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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Feb 22. 2020

눈 오는 날,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다.

복잡한 마음을 덮어주는 눈이 좋아

오겡끼데스까~(잘 지내시죠?)


 눈이 펑펑 내려 세상이 하얘지면, 나는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새하얀 설원 위에서 뜨거운 속마음을 끄집어내어 소리치는 장면. 그 장면을 본 이후로 속이 답답해질 때면,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눈 덮인 시골 마을을 거니는 상상을 한다. 머무는 민박은 기한 없이 길게 잡고, 쫓기는 것 하나 없이 멍하니 창문 밖 설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문득 문득 드는 생각들을 원고 위에 옮기는 거지. 물론 영화처럼 똑같이 설원 위에서 ‘오겡끼데스까’를 외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그냥 내가 머무는 이 곳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뜨거워진 마음을 새하얗게 식혀줄 그곳으로 옮겨 놓고 싶은 거다.



 그저께인가… 한밤중에 눈이 펑펑 내렸다. 가로등 아래 비친 작은 세상은 조금씩 하얘졌는데, 나는 창 밖으로 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밤이어서 조용한 걸까, 눈이 와서 조용한 걸까. 바람소리를 제외하면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는데, 그 적막에 귀 기울이는 것이 참 좋았다. 


 내리기 좋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가리지 않고, 어느 곳에나 똑같이 내리는 하얀 눈은 울퉁불퉁한 내 마음까지 평평하게 덮어주었다. 가끔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해결하지 못한 채로 억지로 눌러 담거나 한 곳으로 치워 놓곤 했다. 요즘은 이런 마음을 핑계로 게으르고 나태해지기까지 했으니… 자괴감이 말로 이룰 수 없었다. 



 이 날 질척 질척한 내 마음을 다시금 하얗게 덮어주는 눈을 보며 작은 위로를 느꼈다. 결국 눈은 다음 날 햇빛에 금세 녹아버리고 말았지만 눈이 펑펑 내리던 그 밤, 그 순간에 나는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내리는 눈과 피어오르는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 겨울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날 밤의 눈이, 다가올 나의 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바라기는 영화처럼 ‘오겡끼데스까’에 이어 ‘와따시와 겡끼 데스(나는 잘 지내요)’를 외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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