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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Apr 18. 2020

노르웨이의 숲: 불완전한 세계의 불완전한 사람들

노르웨이의 숲 글 모음 & 짧은 후기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중략)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이미 갖추어졌고, 그런 사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열일곱 살 5월의 어느 날 밤에 기즈키를 잡아챈 죽음은, 바로 그때 나를 잡아채기도 한 것이다.


48p, 와타나베, [죽음에 관하여]





 뒤틀림을 교정하려는 게 아니라 그 뒤틀림에 익숙해지기 위한 것이라고 했어. 우리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그 뒤틀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사람마다 걷는 버릇이 다르듯이 느끼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 보는 방식이 다른데 그것을 고치려 한들 쉽게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고치려다가는 다른 부분마저 이상해져 버린다고 말이야. (중략)

 여기 있는 한 우리는 남을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고, 남에게 아픔을 당하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뒤틀림'이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155p 나오코, [뒤틀림(다름)에 대하여]




"(중략) 마음을 잘 여는 사람과 열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 같은 거. 자기는 잘 여는 사람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열려고 하면 열 수 있는 사람이야."

"마음을 열면 어떻게 되죠?"

레이코 씨는 담배를 문 채 즐거운 듯 테이블 위에서 손을 모았다. "회복하는 거지." 그녀는 말했다.


177p, 레이코, [회복; 마음을 열다]




"(중략) 내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정말 몸이 부서져라 노력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내가 뭘 잘 못 본 겁니까?"

"그건 노력이 아니라 그냥 노동이야." 

나가사와는 간단히 정리해 버렸다.

"내가 말하는 노력은 그런 게 아냐. 노력이란 건 보다 주체적으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거야."


343p, 나가사와, [노력과 노동의 차이]




나는 지금까지 보다 더 많이 너에 대해서 생각해.


368p, 나오코의 편지, [표현하다]




어이, 기즈키, 나는 생각했다. (중략) 나는 지금보다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할 거야.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야만 하니까. 지금까지 나는 가능하다면 열일곱, 열여덟에 머물고 싶었어.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이제 십 대 소년이 아니야. 난 책임이란 것을 느껴...


415p, 와타나베, [삶의 의지]





"인생이란 비스킷 깡통이라 생각하면 돼.(중략) 비스킷 깡통에는 여러 종류 비스킷이 있는데 좋아하는 것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먹어 치우면 나중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는 거야. 나는 괴로운 일이 있으면 늘 그런 생각을 해. 지금 이걸 해두면 나중에는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깡통이라고."


419p, 미도리, [인생은 비스킷 깡통; 고난을 겪을 때]




"너는 늘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내가 똑똑, 와타나베, 똑똑, 문을 두드려 보아도 눈만 한 번 들어 쳐다보곤 금방 자기 세계로 돌아가 버리지."


422p, 미도리의 편지, [똑똑, 와타나베, 똑똑]




"우리(우리라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을 하나로 묶은 총칭이에요.)는 불완전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불완전한 인간이에요. 줄자로 길이를 재고 각도기로 각도를 재거나 해서 은행 예금처럼 조금씩 빼내 먹으며 살아갈 수는 없는 거예요. 그렇죠?"


447p, 레이코의 편지, [불완전한 세계의 불완전한 인간; 어쩌면 이 책의 주제]




내 기억의 대부분은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에 이어져 있었다. 내가 나오코를 위해 마련해 둔 방들은 창문이 닫히고 가구는 하얀 천으로 덮이고 창틀에는 뽀얗게 먼지가 앉았다. 나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그 방 안에서 지냈다.


457p, 와타나베, [추상의 구체화]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좋아한다기보다 오히려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이 더욱이 '삶'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은 그런 책이었다. '죽음'과 맞닿아 있는 책. 하지만 흔히 이야기되다시피 죽음은 결국 산 사람의 몫이다. 다른 이의 죽음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산 사람이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여러 관계 속에서 죽음과 마주하고 그것이 주는 상실과 혼란을 머금은 채 '삶'을 이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책임'이라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생동하는 '삶(미도리)'을 만나게 된다. 

최종적으로, 죽음과 고독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산 사람의 자아가 발아되는 과정(*완성이 아니다)이 바로 이 책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로 느껴졌다.


 하나 더. 레이코의 편지에서 이야기된 '불완전한 세계의 불완전한 사람들'. 완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또, 완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인 세계는 과연 완전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불완전한 세계의 불완전한 사람들인데 겉보기에 세상은 완전하고, 그 속의 사람'들'도 완전하다. 정상으로 포장된 세계에서 느끼는 완전하지 못한 비정상들의 혼란을, 이 책은 담담한 와타나베의 시선에서 담아냈다. 

 

 남들의 속도와 다를까 봐, 남들의 시선에 뒤틀린 사람으로 보일까 봐 나의 다름(혹은 아픔)을 교정하려 했던 과거 내 모습들. 책을 읽으며 교정해왔던 내 모습은 무엇인지, 또 내가 교정하려 했던 남의 뒤틀림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285591

무라카미 하루키(민음사, 역자 양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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