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디짧은 이야기
아버지가 퇴직했다. 우리 가족은 이사를 결정했다. 열다섯 사춘기 소년에게 전학은 두려운 일이었다. 며칠을 굶으며 항전했지만 미성년 자식의 호소 따위는 가족의 생계 앞에 무력했다. 이삿날이 돼서야 처음 동네에 가보았다. 차에서 내리자 묘한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빈속이 울렁거리며 구역질이 났다.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을 찾다가 결국 한 양꼬치 가게 앞에서 토를 쏟아냈다. 가게 안에서 한 사내가 튀어나왔다. 나는 당황해서 연신 “죄송합니다”를 반복했고, 사내도 “괜찮습니다”를 반복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게 녀석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사죄의 의미로 우리 가족은 그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사모님은 한국인, 사장님은 중국 출신인데 중국에서 만나 결혼했다고 했다. 우년이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1년 전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왔고 그때부터 쭉 이 동네에서 살았다고 했다. 지금은 학교에 가지 않고 공사장에 나가는 사장님을 대신해 가게 일을 돕는다고 했다. 우년이는 깡말랐지만 팔다리가 길고 키가 나보다 한 뼘은 더 컸다. 녀석은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며 바보처럼 웃었다. 양꼬치가 화로 위에서 돌아가며 기름을 떨어뜨렸다. 그때마다 숯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연신 물만 들이켰다. 우년이는 그런 나를 보며 또 웃었다. 그 모습이 바보 같아 나도 따라 피식거렸다.
나는 우년이와 시간을 자주 보냈다. 우년이는 동네 구석구석을 소개해줬다. 동네에는 중국 음식점이 많았는데, 중국식 만두집과 닭꼬치집 음식은 내 입맛에 맞아 자주 사먹었다. 긴 팔과 다리를 휘적거리는 꼴은 우스웠으나 우년이는 농구를 꽤 잘했다. 우리는 따로 약속을 하지 않아도 늘 같은 시간에 만두집 앞에서 만났다. 만두와 닭꼬치를 사먹고 해가 질 때까지 농구를 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엔 늘 양꼬치 냄새가 났다. 속이 조금 불편했지만 점점 익숙해져갔다.
며칠 동안 비가 많이 왔다. 장맛비는 이따금 세차게 내리다가도 금세 힘을 잃고 창문을 토닥거렸다. 비 때문인지 소사동 골목엔 인적이 드물었다. 창문을 열어도 구린 양꼬치 냄새가 풍겨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농구공을 집어 들었다. 농구공을 돌려준다는 핑계로 며칠 못 본 우년이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 우년이네 가게로 가는 골목길은 유난히 어두웠다. 만두집과 닭꼬치집은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이 깨져 있었다. 걸음이 빨라졌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세차게 내리는 빗속을 정신없이 뛰었다. 우년이네 가게가 보였다. 툭. 발에 무언가 차였다. 우년이네 가게의 녹색 간판이었다. 간판은 모로 누워 온 몸으로 비를 맞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한자가 눈에 띄었다. 운연(雲緣)꼬치. 우년이는 그렇게 구름처럼 떠났다. 왈칵 구역질이 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점심에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장마가 끝났다. 동네 골목에 양복 입은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조선족 불법 체류자들을 신고한다고 협박해 내쫓고는 재개발인지 뭔지를 한단다. 동네 어른들이 만두집 아저씨는 가게를 버리고 서울로 도망갔고 닭꼬치집 삼촌은 뒷동네 고시원에 숨었다고 했다. 우년이네 소식은 없었다. 우년이가 간 곳이 대림동인지 가리봉동인지 어느 고시원 쪽방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긴 팔다리를 접고 불편하게 쪽잠을 자고 있을 녀석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하굣길에 양꼬치를 하나 사서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오늘은 왠지 냄새가 역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