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공간
서준은 삼 남매의 둘째였다. 누나는 첫째라서 늘 주목받았고, 막내는 늦둥이라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거실에서는 막내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고, 누나의 방안에서는 막 학원에서 돌아온 누나에게 간식거리를 가져다주며 격려하는 엄마의 말이 들려왔다. 그 사이에서 서준의 목소리는 늘 묻혀버리는 듯했다.
“네가 좀 더 동생 챙겨.”
“누나는 시험 준비하니까 시끄럽게 하지 마.”
서준에게 향하는 말들은 모두 잔소리 같았고, 그럴 때마다 서준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왜 나한테만 이래,
서준은 소파에 몸을 파묻고 휴대폰만 응시했다. 반채팅방에 걸려있는 담임선생님의 공지, 학부모총회라는 단어가 유독 크게 보였다.
이번에는 엄마가 올까,
엄마는 누나의 학교행사, 동생의 유치원행사엔 빠짐없이 갔다. 서준의 학교만 빼고. 아예 학부모총회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것 같았다. 후에 “내가 굳이 안 가도 되잖아. “라는 말은 이제 꺼내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는 변명이었다. 빈자리의 차이를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서준은 알고 있었다. 서준은 언제부턴가 자신이 가족 안에서 선명하지 않은 존재로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저녁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와 반찬들이 놓여 있었다. 아빠는 막내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고기를 잘라주고 있었고, 엄마는 누나에게 시험 범위가 어디까지냐고 꼬치꼬치 물어보고 있었다.
엄마와 누나의 대화가 오가고, 막내가 숟가락을 떨어뜨리자 아빠와 엄마가 동시에 웃으며 챙겼다.
서준은 숟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오늘은 말하고 싶었다. 선생님이 칭찬해 준 일, 달리기에서 반 대표로 뽑힌 일, 하지만 입을 열 기회가 오지 않았다. 엄마는 누나 쪽, 아빠는 막내 쪽. 대화와 시선은 양쪽 끝에서만 오갔다. 식탁 중앙에 앉은 서준은 마치 투명인간처럼 그 틈새에 끼어 있었다.
“나 오늘 …”
서준의 목소리는 반쯤 나오다 이내 숟가락 소리에 묻혔다. 서준은 결국 말을 삼키고 밥알만 꼭꼭 씹었다. 씹을수록 목이 메이고, 음식 맛은 희미해졌다. 텅 빈 자리처럼 자기 얘기는 식탁 위에 오르지 못한 채, 그저 무릎만 끄덕끄덕 움직일 뿐이었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 건 며칠 전 친구 지훈의 말이었다.
“우리 집에 고슴도치 생겼어. 엄청 귀여워. 근데 역시 만지면 따끔해.”
서준은 그 말을 계속 곱씹었다. 가시로 온몸을 덮고 자기 모양 그대로 살아가는 동물. 뾰족한 가시가 있을지언정 작고 귀여운 존재.
서준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활발하고 서글서글한 성격.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애굣덩어리이자 사랑스러운 남자아이.
모두를 금세 너그러워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달랐다. 마치 서준에게 가시가 있는 것 마냥 가족들은 서준을 보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자형제들 사이에 껴있는 유일한 아들 이어서일까. 유독 서준에겐 엄하고 냉정한 시선과 잣대가 있었다.
서준은 그날 이후로 줄곧 생각했다.
‘나도 고슴도치를 키워보고 싶다.’
다음 날 아침, 서준은 달렸다. 서준은 매일 아침마다 집에서 학교까지 전력질주했다. 시간에 딱 맞춰 출발하는 습관도 있었지만 아침공기를 맞으며 달리면 한층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도 있었다. 교실문을 활짝 열며 “내가 왔다!!” 큰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자 친구들이 저마다 웃으며 반겼다. 다연 역시 서준에게 간단히 인사했지만 유독 환한 미소와 반짝이는 눈빛은 한층 오래 서준에게 머물렀다.
서준은 지훈에게 다가가 고슴도치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곤 키우기에 어렵진 않은지, 어떻게 만지고, 어떻게 놀아주는지. 그리곤 이내 자신도 키우고 싶다며 부럽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서준은 침대에 누워 동영상들을 툭툭 넘기고 있었다. 거실에서는 막내와 부모님의 웃음소리가 쏟아졌고, 누나의 방에선 문제집을 넘기는 소리가 바스락거렸다. 서준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멈췄다. 알림 창에 ‘다연’이라는 이름이 떴기 때문이다.
“내일 너 생일이지? 선물 하나 줄게.”
다음 날, 하교 후 다연이 들고 온 건 작은 상자였다. 상자를 열자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고슴도치 한 마리가 보였다. 바늘 같은 가시 사이로 작은 눈망울이 반짝였다.
“얘, 네 거야. 괜찮겠어?”
다연은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서준은 말문이 막혔다. 당황스러웠지만 내심 기뻤다. 상자 안의 고슴도치는 작은 호두만 한 몸을 단단히 말고 있었다. 바늘처럼 빽빽한 가시 사이로 은빛이 살짝 비쳤고, 숨을 내쉴 때마다 등이 아주 미세하게 들썩였다. 조그만 코끝이 간헐적으로 파르르 떨리며 낯선 공기를 맡는 듯했다.
서준은 차가운 손끝으로 살짝 건드렸다. 순간 고슴도치가 움찔하며 더 세게 몸을 오므렸다. 촘촘한 가시가 서로 부딪히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아직 우리 친한 사이도 아니잖아’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마워. “
진심이었다. 직접 살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선물로 받게 되다니. 서준의 들뜬 표정에 다연의 두 볼도 더 붉어졌다.
다행히 집엔 아무도 없었다. 서준은 작은 친구가 담겨있는 상자를 안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마지막 서랍을 비우고 상자에 있던 종이를 깔았다. 함께 들어있던 쳇바퀴와 사료그릇을 배치한 후 조심스레 고슴도치를 옮겼다. 물과 사료를 놓아두자, 고슴도치가 코를 킁킁거리며 종이 위를 바스락거렸다. 그리곤 작은 발로 케이지 모서리를 두드리며 천천히 돌아다녔다. 서준의 인기척엔 잠시 웅크렸다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 모습이 서준의 마음과 닮아 있었다.
그 작은 존재에 눈과 귀를 집중하던 서준은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기만을 향한 시선이 방 안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이후 학교에 가면 서준은 지훈, 그리고 다연까지 고슴도치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의외로 부드러운 가시, 몸 안쪽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배, 뒤뚱거리며 넘어지는 모습 등. 이 작은 존재가 셋의 거리를 점점 더 가깝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직 안 들켰어.”
서준은 머쓱하게 웃었다. 고슴도치가 서랍 속에서 작게 움직일 때, 서준은 자신만 아는 비밀을 가진 듯 든든했다. 밤마다 고슴도치가 사료를 오도독 씹는 소리는 잔소리도, 웃음소리도 아닌, 오직 자기만을 위한 소리였다.
주말 오후, 학원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자 이상한 긴장감이 감도는 게 느껴졌다. 서준의 침대에 엄마가 팔짱을 끼고 걸터앉아 있었다. 서준의 가슴이 요동쳤다. 엄마는 서준을 보자 몸을 일으켜 책상으로 향했다. 서준의 눈이 재빠르게 서랍으로 향했다.
“이게 뭐야?”
엄마가 서랍을 열자, 고슴도치가 몸을 웅크렸다.
“서준아!”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걸 대체 언제부터 키운 거야? 왜 말을 안 했어?”
서준은 고슴도치처럼 서 있었다. 가시는 세웠지만 마음은 잔뜩 웅크려 있었다. 그동안 쌓아온 작은 위로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앗!”
엄마가 고슴도치를 집어 올리려다 가시에 찔린 듯했다. 순간 방 안에 적막이 흘렀다. 웅크려 떠는 고슴도치를 보자 왠지 서준은 두려우면서도 억울했다. 서준은 겨우 용기를 내 서랍을 닫으며 말했다.
”숨겨서 미안해. 근데 어차피 관심 없잖아. 나한텐”
말이 터져 나오자 목이 뜨겁게 타올랐다. 숨이 가빠지는 것 같았다.
고슴도치의 작은 숨소리가 서랍 밖으로 새어 나오는 듯, 새로운 공기가 둘 사이에 채워졌다. 엄마는 처음으로 아들의 외로움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 서준은 엄마의 눈에서 ‘이해하려는 기색’을 느꼈다.
그날 저녁, 거실 한편에 작은 케이지가 놓여 있었다. 아빠가 새로 사 온 고슴도치 보금자리였다. 이번엔 서준의 서랍이 아니라, 모두가 오가는 길목이었다.
“이제는 다 같이 돌보자.”
엄마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지만, 서준은 그 안에 묘한 온기를 느꼈다.
아빠는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지하게 말하는 아빠에게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얘 되게 귀엽다.” 하고 웃었고, 동생은 이름을 지어주자며 미니, 빠니 같은 단어를 나열했다.
서준은 고슴도치가 새 집 안을 조심스레 돌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케이지 안에서 고슴도치는 조심스레 돌아다니다가, 쳇바퀴에 오르더니 느릿하게 발을 옮겼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와 작은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퍼졌다.
그 소리는 잔소리도, 누군가의 웃음소리도 아니었다. 오직 서준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자신에게만 건네지는 목소리 같았다.
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늘 저녁, 엄마의 목소리 속에 스쳐 지나간 온기. 아빠의 단호한 말, 누나의 웃음, 막내가 붙여준 서툰 이름. 그 모든 것이 케이지 안 작은 생명과 뒤섞여 하나의 풍경처럼 떠올랐다.
‘나는 이 집에서 없어도 되는 존재가 아니구나.’
가슴속이 벅차오르면서도 한켠이 아릿했다.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아직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이었지만, 그 뾰족함 속에 따뜻한 체온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슴도치가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듯, 자신도 이제 가족 안에서 자리를 찾은 듯했다.
그날 밤, 서준은 다연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이제 가족이랑 같이 키우게 됐어.”
곧바로 도착한 답장은 단 한 줄이었다.
“잘됐다! 서준아.”
짧고 단단한 문장이었다.
서준은 천천히 손끝을 케이지 위에 얹었다. 얇은 철망 너머로, 고슴도치의 작은 움직임이 전해져 왔다. 손끝이 간질거리며 따뜻해졌다. 그 순간, 서준은 깨달았다. 비록 가시가 있어도, 서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편안해야 할 자리에서조차,
가장 가까운 이들 곁에서도
외로움이 스며들 때가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고슴도치가 숨어 있지만
서준도, 나의 동생도—
조금만 더 일찍 다독여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맙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