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서로를 붙들며

by 김채이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아빠가 보였다.

낯설었다. 민형은 학원 복도 끝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아빠의 모습에서 약간의 죄책감이 내리치면서도, 그 이면에서 반항심이 농구공처럼 튀어 올라 올랐다.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민형은 사춘기라 하기엔 이미 그 또래의 아이들을 놀려먹을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차라리 사춘기여서 ‘넌 중2병이니 그럴 수도 있지.’라는 단순한 틀 안에 머무르고 싶었다. 키는 훌쩍 커버렸고 어깨도 제법 단단해졌지만 마음은 좀처럼 다부져지지 못했다.


민형은 다시 유리창너머 둘의 모습을 보았다. 아빠와 선생님이 자신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는 뻔했다. 잦은 결석과 매일같이 이어지는 지각, 그리고 거짓말. 아빠 앞에 앉은 유미선생님은 특유의 느릿한 끄덕임으로 아빠의 말을 받아주는 모습이었다. 유미선생님의 눈빛은 선생님이라는 직업치고는 매서워지는 법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 흔들림이 없고 헤프다시피 자주 웃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학생들의 작은 행동도 기억하고 표정과 말투에서도 학생들의 생각을 알아차리곤 했다. 영어문장을 읽는 어투에서 커닝인지 아닌지 조차 눈치채는 녹록한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민형이 학원을 빠지고 지각하면서 보내는 거짓문자에는 항상 '그래 알겠어' 라며 답해줬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오늘은 아빠가 다녀갔으니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민형은 강의실로 향했다. 상담이 끝난 후, 아빠는 잠시 민형 앞에 다가와 조곤조곤 타일렀다. 고개를 반복적으로 끄덕이며 답했지만 그저 이 순간을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다. 머릿속에선 창너머의 아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말끝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조리 있게 말하려 애쓰는 모습이, 민형에겐 조금 서툴고 그래서 더 애틋하게 보였다. 아빠는 원래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빠는 민형을 위해 일도 서둘러 마치고 학원으로 왔을 터였다. 항상 엄마가 하던 역할을 순식간에 떠맡고 자신의 학교며 학원이며, 들락거려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아빠.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마음이 불쑥 저려왔다.


‘필사적이다.’


그 말이 가슴에 꽂히자, 이상하게도 눈물이 차올랐다. 미안함 때문이 아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갑자기 느껴진 엄마의 부재가 민형의 어깨를 떨게 했다. 아빠는 민형의 어깨를 손으로 다독이며 말했다.


“형은 고3이라 더 힘들 거다.”


민형이 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를 조금 더 닮았다는 것이었다. 거울 속의 눈. 쌍꺼풀이 없는 크고 긴 눈. 거울을 볼 때마다 엄마의 눈을 본다. 만질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의 얼굴에서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엄마를 만질 수 없지만 그의 눈에서 볼 수 있음에 민형은 한층 위로를 받았다.


수업이 시작되자 유미선생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종종 “널 정말 아낀다.” 는 말을 건네곤 했다.

아낀다, 그 말은 고마움과 더불어 죄책감을 불러왔다. 그 마음이 진심이더라도 애써 모른 척하고 싶었다. 차라리 무관심하길, 아니, 관심은 계속 가져주더라도, 그냥 날 내버려 두길.

눈이 마주치자 선생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나 웃음기는 없었다. 최근 살이 빠진 듯한 얼굴, 중간중간 길게 내쉬는 숨, 강의 도중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 모습. 그녀 또한 무엇에 지쳤는지, 꽤나 고단함을 느끼는 듯했다.


수업이 끝난 교실은 유난히 조용했다. 선생님은 민형을 불러 앉혔다. 선생님과 마주 앉아 있으니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민형은 어둑한 밤과 근처 병원 간판들을 마주하자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 느꼈다. 선생님이 어떤 얘기를 할지 뻔했다. 그저 꾹 참고 태연한 척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물 한 모금을 삼키고 나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치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수백 번 연습하는 사람처럼.


“민형아, 넌 정말 내 아픈 손가락이구나.”


그 말은 무겁게 바닥에 떨어졌다.

아픈 손가락. 민형의 심장이 꼬집힌 듯 아팠다. 어린 가슴은 무너지고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삼켰다. 선생님은 한 번도 모진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아픈 손가락이라는 말조차 비난 섞인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민형은 억울했다. 도대체 세상은 왜 이렇게 자신을 힘들게 하는 걸까,

왜 날 끝없이 외롭게 만드는 걸까.

아픈 손가락이란 말에 오히려 민형의 손가락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실제로 욱신거리는 건 아닌데, 왠지 정말 그 자리가 시큰거렸다.

가슴 한쪽이 손끝까지 연결된 듯이.


유미선생님은 그 이상의 말을 덧붙이지 않고 민형의 말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 어쭙잖은 인내에 화가 났다.


"선생님이 제 마음을 알아요? 제가 어떤지?"


민형은 따지듯 되물었다. 잠시 선생님의 얼굴에 미안함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평정을 되찾은 듯 숨을 고르고 민형을 바라봤다.


"난 모르지."


이내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민형은 선생님의 눈을 마주했다. 여전히 흔들림은 없지만 평소보다 그늘진 눈빛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민형을 향한 것이 아님을 느꼈다. 선생님은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이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난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시니까. 널 온전히 이해하진 못해. 널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일 거야.”


그녀는 눈을 길게 두어 번 깜빡이고는 민형을 다시금 깊숙이 바라보았다. 안경 속의 두 눈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짧은 침묵. 컵을 든 선생님의 두 손이 초조히 움직였다.

이윽고 아주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민형아. 나는… 아이를 잃었어. “



몇 주 전부터 가족 모두가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고의 소식을 알리는 메신저에 선생님의 답장은 꽤나 긴 문장으로 왔지만 그중 기억나는 말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셨을 거야.'라는 말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의 마지막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켜줄 수 있었다는 것은 민형으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괜찮다는 말을 수십 번도 더 했다. 걱정하듯 보는 사람들, 울먹이는 사람들, 그 모두에게 괜찮다고. 엄마의 투병 중 입시 때문에 더욱 정신이 없었을 형은 그날 유독 의젓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형제 둘은 그날 하루동안 최대한 의연하게 조문객을 맞이하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엄마의 2년이라는 투병시간을 함께하며 마음의 준비를 해온 만큼 그날은 괜찮다고 느꼈고 그리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온 선생님의 얼굴을 보자 민형은 더욱 의젓하게 보이고 싶었다. 민형은 처음으로 선생님의 눈물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을 끌어안은 두 팔이 어색했지만 그는 본능처럼 선생님의 등을 토닥였다.

민형은 장례식장에서 다독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



선생님의 말에 교실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억울했다. 왜 세상은 자신에게 이렇게 잔인할까.

왜 하필 자신과 선생님 모두에게, 이런 식으로 결핍을 남겼을까.

엄마를 보내고 민형은 세상을 잃은 듯했다. 약냄새가 난다고 미안해하던 엄마. 예민하게 밀어내던 엄마. 그 모든 게 상관없었다. 그저 엄마가 곁에 있기를 바랐다. 그뿐이었다.


‘사실, 괜찮지 않았어요. 선생님.’


이제야 민형은 알 것 같았다. 왜 선생님이 그렇게 왜 야위었는지, 왜 지쳐 보였는지.

서로의 슬픔을 완전히 알 순 없지만, 같은 시기에 비슷한 상실을 겪고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민형은 알 수 없는 묘한 울림을 느꼈다. 자신만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고 생각했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아주 작게라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민형은 그날 선생님을 보듬었던 자신의 두 팔을 떠올렸다. 그리고 딱 그만큼 자신의 마음이 누그러지는 걸 느꼈다. 그 이상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만큼은 녹아드는 걸 알았다.


“괜찮아요.”


말은 입 밖으로 흘렀지만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떠난 엄마였을지도, 울던 선생님이었을지도, 아니면 거울 속 자신이었을지도.


다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내뱉고 나니 가슴이 조금 덜 무거웠다. 마치 누군가가 그 말을 들어주고, 믿어준 것만 같았다.


창에 비친 늘 흔들림 없던 어깨가, 여느 때보다 여려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겹쳐 비친 자신의 눈 속에서그는 엄마의 눈을 보았다.

그 속에서 엄마의 눈이 조용히 번져갔다.



본 글의 인물과 사건들은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했으나, 여러 파편을 엮어낸 창작소설임을 밝힙니다.



상실은 저마다 다르다.

각자의 겹쳐진 어둠이,

언젠가 우리를 빛으로 끌어올려주기도 할까.


나는 여전히 널 아낀다.

아픈 손가락이라 말했던 건

내가 너에게 해준 게 너무 없어서,

내 마음 한쪽이 미안함으로 늘 시큰거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억하렴,

너는 이미 누군가의 마음을 지탱해준 존재라는 걸.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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