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관계의 집합이다. 모든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관계를 맺으며 태어나, 평생 동안 스스로 선택한 관계를 이어가며 살아간다. 인생은 강제적이면서 자율적이고, 타의적이면서 자의적인 관계의 굴레다. 나 역시 이 굴레에 스스로를 묶어왔다.
사람이 좋았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내게 부족한 것을 사람으로 채우고 싶었다. 늘 사람을 욕심냈고, 새로운 관계를 탐했다. 환경이 변할 때마다 사람들 속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 새 학기, 새 학년, 새 학교. 나는 늘 관계 속에서 분주했다. 잘생긴 외모나 유쾌한 말주변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능력은 없었다. 다만 나를 배척하지 않는 한 무리 속에 어울려 존재하다가 다른 무리로 자연스레 옮겨가는, ‘사회적 동물’의 삶으로 만족했다. 나는 늘 새로운 무리를 찾았다. 자연스럽게 이전 무리에 소홀해졌다.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내가 무리 속에 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사회로부터 기나긴 격리를 선고받았다. 머리를 빡빡 깎는 창피함이나 고된 훈련을 견뎌야 할 육체의 괴로움보다, 단절의 공포가 더 크게 엄습해왔다. 입대 전 작은 수첩을 샀다.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수첩에 빼곡하게 옮겨 적었다. 나와 세상에 남겨놓은 내 관계들을 연결해줄 유일한 통로였다. 술을 마셨다. 쉬고 싶다는 간의 외침을 애써 무시했다. 같이 취한 시간들이 나를 기억하게 해줄 거라고, 전봇대를 붙잡고 속을 게워내는 그 순간까지도, 간절히 바랬다.
입대했다. 내 불안은 현실이 됐다. 얕고 미약하게 연결됐던 관계들은 하나, 둘, 힘없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군대에 있는 내 존재는 바깥의 그들에게 큰 의미가 아니었다. 기대했던 지인들의 편지는 몇 통 오지 않았다. 전화기너머 목소리엔 귀찮음이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늘 의리를 말하던 관계들은 언제 남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뜸해졌다. 아니, 사실상 남이었다. 공허했다. 사람을 얻으려 발버둥치며 살아온 내 인생이 한심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한가한 주말 오후, 다시 전화기 앞에 앉아 수첩을 뒤적였다. 번호는 여전히 빼곡했다. 다만, 그중 나와 깊이 연결된 번호가 없었다. 쉽사리 다이얼을 누르지 못했다. 그 중 한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수첩 마지막 페이지에 대충 휘갈겨 써놓은 이름. 대학 입학 후 몇 번 보지 못했던 학창시절 절친이었다. 어색함과 미안함에 힘겹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내 전화를 반겼다. 얼마 뒤 휴가를 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녀석은 그대로였다. 나의 동네, 나의 골목, 나의 친구. 그것들은 예전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변한 것은 나뿐이었다. 변하지 않은 그 모든 것들에 미안했다. 그것들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날 친구와 소주를 꽤 마셨고, 나는 오뎅국물의 뜨뜻함과 친구의 따뜻함 앞에서 펑펑 울었다.
인생은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걸어가는 긴 여행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 나를 절제했던 시간들과, 불편한 사람들과도 기꺼이 주고받았던 술잔들은 나를 좀 더 성숙하게 했다. 그러나 이젠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자주, 오래 걸어보려 한다. 오늘은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