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말은 들으려는 사람들이 만든 자리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나온다
6411번 버스는 서울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해 강남을 거쳐 개포동으로 향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그 노선을 보며 한 정치인은 가슴 저리고 아파했다. 매일 새벽 가장 호화스러운 도시를 가로지르는 버스에 몸을 싣는 사람들의 삶은 그 정치인의 죽음 이후 다시 조명 받았다. 이제 서울의 새벽 첫 차는 두 대 씩 출발하고, 더 자주 움직인다. 혹자는 ‘노회찬의 꿈’이 실현됐다고 말하지만, 그의 꿈은 노동자들이 더 쾌적한 새벽 버스에 몸을 싣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정치인 노회찬의 말은 그 말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리에서 세상에 나왔다. 그는 평생 동안 약자를 위한 정당에 몸담았다. 그가 하는 말의 주요 청자는 힘 센 정부도, 권세 높은 정치인도, 돈 많은 경제인도 아니었다. 그의 말은 언제나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향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과, 그의 말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미약하나마 힘을 보탰다. 노회찬은 서울 노원구와 창원 성산에서 3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회 안 그의 의석은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약한 자들이 만들어낸 자리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늘 서민적인 언어로 말했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그는 잘 말하고 잘 듣는 정치인이었다.
그의 굳은 의지와 지지자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꿈을 꿨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최저임금 만원 시대는 냉정한 경제논리에 가로막혔다. 청년 10명 중 1명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자영업자는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으며, 소득 양극화는 여전히 극심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는 여전히 약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시민들은 권력의 부당함에 맞서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고, 강남역과 구의역과 태안의 발전소에서 죽어간 힘없는 이들을 추모했다. 세상은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과정 중에 노회찬은, 그 대쪽같이 올곧았던 정치인은, 자신의 작은 잘못을 크게 부끄러워했고, 그 부끄러움이 사무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말을 들으려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그는 혼자 떠났다.
노회찬은 죽고 그의 온기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이곳저곳에 남아 있었다. 그를 추모하던 거대한 물결은 그의 꿈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우리가 결국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었음을 말해주었다. 이제 시민들이 이어받은 그의 꿈은 그의 빈자리를 채우며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고 있다. 6411번 버스에는 여전히 같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몸을 싣는다. 이제 한동안은 그 버스를 사랑한 노회찬 같은 정치인이 없을 테지만, 6411번 버스는 그 속에 그의 꿈과 의지를 함께 싣고 오늘도 가장 풍요로운 도시를 가로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