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너무 늦었다. 지각이다.
5년. 너무 늦었다. 지각이다.
군대 생활반에서 처음 소식을 들었다. 온종일 뉴스를 틀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뉴스 한 구석에 표시된 구조자 수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괜찮겠지. 금방 구하겠지. 어설픈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다. 멈춰버린 구조자 수와 함께, 뉴스는 끝났다. 나도 거기서 멈춰버렸다.
뉴스가 끝난 후에도 세상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아니, 구조 작업이 한창이던 때보다 오히려 더 시끄러워진 것 같았다. 소리를 줄이고 티비를 끄고 싶었다. 더 이상 그 처참한 싸움박질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단지 보듬었어야 할 일이었다. 공동체의 연민과 위로로 달랬어야 할 일이었다. 5년의 시간은 싸움이 아닌 기억과 반성과 다짐으로 보냈어야 할 아까운 시간이었다. 정치나, 언론이나, 단지 호기심으로 기웃거리는 그 누구나. 삶의 전부를 잃은 부모에게, 그 가족에게, 살아남은 자들에게, 더 이상 가시 돋친 손을 내밀지 말아야 했던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정치라는 그 더러운 것이 죽음을 이용하려 군침을 삼키는 꼴이 싫었다. 언론의 역할이란 탈을 쓰고 상처를 난도질하며 파헤치는 언론의 행태가 미웠다. 덮어 놓고 비판하고, 덮어 놓고 옹호하며 사사건건 부딪히는 그 모든 세력들이 한심했다. 그 참사는 모두의 잘못이었다. 생각하면 아팠다. 몇 년이나 지속된 그 힘겨운 싸움을 보고 싶지 않았다. 비겁하게 회피해 버렸다. 수많은 생명을 찬 바다에 가라앉히고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 그 한심함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마음으로만 슬퍼하기로, 그렇게 비겁한 결심을 했다.
5년이 지났다. 어쩌면 그 친구들이 나의 후배가 되어 술 한잔 기울이고 있었을 만큼, 꽤 긴 시간이었다. 팽목항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그대로였다. 모든 싸움도 여전했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었고, 그 친구들은 여전히 살아있지 못했다. 여기저기 보이는 ‘5주기’라는 문구에 문득 겁이 났다. 이렇게 피하기만 한다면, 어쩌면, 아주 어쩌면, 정말 싸움만 하다가 끝날까봐,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조차 잊어버릴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이제야 필통에 작고 노란 리본을 달았다. 기억하고 싶었다. 비겁한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싸움이었다.
너무 늦었다. 피하기만 하다가 늦어버렸다. 지각이지만, 결석하지 않기 위해 오늘에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