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가족
미역국과 소시지볶음.
건오는 엄마가 해놓은 밑반찬 몇 가지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 누나와 마주 앉았다. 허전한 식탁에 둘이 앉아 있지만 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누나는 젓가락만 건드리며 휴대폰 화면을 만지작거렸고, 입으로 들어가는 건 거의 없었다. 무미건조하게 오물거리는 입은 마른 볼을 더 움푹해 보이게 했다. 건오는 힐끔 눈길을 주다, 이내 볼 것도 없는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학생이 된 누나와 고등학생이 된 건오.
“누나, 대학은 좀 어때?”
”똑같지 뭐. “
서있는 지점이 달라서일까. 누나는 건오에게 묻지 법이 없었다.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학교 선생님들은 어떤지, 그런 평범한 질문조차 없었다. 이 정도는 궁금하지 않을까 싶지만 여전히 누나와 건오 사이엔 젓가락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은 걸까.
미역국은 이미 김이 사라져 미지근했고, 소시지볶음의 기름만 반짝거렸다. 젓가락 소리만 가끔 공기를 건드릴뿐, 식탁은 늘 차갑게 식어 있었다. 건오는 삼켜버린 말을 음식과 함께 씹어 삼켰다.
방으로 들어오자, 숨이 조금 놓였다. 건오는 또래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소 날카로운 눈매와 다부진 턱선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땐 사무라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겉으론 제법 단단해 보였지만, 그 눈빛은 쉽게 흔들리곤 했다. 흔들리는 시선을 붙잡는 것은 건오의 자동차였다. 건오는 창가 선반에 나열된 큼지막한 자동차 위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닦았다. 새로 조립하는 날렵한 검은색 자동차도 오늘만 더 손보면 주말에 들고나갈 수 있을 것이다. 건오는 공구상자를 뒤적이며 부품을 꺼냈다. 공구를 쥔 손가락엔 흠집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고, 검게 그을린 피부가 빛을 받으며 번들거렸다. 부품을 맞추는 순간만큼은 그 손끝이 세상 어떤 것도 놓치지 않을 것처럼 단단했다.
나사와 부품들이 맞물려 들어가는 소리.
몰두하는 눈과 손끝이, 무언가를 대신 채우고 있었다.
주말 아침, 건오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끔은 조립한 자동차를 학원에 들고 가 보여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며 한 번씩 만져보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였다. 건오는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또래들 속에서도 그는 크게 어울리지 않았고, 자동차는 그의 유일한 자랑이자 이야깃거리였지만 오래 이어지는 이야기가 되지는 못했다
소파에 앉아있던 엄마는 티브이 채널만 돌려댔다. 누나는 이미 외출한 뒤였다. 건오는 두대의 자동차를 챙겼다. 하나는 완성된 것, 하나는 새로 만든 것. 창문 아래 주차장에 아빠의 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서둘러 내려갔다.
공원 들판에서 자동차 두대가 엎치락뒤치락 달렸다. 리모컨을 흔드는 두 팔이 부딪혀 넘어질 뻔하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 웃음이 터졌다. 잠시동안, 그 웃음이 건오를 지탱했다. 둘은 한참 동안 자동차를 달리게 한 뒤, 벤치에 앉았다.
“누나는 어때?” 아빠가 무심히 물었다.
“누나는, 똑같지 뭐.”
툭하고 내뱉었지만 사실이었다. 건오의 시선이 어느새 회청빛으로 흐려진 하늘에 머물렀다. 아빠는 손바닥만 괜스레 비비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누나는 아빠가 집을 나간 순간부터 1년이 넘게 아빠를 만나지 않았다. “바람피운 사람을 뭐 하러 봐.” 늘 같은 한마디였다.
건오는 주말마다 아빠를 만났다. 아빠가 사준 조립자동차를 꼼꼼히 조립해 빈틈없이 다듬고 아빠 앞에 다시 들고 나왔다. 그리고 똑같이 리모컨을 들고 똑같이 움직이며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이 정말 즐거운 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몇 시간을 마음에 담아, 다음 한주를 버티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누나의 방문 안에서 부딪히는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굳이 왜 그래야 하는데?”
엄마의 높아진 목소리가 문밖을 찔렀다. 또 같은 화제로 둘은 싸우고 있는 듯했다. 기숙사로 들어가겠다는 누나와 붙잡으려는 엄마. 누나는 고집을 부렸고 엄마는 거부했다. 이유는 통학거리였지만, 건오는 알고 있었다. 누나는 더 이상 엄마의 얘기가 듣고 싶지 않다는 걸.
지난 3년 동안 엄마의 유일한 창구는 누나였다. 들어주는 사람은 딸 밖에 없다며, 아빠의 긴 외도 동안 맘에 쌓인 상처와 원망을 딸에게 여과 없이 쏟아냈다. 속된 말로 엄마의 감정쓰레기통, 그게 누나였다. 점점 건조해졌다. 누나는 귀를 닫았고 말라붙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누나를 놓지 않았다. 아빠가 떠난 집에서 누나마저 나간다, 엄마는 견디지 못할 사람이었다. 묵묵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부터 누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 안에서 튀어나온 목소리 뒤로, 눌린 듯 고칠고 긴 탄식이 섞여 흘러나왔다. 건오는 문틈에 손을 올렸다가 이내 내렸다. 차마 그 안으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건오는 누나의 방문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 자신의 방으로 가고 싶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누나를 이해하면서도 두려웠다.
정말로 가버리면 어쩌지,
엄마의 불안이 곧 자신의 불안임을 느꼈다.
다시 돌아온 주말, 오늘은 식사만 하자고 했던 아빠를 기다렸다. 차에 오르자 묘하게 달콤하면서도 텁텁한 향이 코를 찔렀다.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향. 아마도 그 여자가 타다 간 모양이었다. 코를 괜히 킁 하고 풀어내자 아빠는 힐끗 바라보고는 창문을 열었다.
이후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아빠의 차가 멀어졌다. 건오는 아빠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결국 이혼했다는 것. 그리고 그 여자와 살기로 했다는 것.
건오의 코 끝에 아직도 불쾌한 그 향이 맴도는 듯했다. 건오는 거칠게 코를 문질렀다. 콧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손에 묻었다. 입술을 깨물며 바지에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요즘 특히 더 예민했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채널을 멈추지 못하던 손가락, 방 앞을 오가던 불안한 몸. 귀를 찌르는 목소리.
‘누나는 정말 나갈 것이다.’
그제야 누나의 확고함을 이해했다.
누나 또한 결국 떠날 것임을, 이 또한 이해했다.
왜 아빠와 만났을까.
차라리 그 시간 동안 셋이 함께 있었다면.
그냥 아닌 척하고 싶었던 걸까.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건오의 머릿속에 온갖 물음표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건오는 책상 앞에 앉았다. 절반만 조립된 흰 자동차가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뜯겨나간 듯 너덜너덜해 보였다.
‘난 이걸 좋아하지 않아. 대체 누굴 위해 만든 거지? 아빠? 엄마? 아니면 나 자신?‘
공구를 들었다. 같은 손길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철컥, 나사가 풀리며 부품이 느슨하게 흔들렸다. 하나씩 뜯어내기 시작했다. 해체하고 버리는 것을 반복했다. 작은 부품들이 쓰레기통에 떨어질 때마다 ‘톡, 딱’ 하는 미약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건오의 가슴속에서는 그 소리가 메아리처럼 부풀어 올라, 방 안을 가득 울리는 굉음으로 들렸다. 다시 뜯고 또 버릴 때마다, 그 울림은 더 크게 번져나갔다. 어떤 부품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채우던 것이 비워졌다.
건오는 손끝을 얼굴에 스치며 눈물을 닦았다.
쓰레기통 속 흩어진 부품들. 그 안에 자신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무엇을 붙들 수 있을까.
건오는 조각난 부품이었다.
가족의 균열은 아이의 손끝에도 남는다.
흩어진 조각들을 바라보는 일은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흩어진 조각을 붙들고 있던 네 마음을
내가 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네 웃음이, 네 손끝이,
다시 무언가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