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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Mar 07. 2021

불편한 편의점의 필요성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


머리는 거의 쓰지 않고 내 안에 배어 있는 규칙이 육체에 지시를 내리고 있다.

10p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두 입을 모아 작은 새가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흐느껴 울며 그 주위에 핀 꽃줄기를 억지로 잡아 뜯어 죽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이네. 분명 작은 새도 기뻐할 거야"라고 말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다들 머리가 이상한 것 같았다.

...누군가가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아이스크림 막대기가 흙 위에 꽂히고, 꽃 시체가 듬뿍 바쳐졌다.

17p


아버지와 어머니가 슬퍼하거나 여러 사람에게 사과해야 하는 상황은 나의 본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집 밖에서는 가능한 한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사람 흉내를 내거나 누군가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일절 그만두었다.

20p


제복을 입고 복장 체크 포스터에 따라 옷차림을 가다듬었다. 머리가 긴 여자는 묶고, 시게나 액세서리도 다 벗고 줄을 서자, 아까까지 제각각이던 우리가 갑자기 '점원'다워졌다.

25p


대학생, 밴드를 하고 있는 젊은 남자, 프리터, 주부,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등 다양한 사람이 같은 제복을 입고 '점원'이라는 균일한 생물로 다시 만들어져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27p


"어서 오세요!"

나는 아까와 같은 음색으로 큰 소리로 인사하고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

31p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지금도 꿈틀거리고 있을 그 투명한 유리 상자를 생각한다. 가게는 청결한 수조 안에서 지금도 기계장치처럼 움직이고 있다. 그 광경을 상상하고 있으면 가게 안의 소리들이 고막 안쪽에 되살아나 안심하고 잠들 수 있다.

아침이 되면 또 나는 점원이 되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34p


내 말투도 누군가에게 전염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전염하면서 인간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40p


입고 있는 옷도, 말의 리듬도 달라져버린 내가 웃고 있다. 친구는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48p


18년 동안 '점장'은 모습을 바꾸면서 줄곧 가게에 있었다. 그들은 각자 모두 다른데, 전원이 합쳐져서 한 마리의 생물인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57p


"여기는 변함이 없네요."

...

점장도, 점원도, 나무젓가락도, 숟가락도, 제복도, 동전도, 바코드가 찍힌 우유와 달걀도, 그것을 넣는 비닐봉지도, 가게를 오픈했을 당시의 것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줄곧 있긴 하지만 조금씩 교체되고 있다.

 그것이 '변함없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70p


이곳은 강제로 정상화되는 곳이다. 이물질은 바로 배제된다.

79p


편의점은 강제로 정상화되는 곳이니까, 당신도 곧 복원되어버릴 거예요.

90p


아, 나는 이물질이 되었구나.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가게에서 쫓겨난 시라하 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은 내 차례일까?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가족이 왜 그렇게 나를 고쳐주려고 하는지,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02p


"그래서 깨달았어요. 이 세상은 석기시대와 다를 게 없다는 걸.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은 삭제되어갑니다. 사냥을 하지 않는 남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 현대사회니 개인주의니 하면서 무리에 소속되려 하지 않는 인간은 간섭받고 강요당하고, 최종적으로는 무리에서 추방당해요."

112p


"편의점에 계속 있으려면 '점원'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건 간단한 일이에요. 제복을 입고 메뉴얼대로 행동하면 돼요. 세상이 석기시대라 해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사람이라는 거죽을 쓰고 그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무리에서 쫓겨나지도 않고, 방해자로 취급당하지도 않아요.

...

그러니까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보통 인간'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는 거예요. 저 편의점에서 모두 '점원'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116p


"언니는 언제면 고쳐질까?

...

제발 부탁이니까 평범해져."

여동생은 더욱 격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158-159p


18년 동안 그만두는 사람을 몇 명이나 보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빈틈은 메워져버린다. 내가 없어진 자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충원되고, 편의점은 내일부터 전과 똑같이 굴러갈 것이다.

172p


모든 것을 편의점에 합리적이냐 아니냐로 판단하던 나는 이제 기준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 행동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하면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180p


"이제 깨달았어요. 나는 인간인 것 이상으로 편의점 점원이에요. 인간으로서는 비뚤어져 있어도, 먹고 살 수 없어서 결국 길가에 쓰러져 죽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내 모든 세포가 편의점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요."

193p




 장면#1 '모던 타임즈'

공장에서 나사 조이는 일을 하는 찰리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빠르게 밀려들어오는 나사못을 조이고 조이고 조인다. 결국,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여버려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되고,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못이겨 그만 거대한 톱니바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데, 그 속에서도 그는 개의치 않고 우스꽝스럽게 톱니바퀴의 나사못을 조인다.


 장면#2 '설국열차'

 거대한 기차 속 메이슨 총리는 열차의 꼬리칸 탑승객들 앞에서 강압적으로 이야기한다.

"기차에 탈 때부터 각자의 자리는 탑승권에 명시되어 있었다. 일등석, 일반석, 그리고 너희같이 무임승차한 쓰레기들! 성스러운 엔진이 영원한 질서를 정해놓은 거야.  모든 것은 성스러운 엔진에서 비롯된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물과 승객들. 흐르는 물과 온기, 모두 성스러운 엔진 덕분에 존재한다. Keep your place(네 자리를 지켜)!"




 봉준호의 '설국열차',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을 읽는 내내 생각나는 장면들이었다. 세 작품의 맥락을 잇는 것은 바로 인간의 '부품화'. 부품은 집체 속에서 '기능'을 해야 한다.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부품은 고장난 것이고, 고장난 부품은 교체를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게 똑같은 기능을 하는 다른 부품으로 대체된 부품은 버려진다. 효율성과 합리성의 논리다.

 언제 부터인가 사회를 '시스템'과 함께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업무 시스템이 엉망이다.", "배달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다.", "노동 시스템에 개선이 필요하다"...시스템이라는 단어에는 여러 확장된 정의가 있지만 '필요한 기능을 실현하기 위하여 관련 요소를 어떤 법칙에 따라 조합한 집합체'로 해석한다면,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기능'을 목적으로 '규칙(법칙)'에 따라 사람들을 조합한 집합체에 불과하다.

 구조적으로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능하는 부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성 사회 속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인간은 무라타 사야카가 말한 것처럼 '이물질'이 되어 배제된다. 사람들(다른 부품)은 이러한 '이물질'에 전염될까, 본능적으로 이를 회피하고 밀어내려 한다. 어찌보면 전염을 대비한 자정작용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로 대체할 수 있을까.

 

 무라타 사야카가 그려내는 편의점은 경제성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압축한 비유적 공간이다. '제복'은 사람을 부품화하는 대표적인 장치다. 제각기 다른 모습의 부품들은 결코 컨베이어 벨트에 오를 수 없다. 균일화, 개별성의 삭제는 다른 경우의 수를 제거하고 예측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회사원들의 반듯한 정장을 요구하는 회사,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히는 학교...우리는 이러한 균일화에 이미 익숙해져있다. 무라타 사야카는 이를 '점원'다워졌다 라고 비유한다. 그래야 비로소 편의점에 투입될 수 있고,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제 '기능'을 할 준비가 된다. 편의(便宜). 편하고 좋음. 이 곳에서 '불편'은 존재할 수 없다.

 '편의점 인간'의 시점에서 비추어지는 우리 세상의 모습은 답답하다못해 메스껍기까지 하다. 시스템에 의문없이 살아온 각 개인의 치부를 들킨것마냥 부끄러워지기도 하며, 그럴 수밖에 없었음에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악몽과도 같은 '편의점 인간'은 흡사 우리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면모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편의점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 점원들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점장인가? 아니, 책 속에서 '점장'은 18년 동안 모습을 바꾸면서 가게에 있었다. 특정한 인물이 아닌 '전원이 합쳐져서 한 마리의 생물' 인 것이다. 무엇이든 균일화하여 생산하고 판매하려는 편의점은 특정 주체가 아닌 수많은 규칙, 그러니깐 조회, 맹세, 교육, 세일, 페이스업, 바코드, 추천상품, 판매 전략 등이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생산-판매-소비'의 심플하지만 견고한 자본주의의 패턴(시스템)을 인간 스스로가 운영하는 동시에, 조종당하며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아이러니한 세상을 만들어냈다.

 

 또 하나의 이물질인 '시라하'씨는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사회에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편입되지 못해 공격적으로 자기방어적 태도를 취하는 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역겹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부품화되지 못한 한 인간이 밟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는 듯해 그에게 마냥 일방적인 비판을 가할 수도 없다.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부품화되지 못함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삶의 기준을 시스템에 둔다. 반면 '시라하'씨는 전형적인 회피형으로 아예 세상과의 도피를 선택한다. 과연 우리는 이 둘 중 누구를 더 비난하고 칭찬할 수 있는가? 결국 우리는 주인공의 친구들처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이 둘을 밀어낸 '평범'한 인간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스템에 순응하고만 살아야 하는가. 버려질까봐 구석에 숨은 부품, 완벽한 기능을 위해 다른 것은 거세된 부품, 두 이야기를 읽으며 구체적인 '편의점' 탈출기를 주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봉준호는 '설국 열차'에서 열차를 폭파시켰고,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에서 정신병자, 공산주의자로 몰려 갇혀있던 경찰서로부터 탈출한다. '편의점 인간'에서 무라타 사야카는 '모든 세포가 편의점을 위해 존재'하는 주인공을 통해 다소 절망적인 미래를 제시했다.

 지면 위라고 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위치에 서서 반체제적 이상주의자의 태도를 취하고 싶진 않다. 편의점 본사를 향해 폭탄을 던질 수도 없다. 다만 편의점을 운영하기 위해 존재했던 '점원', '점장'의 제복을 잠시 개어두고 독특한 한 명의 개인으로서 문을 열고 나와 편의점을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편의'에 익숙해진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반복하고 있고, 이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끊임없이 '왜'를 묻고 '불편'과 직면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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