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
땅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왼팔에 난생 처음 그런 고통을 맛봤지만 지켜보는 친구들의 시선에 부끄러웠는지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하게 일어나 그 날 태권도를 마무리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상하게 춥고 멀미가 나기 시작했고 왜인지는 모르나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큰 조형 바위 위에 누워 벌벌 떨었다. 박물관도 아니고, 당연히 이웃집 아주머니가 길을 가다 상처 입은 어린 영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고 다행히도 나는 신속히 수거될(?) 수 있었다. 병원에 가본 결과, 별 건 아니었고 그냥 인대가 늘어나는 정도로 반깁스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피할 수 없는 무대가 있었으니 바로 교회 크리스마스 무대였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니며 합창이나 연주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몸을 쓰는 무대만큼은 요리조리 피해왔는데 아뿔싸, 친한 형에게 덜미를 붙잡혀 댄스 무대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치어리딩'을. '치어리딩'? 율동도 아니고 치어리딩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 그 형은 당시 핫했던 '브레이크 댄스'를 섭렵했던 춤꾼이었는데, 내 또래 남자애들이 먹잇감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어, 창피를 당할 순 없으니 매일 같이 형이 알려준 동작들을 땀 뻘뻘 흘리며 연습했다. 내 생애 그렇게 춤춰 본 적이 있을까? 아직도 그 치어리딩의 몇 동작이 기억날 정도니깐 꽤나 열심히 했던 모양이다. 당시 중3으로 결코 어리다고만 할 수 없는 나이, 남의 시선에 아주아주 민감할 나이였으니. 진짜 잘해봐야지.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콜록콜록. 하나, 둘, 셋, 하나, 둘, 콜록콜록. 콜록.
"감성아, 왜 그렇게 기침을 해?"
연습하느라 숨이 찬 줄 알았는데 왼쪽 가슴 위로 고통이 느껴졌다. 결국 무대를 하루 앞두고 병원에 가 검진을 받았고, '기흉'을 진단받았다. 아쉽게도 감성의 댄스 무대는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아이고 아쉬워라.
친구와 나는 담임 선생님의 눈을 피해 청소구역을 대충 청소하고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자판기에서 뽑은 사과주스를 마시며 룰루랄라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예정에 없던 청소구역을 방문했고 나는 현장에서 일명 '농땡이'로 간주되어 몇몇 친구들과 기합을 받게 됐다. 기합은 앉았다 일어났다 n00회. 네? n백회요? 어이없는 숫자를 믿지 못하고 반문했으나 담임은 시~작! 을 외치고 우리는 교무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그 n백회가 끝났을 때, 정말 기합을 받은 모두가 걸어 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때는 속으로 시부렁시부렁 거리면서도 서로가 웃겨서 큭큭 댔는데, 이 근육통이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가 않았다. 계단은 물론이고 평지도 다니기 힘들어서 부축을 받거나 기어 다녔는데 어느 날 '혈뇨'가 나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병원에 가보았고, 결국 급성어쩌구로 또다시 입원했다. 근손실(근육파괴)로 인한 증상이었다.
하... 고3인데 농땡이로 기합 받아 입원하다니. 한창 입시 시즌이어서 병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면접 연습을 했던 기억이 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부터 의자에 앉아 이야기하고 문 닫고 나가는 것까지. 그때는 특별 면접 연습기간같이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연습은커녕 면접조차 못 보러 갈 수 있는 상황이었던지라 가슴이 철렁한다. 다행히 그때 면접 본 대학을, 이제는 졸업하려고 애쓰고 있다.
ROTC(학군사관)에 합격한 나는 군복무를 장교로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온갖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신체적으로도 체력저질에서 특급일 정도로(과장이 아니라 진짜 체력등급 특급이었다) 발전했기에 자신감도 가득했고. 매일 아침 학교 운동장을 동기생들과 뛰고, 깔끔히 씻고, 학교 아침 수업을 듣는 일이 피곤하긴 했지만 뭔가 '알차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학기 중간고사가 다가왔고 어느 때처럼 학교 내 ROTC 생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오한이 들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노란 필터를 낀 것처럼 시야가 노래졌고 이따금씩 춥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데 그날은 그 정도를 넘어서 온몸이 벌벌 떨렸고 식은땀이 줄줄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지경이 될 정도로 버텼다는 게 미련했지만... 그 당시엔 그게 몸살이라고 생각했지, 백혈병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결국 난 중간고사 시험은 시험대로 다 보고 마지막 시험을 남겨두고 응급실로 실려갔다. 아니, 시험 보기 전에 응급실 가던가, ROTC 되기 전에 가던가. 그땐 시험을 다 봐놓고, 힘든 훈련은 다 받아놓고 병원에 갔다는 게 정말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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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할 때 무리하는 줄 모른다. 조금 더 힘들다고 생각할 뿐.
스트레스받을 때 그게 스트레스라는 걸 모른다. 평소보다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할 뿐.
과로는 그래서 문제가 된다. 몸이 한계라고 비명을 지르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을 때, 결국 사달이 난다.
평소에 운동을 해둬야지,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병원에 가야지,라고 다짐하지만 또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과거의 기억은 까먹고 똑같은 일을 무한 반복하는 나. 나 같은 미련한 중생이 또 있는가.
'하나님 제발, 평소에 운동 잘할게요. 기도도 잘할게요. 이번 두통만 좀 넘겨주세요 ㅜㅜ'
'평소에나 좀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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