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튤립> 리뷰
전쟁이다. 오래 전 벌어졌던 전쟁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데.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역사의 뼈아픈 교훈이 대충 아문 흉터조차 아직 되지 못했는데. 세계 곳곳이 다시 찢어지고 있다. 전쟁으로 잃은 것이 얼마의 재산, 몇 명의 목숨이라는 숫자로 제시될 때 전쟁은 너무 쉬워진다. 국가에서 사회로, 가정에서 개인으로, 전쟁은 삶의 모든 세밀한 구획까지 폭격한다. 너무 쉽게 전쟁이 벌어지는 세계에서 구체적인 삶들은 터지는 것이다. 전쟁 이후의 세계는 그렇게 터져나간 삶의 잔여들로 어려워진다.
전쟁을 반대하는 간절한 윤리의 목소리는 실리와 명분을 앞세운 전쟁의 굉음 속에 파묻힌다.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 끔찍한 전쟁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전쟁이 벌어지면 복잡하게 터져나갈 삶을 자꾸만 들여다보는 일, 전쟁으로 망가진 삶은 쉽게 돌이킬 수 없음을 끈질기게 목격하는 일이다. 그리고 예술은 그 고통스러운 목격을 위한 돋보기들 중 가장 분명한 하나다.
연극 <튤립>을 본다.
전쟁은 사람의 공간을 차지하고
“그 애가 곧 와.” 흙과 먼지를 뒤집어쓴 꾀죄죄한 옷매무새. 얼굴에는 지워지지 않는 검정 페인트가 흉터처럼 묻어있어 ‘조선 까마귀’라고 불리는 쿠로(권정훈)는 학교 내 작은 꽃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따뜻한 차까지 끓여놓고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인물은 반듯한 일본인 청년 쥬리프(김하람)다. 수업을 마친 쥬리프는 쿠로가 절친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반갑게 그를 찾아온다. 쿠로가 가꾸는 튤립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며 진심어린 교류를 나눈 후 쥬리프는 쿠로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머뭇거리던 쿠로가 마침내 그 초대에 응하면서, 튤립의 구근처럼 묻혀있던 진실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검은 튤립’처럼 어둡게 개화된다.
쥬리프의 초대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쿠로는 쥬리프의 집을 방문한다. 아들 쥬리프와 쿠로의 우정이 탐탁지 않았으나 쥬리프의 어머니 에리코(황순미)는 형식적인 예의를 갖춰 그를 맞이한다. 그들이 불안하지만 제법 화목한 교류를 이어가던 어느 순간 에리코는 쿠로에게 서늘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내 아들 옆에서 떨어져.” 조선인 잡역부 쿠로와 일본인 대학생 쥬리프의 친밀한 관계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192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조선을 철저히 지배하고자 했던 일본과, 일본에 처절히 저항하고자 했던 조선의 간극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여지없이 적용되어 왔던 것. 극중 조선 청년이 일본 육군대장을 도검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은 무대 뒤 배경이 착취하는 힘과 저항하는 힘이 여전히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는 시대임을 강조한다.
쥬리프의 아버지이자 일본 고위 군인이었던 야마토(김정호)의 주택은 난세의 지나친 어지러움 속에서 인물들의 시선을 내면으로 고립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에리코는 조선인 출신 가정부 미호(윤경)가 모아오는 정보를 통해 바깥세상을 만나고, 가끔은 집안에 꽃들을 풍성하게 늘어놓는 것으로 가정에서 받았던 상처와 분노를 삭인다. 야마토는 오랜 출장(혹은 출정)을 마친 후 자신의 주택에 앉아 정원의 삼나무들을 보며 홀로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삼나무들로 울타리가 쳐진 그 주택만큼은 바깥의 절망과 대비되는 고요와 평안의 세계일까. 전쟁 속에서 평안의 장소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연극 <튤립>은 무대 위에 고요하지만 격렬한 외침을 토해낸다.
당연한 것들을 망가뜨린다
여러 갈래의 진실이 있다. 먼저 쿠로와 쥬리프, 야마토를 둘러싼 진실 하나. 쿠로, 아니 조선인 노비 막산이 쥬리프의 친부였으며, 야마토는 막산의 아내를 죽이고 갓난 쥬리프를 데려왔다는 것. 전쟁에 속한 인물은 폭력과 갈취 마침내 살인의 자유마저 허용되므로, 야마토는 참전자의 전리품으로서 아들을 얻었다는 것. 쥬리프를 둘러싼 과거가 막산을 일본에서 노동하는 잡역부 쿠로로 다시 살아가게 했다. 튤립처럼 피어난 아들 쥬리프를 가까이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걸로도 만족할 수 있도록, 독 묻은 도검 대신 곱게 피어난 튤립 한 송이를 들고 원수의 집을 찾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살아가도 괜찮도록 만든 것이다. 전쟁이 터뜨린 첫 번째는 오히려 복수심이다.
척박한 삶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듯, 황폐한 전쟁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 사랑에는 국경도, 시기도 없어서 한 차례 피어난 사랑은 시들어 져버리기 전까지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른다. 아들을 향한 막산의 사랑도 그렇다. 빼앗긴 아들을 찾기 위해 오래도록 헤매고, 온갖 고생을 겪으며 버텼던 그의 뜨거운 부성애는 물리적 국경마저 넘는다. 한편, 쿠로가 아들 쥬리프를 사랑하는 만큼 쥬리프도 쿠로를 사랑한다. 다만 그 사랑은 성애로서의 사랑이다. 쥬리프가 쿠로에게 품었던 연정을 고백하는 순간 부자(父子)가 타인이 되어 따로 건너야했던 시간들이 아찔해진다. 애초에 아버지와 아들로 만났다면 부자지간의 애정으로 자라났을 사랑이었으나, 어쨌거나 그들은 긴 분리의 시간을 건너 낯선 친구로서 만났기에, 시기를 지나버린 그 사랑은 서로 다른 모양으로 피어나버린 것. 부성애에 대한 대답이 성애로 되돌아온 난처의 순간, 두 남자는 격렬히 포옹하며 뒹군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기에, 그들은 서로를 그렇게 오래 끌어안는다. 전쟁이 터뜨린 두 번째는 간절한 사랑의 시간이다.
갓 태어난 쥬리프를 향했던 야마토의 집착적 사랑과 친아들이 아님에도 쥬리프를 아끼던 에리코의 맹목적 사랑도 사랑이며, 잃어버린 친아들을 향한 쿠로의 애절한 사랑과 다정한 쿠로를 향한 쥬리프의 애틋한 사랑도 사랑이다. 어두운 땅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구근에서 튤립 꽃이 피어나듯,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전쟁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 다만 끔찍한 시대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피어난 그 모든 사랑을 꼬아서 끝내 비극적인 결말을 만들어낸다. 국가, 사회, 가족, 그리고 마침내 개인과 타인에게서, 전쟁은 너무 많이 앗아가고 결코 돌려주지 않는다.
*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8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