨봤다. 샤프로 깊게 파낸 선이 손끝에 닿는 듯 까칠하게 다가왔다. 그림을 보는데, 문득 세계사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단발머리에 동그란 얼굴, 예쁘다는 이유로 남학생들의 눈길을 모으던 사람. 하지만 평범하게 '이쁜 선생님'이라고만 생각하는 애들만 있는 건 아니다. 관심은 늘 같은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조용히 지켜보는 애가 있으면, 선을 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애들도 있었다. 노준 같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선생님의 첫 수업 날, 뒤편에서 들려온 노준의 한마디.
"선생님, 이빨에 털 꼈어요."
노준은 매번 타인이 간신히 지키고 있는 선을 웃으며 밟았다. 교과서 귀퉁이엔 항상 노골적이고 지저분한 농담투성이었다. 내 노트에도 몰래 그려놓고 내가 발견하면 키득거렸다. 노준은 지나칠 만큼 성에 대한 농담에 있어서 통제를 하지 않는다. 이 그림의 깊게 새겨진 선도 그렇고. 하지만 이 그림이 노준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내 영역의 선도 파괴될 것이 뻔했다.
노준이 어떤 방식으로 날 괴롭힐지 모를 일이었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예전처럼 ‘여자 같다 ‘ ’ 게이 같다’는 비웃음이 몰려올까 두려웠다. 애들이 장난이라며 내 바지를 억지로 벗기려고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버텼지만, 결국 교실엔 웃음만 남았다. 그날의 뜨거운 얼굴, 화장실에서 훔친 눈물, 푸른 멍처럼 남은 기억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 말들, 그 기억은 몇 해가 지나도 내 안 어딘가에 웅크리고 남아있었다. 나는 늘 침묵했다. 그저 대충 끄덕이며 수업을 듣는 척하듯, 지금 이 자리도 적당히 넘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책상만큼이나 내 마음도 긁힌 듯 뱃속이 쓰라렸다. 그 노골적인 그림을 보고 있자니 불편한 생각에 한숨이 한참 가늘게 흘러나왔다.
요즘 나를 불편하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내 두 칸 앞자리, 진혁.
진혁은 눈에 띄는 애가 아니었다. 공부도, 운동도, 그럭저럭. 그럼에도 진혁이 불편한 이유는 자꾸 내 시선이 그 애한테 간다는 점 때문이다. 수업을 듣다가 이따금씩 오진혁을 뒤통수를 봤다. 부드럽게 내려앉은 머리카락, 햇볕에 그을린 뒷목, 이따금씩 낮게 터져 나오는 목소리.
매번 뒷모습만 볼뿐, 앞모습을 본 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체육시간 등 간간이 이어지는 토막시간 때 밖에 없다.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진혁이 불편하고 불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불편한 건 싫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마치 몇 년 전 드라마를 보다가 여자주인공보다 남자주인공에게 더 설렘을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와 같다. 가끔 진혁이 친구들과 고개를 젖히며 넘어갈 듯 웃을 때면, 그 옆자리가 부러워졌다. 수업시간에 종종 연필을 돌리던 진혁의 손가락이 멈추는 순간, 내 시선도 같이 멈췄다. 그리고는 얼른 그 시선을 거두고 뒤늦게 수업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어제는 잠들기 전 진혁에게 건넬 말을 생각해 보다가 스리슬쩍 체육시간에 몸을 스쳐볼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버려 토악질이 치밀었다. 그럴 땐 내 뇌에서 나오는 생각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그러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마음이 들키는 순간, 나는 또다시 놀림거리가 될 게 뻔했다. 나는 자꾸만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다른 애들과 다를까. 왜 내 눈은 엉뚱한 데 머무는 걸까. 혹시 나만 이상한 건 아닐까. 잘못 만들어진 사람인 걸까.
그런 밤이면 몸 안의 공기를 다 빼내듯 긴 한숨을 쉬며 나를 어둠에 묻었다.
원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그린 거 아니지?”
나는 그 그림을 다시 바라봤다. 기모찌, 아앙 같은 글자들 옆에 기묘하게 부풀린 남자의 몸이 그려져 있었다. 노준답게 필요 이상으로 집요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역했지만,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나를 어둠 속에서 끌어올려줄 실마리일지도 몰랐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나는 그림을 가리켰다. 엄마는 입술을 달싹이다 멈췄다. 무릎 위에 올려둔 손가락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움찔거렸다. 억지로 웃음 같은 것이 스쳤다가 금세 사라졌다. 고개를 젓는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가 그린 그림이 아니잖아. 네가 그렸을 리가 없어. “
우리는 긴 침묵을 끌어안고 집으로 향했다.
마트의 음악, 아저씨들의 호객소리, 흔들리는 불빛들이 거리에 흩어졌지만 내 마음은 어둠 속 발자국 소리 같았다. 집 앞에 다다르자 앞서 걷던 엄마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차갑게 스며드는 밤공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적막이 감도는 사이, 숨이 얇게 겹쳤다. 엄마는 나직하게 물었다.
”니….. 그림이라는 거야? “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말하면 웃음거리가 되고, 말하지 않으면 외톨이가 되는 자리. 나는 그 사이에 홀로 서 있었다.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고, 노준의 이름을 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혀끝에 맴돈 건 다른 기억들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감정. 진혁을 바라볼 때마다 느낀 떨림과 외면하려고 할수록 더 선명해지던 마음. 잠들기 전 어둠 속에서 내 몸을 파묻던 긴 한숨. 내 안에서 꾸물거리던 자책과 두려움. 왜 내 마음은 남들과 같지 않을까. 그 질문이 목구멍을 꽉 누르고 있었다.
다시 그림을 떠올렸다.
이제 더는 혀끝의 기억들을 삼킬 수 없었다.
마침내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렸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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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궂은 낙서엔 당황했고
누구의 행동인지 알았을 땐 걱정했다.
낙서를 보며 떠올린 지난 학창 시절의 동급생.
괴롭힘을 당하던 그는
혼란스러운 십 대의 시절을
더 깊고 고통스럽게 건너야 했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