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하늘 사이에서
차마, 계속 타고 갈 수 없었다.
‘그냥 내본 거라고?’
시연은 분개심을 안고 도중에 버스에서 내렸다. 얼굴에 엉키는 머리카락을 걷어내는 손길은 거칠었다. 버스에선 얼버무리며 내렸지만, 속에서 달아오르는 열기를 감출 수 없었다.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르는 얼굴, 그만큼 질투가 끓어올랐다. 시연은 교복재킷의 팔소매를 걷어올린 채 집으로 걸어가며 예인의 말을 곱씹었다.
글로 대학에 갈 생각은 없다.
문예과엔 가고 싶지 않다.
공부를 잘해서 다른 과로 갈 것이다.
예인은 문학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글을 쓰는 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대학과 그 과에서. 하지만 예인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저었다.
“난 그냥 내봤는데..”
시연은 속이 뒤집혔다. 질투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왜 나보다 덜 간절해 보이는 예인이, 나 대신 무대에 서 있는 걸까. 수상하지 못한 것도 속상하지만, 더 화가 난 건 자신보다 열정이 없어 보이는 예인이 상을 차지했다는 사실이었다. 휴대폰 속 SNS는 예인의 상장과 대회 해시태그로 채워져 있었다. 그날 시연은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단상에 오르는 예인의 뒷모습만 바라봐야 했다.
거리는 벚꽃이 만개해 분홍빛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연의 발걸음은 꽃잎을 살며시 밟아내는 대신, 거칠게 쓸어내듯 지나갔다.
몇 달 전, 시연은 엄마가 작명소에서 받아온 종이를 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지어준 ‘가은’이라는 이름이 사주에 맞지 않는다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넌 재능이 있는데, 뭔가 운이 안 따라. 이름을 바꿔야 길이 트일 거야.”
이름이 무슨 상관이라고,
시연은 콧방귀를 뀌며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끝내 거실에서 여러 이름을 불러가며 어떤 게 낫냐고 묻고 또 물었다. 종이 위에 적힌 낯선 이름들이 줄지어 있었다. 시연, 시현, 지윤..
이름만 바꾸면 내가 달라질까.
글씨를 따라 눈을 옮길수록 오히려 시연 안의 불안이 또렷해졌다.
교내 시화전 수상작발표를 앞두고 있던 시연은 마음이 복잡했다. 내일이면 시화전의 대상수상작이 복도에 걸릴 예정이었다. 대회의 주제는 하늘이었다. 시연은 희망을 담은 하늘을 담아 제출했다.
“하늘은 늘 변하지만, 그 속에 남은 작은 희망.
구름이 흩어져도, 내일은 다시 푸르다.”
친구들도 감탄하지 않을까, 선생님들에게 뽑혀 걸리면 좋겠다—기대와 불안이 뒤섞였다.
그러나 복도에 걸린 건 시연의 작품이 아니었다. 예인의 것이었다. 예인의 시에는, 전혀 다른 하늘이 담겨 있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작은 상자.
구름아래, 사람들의 걸음은 흩날리는 모래알 같다.”
선생님들은 위에서 내려다본 시선이 더 좋았던 걸까. 시연은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시선 앞에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네 이름은 너랑 안 맞는대.’
이름을 바꾸면 길이 더 잘 풀릴 거라는 엄마의 말, 그렇게 시연은 예인의 작품을 바라보며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같은 하늘인데, 왜 나는 늘 아래에서만 바라보는 걸까. 나도 위에서 아래를 볼 수 있을까,
그렇게 가은은 시연이 되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예인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 학원 근처 카페에서 시연은 우연히 예인을 마주쳤다. 사복 차림의 예인은 조금 낯설어 보였다. 찢어진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시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가갔다.
예인은 고개를 들어 시연을 보더니, 무심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가은아—”
순간, 예인은 스스로 말이 잘못 나왔다는 걸 깨닫고 입술을 다물었다.
“아… 아니지. 이제 시연이지. 미안.”
예인의 사과는 가볍게 흘러갔지만, 시연의 가슴은 묘하게 저릿했다.
가은에서 시연이 된 것. 그것이 내 안에서 진짜 변화를 가져왔을까.
“예인아, 너는 왜 글을 써?”
인사치레의 안부를 얘기하던 시연은 오래 묻어둔 질문을 꺼냈다. 시연은 궁금했다. 자신보다 열정도 애정도 없는 예인이 왜 글을 쓸까, 굳이 왜 자신의 운을 빼앗아가는 걸까.
예인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답답해서?”
예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순간, 시연의 마음속 어딘가가 움찔했다. 단순한 질투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색이 시연의 얼굴에 스쳤다. 가볍게 던지는 말 같았지만, 예인의 눈빛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집안은 모두 교육자. 창작가가 한 명도 없고, 글로 살아간다는 걸 가족들이 인정해 줄 리 없다는 얘기였다.
“나만 좋은 거지, 뭐.”
예인은 무심한 듯 말했지만, 그 말 뒤엔 고립된 재능의 그림자가 있었다.
시연은 그제야 깨달았다. 예인이 열정이 없는 게 아니라, 그걸 드러낼 자리가 없었던 건 아닐까.
자신은 재능이 없지만 모두의 지지를 받는다. 부모와 함께 대회에 가고, 시화전에는 고모가 그림까지 그려주었다. 반면 예인은 재능이 있지만 혼자였다. 상장 사진조차 혼자 올릴 수밖에 없었다.
시연은 생각했다. 누가 더 절박한가. 지금껏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말을 나만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예인은 더 오래, 더 깊게 그 말을 견뎌왔는지도 모른다.
우연한 만남을 뒤로하고 시연은 버스에 올랐다. 창밖 너머 여전히 홀로 앉아있는 예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시연은 자신의 시 구절을 떠올렸다.
“구름이 흩어져도, 내일은 다시 푸르다.”
하지만 창밖의 예인은, 마치 다른 시의 구절 같았다.
“구름 아래, 사람들의 걸음은 흩날리는 모래알 같다.”
지지받는 재능과 지지받지 못하는 재능
시연의 이름이 가은이었다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재능의 이름이었다.
재능은 비교 속에서 흔들리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이다.
우리는, 때로는 시연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가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질투도 고독도,
그 자리에 서 본 사람만이 안다.
나는 오늘도, 두 개의 하늘 사이에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