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봄일까. 아님 벌써 여름일까. 낮이면 덥고 밤이면 또 쌀쌀해지는, 옅은 봄과 진한 여름의 어느 경계에서 문득, 연두가 보이지 않는다.
내리쬐는 말간 햇빛을 받으면 진득하게 빛나는 녹색 물결들. 그 사이에 살짝 숨어있는 연두는 애매하게 채색된 하나의 초록이다. 그저 무수한 초록 중 하나.
연두는 그런 색이다. 자라나면 점점 짙어질, 그러다 흩어질 잠깐의 색깔. 초, 록은 동색이라고 했었나. 그러니 어느 날 연두가 사라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연두는 마침내 어른이 된 것일 테니까.
연두가 초록이 되는 것처럼 어른이 되면 저절로 짙어질 줄만 알았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일 거라고. 다만 나는 여전히 옅은 농도의 사람으로 자라났고, 어느새 짙은 초록의 그늘 아래 살짝 숨어있는 연약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자연스럽지 못하게.
봄, 여름, 그리고 다시. 연두색 풀잎은 해마다 꾸준히 실종되는데, 연두색 어른은 날마다 꾸준히 그대로였다. 그러니 언젠가 연두색 물감을 잃어버려 울고 있던 어린 나에게 선생님이 건넸던 다정한 말을 애써 기억해야 했다.
초록 물감에 하얀 물감을 섞으면 연두색이 돼. 어떨 땐 초록이 연두가 돼.
연두에서 초록으로, 혹은 초록에서 연두로. 혹시 어른의 색깔도 그런 거 아닐까. 짙음과 옅음 사이에서 삶의 농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 아닐까.
기필코 진해지고 싶었는데 아직 짙어지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면, 그래도 남아있다면, 지금의 흐릿한 연두는 분명한 하나의 색깔인지도 모른다. 초록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아도 좋은, 하나의 충분한 빛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