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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Apr 09. 2020

20대가 읽은 '파우스트'

파우스트 대사 모음

네가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 1권 24p, 주님


 많은 생각이 들던 구절. 노력하면 안정을 찾아야 인지상정일텐데, 그렇지 않다라는 것...결국 인간과 방황은 운명처럼 엮여있고 이를 부정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시달리고 극복해나가며 성장하는 게 바로 인간이구나, 를 깨닫고 공감한다.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더군요, 라고.

- 1권 24p, 주님


그러나 난 경직된 상태에서 행복을 찾지는 않겠다. 
놀라움이란 인간의 감정 중 최상의 것이니까. 
세계가 우리에게 그런 감정을 쉽게 주지 않을지라도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보아야, 진정 거대한 걸 깊이 느끼리라. 

- 2권 89p, 파우스트


 경직된 상태에서의 행복...결국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안정적인 상황은 편하지만 그 속에서 '놀라움'을 찾을 수는 없다. 놀라움의 전제는 무엇일까. 놀라움이란 멈추지 않는 도전과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은 아닐까.


뭐라고! 여인의 아름다움이란 별것이 아니오. 자칫하면 굳어버린 모습이 되기 쉽지.
찬양할 만한 미의 속성이란 오로지 
삶을 즐기는 데서 솟아나는 것이오.

- 2권 153p, 히론


방황해 보지 않으면 자각에 이르지 못하는 법이야. 

- 2권 173p, 메피스토펠레스


 대척점에 있는 메피스토펠레스가 툭 던진 말이지만, 이 세계의 진리를 담고 있다.


첫째 여인: 내 이름은 결핍이에요. 
둘째 여인: 나는 죄악이라고 해요. 
셋째 여인: 내 이름은 근심이에요. 
넷째 여인: 나는 곤궁이라고 하고요. 
셋이 함께: 문이 닫혀서 들어갈 수 없군요. 
안에는 부자가 살고 있어서 들어가기 싫네요. 
결핍: 그럼 난 그림자가 되겠어. 
죄악: 난 없어져야지. 
곤궁: 사치에 젖은 얼굴은 날 싫어하는데. 
근심: 언니들은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서도 안 돼요. 
근심인 나는 열쇠구멍으로 살짝 들어가지만요.

- 2권 355p, 회색의 네 여인(결핍, 죄악, 근심, 곤궁)


결핍과 죄악과 곤궁은 부자를 무너뜨리지 못하지만 근심은 가릴 데 없이 찾아올 수 있다.


근심: 누구든 내게 한번 붙잡히면,
온 세상이 쓸모 없게 되지요.
(생략)

파우스트: 닥쳐라! 그 따위에 난 꿈쩍도 않는다!
(생략)

근심: 저주의 말과 함께 재빨리
당신을 떠날 때, 내 위력을 알 거요! 
인간이란 한평생 앞을 보지 못하니, 
파우스트, 당신도 이제 장님이 되세요! 

(파우스트에게 입김을 내뿜는다) 

- 2권 357p~ 360p 근심과 파우스트 대화
천사들, 파우스트의 불멸의 영혼을 인도하며 하늘로 오른다. 

- 2권 275p


 


 파우스트, 고전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이 있던 내게 다가서기 참 어려운 책이었다. 책장에 참 오래동안 꽂혀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더 이상 미루기도 애매해(양심상...) 드디어 읽게 되었다.


 의외로 내용상 난해하지 않고 술술 읽혔다. 사실 굵직한 스토리라인을 보면 이만큼 재미있는 책도 없다. 하나님과 악마의 내기,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인간 파우스트의 계약, 그와 함께 떠나는 유혹&환상의 세계...그리고 정의구현(?).


 하지만 읽으면서 고전에 대한 내 역량(?)이 부족하구나...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마블 영화를 전혀 안 본 사람이 어벤져스 마지막 편을 본 느낌이랄까. 그 자체로도 즐겁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인물, 상황들이 신화나 당시 시대상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예전 나 때 초등학생들의 필독서(?)였던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 덕분에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문호 괴테가 60여년 동안 집필한 이 책을 20대의 내가 어떻게 단기간에 정리하여 평할 수 있을까. 

 작품 해설을 맡으신 '정서웅' 숙명여대 교수님(지금도 교수님이신지는 모르겠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드는 생각은 '아, 10년 후쯤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이 책을 읽고 나면 또 드는 생각은 '아, 10년 후쯤 또 한 번 읽어보고 싶네' 일 것이다. 그 다음 10년도, 그 다음 10년도. 그만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의 상황에 따라 이 책은 다시 읽히고 다시 해석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지금의 20대인 내가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인간은 불안과 고통, 미혹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결국 노력하는 한 구원받는다'

 이는 괴테의 시대, 르네상스가 추구하는 '인식하고 깨닫는 인간'상이며 실제로 작품 속 주님의 대사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로 상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20대인 내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는 실제로 내 마음 속에 있는 불안과 혼란 때문이지 않을까. 안정적인 '무언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초조해지고 불안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 마치 파우스트의 그것과 비슷했다. 물론 파우스트의 불안은 '인식'을 향한 갈구에서 비롯되지만...결국 갈구하면 할수록 태생적으로 부족한 인간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는 공통점에서 '공감'했나보다.


 멋진 언어로 후기를 남겨보고 싶었으나 '파우스트'처럼 내 능력(인식)의 부족함을 느끼며 글을 마무리한다. 10년 후에 써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방황하던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를 보며, 발전할 내일의 나를 그리며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인간 아니겠는가. 파우스트, 10년 후에 다시 이야기 나눠봅시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692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서웅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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