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편] 어느 계절 노동자

짧디짧은 이야기

by 차구마

한여름 신촌 빨간 잠망경 아래는 나의 무대다. 무더위가 찾아오면 나는 어김없이 그곳에서 노래를 했다. 기타 하나, 마이크 하나, 그리고 작은 앰프 하나. 한낮의 열기가 식지 않아 한 곡을 다 부르기도 전에 땀이 배어 나와도, 노래 따윈 안중에도 없이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실내를 찾아가는 행인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나는 노래했다. 모두가 기피하는 여름철 두 달이 나에게만큼은 절실한 시간이었다.


열대야에 잠 못 들며 뒤척이는 날에는 부모님이 어린 동생 둘을 내게 남기고 떠나신 그 여름밤을 떠올렸다. 아마 빗길에 차가 미끄러졌던 걸로,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잠든 동생들을 두고 병원까지 뛰어갔던 걸로, 두 분 다 수술 중에 돌아가셨던 걸로. 그렇게 흐릿한 기억을 다듬어 조각을 맞춰나가면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장례식 한참 뒤 부모님의 물건을 정리하며 우연히 발견한 낡은 기타를 지금까지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새삼 떠올랐다. 기타를 튕기면 머릿속에 부모님 목소리가 들렸다.


생계를 위해 나는 겨울 의류 회사의 물류담당 하청업체에 취직했다. 10개월 단기 계약직으로 매년 재계약을 맺었다. 가을부터 봄까지 쉴 틈 없이 일하고 여름에는 잘리기를 반복했다. 해고된 여름 두 달 동안엔 아르바이트를 하며 노래를 했다. 언젠가 우연히 한 소설가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소설 쓰는 일은 노동에 가깝다”라. 노동이 가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수고로움을 일컫는 말이라면, 내겐 패딩 점퍼를 창고로 옮기는 일보다 노래 부르는 일이 노동에 가까울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여름에만 노동하는 계절 노동자였다. 어릴 적 좋아했던 동화가 떠올랐다. 밤낮 없이 노래하는 여름 베짱이. 베짱이는 사실 음악으로 노동을 하는 중이었고, 그 결실로 유명한 음악가가 되어 개미보다 더 크게 성공했다는 새로운 결말을 믿고 싶었다. 나는 더위 속에서 노래를 했다.


막내 동생이 병원에 입원했다. 공연을 하고 밤늦게 돌아오니 동생이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동생을 업고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그 날의 그 거리를 다시 뛰었다. 의사는 큰 병은 아니라 괜찮을 거라 했으나, 내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생활비의 절반에 가까운 입원비 고지서를 받아들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자 현관에 내려놓았던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힘없이 주저앉아 기타를 튕겼다. 이번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베짱이로 살 수 없구나. 내가 개미로 살아야 동생들이 살아갈 수 있구나.’ 다음날 가진 돈을 털어 조그마한 공연장을 빌리기로 했다. 마지막 공연을 마치면 음악을 그만두기로, 부지런한 개미로만 살아가기로, 그렇게 결심했다. 그날부터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기타를 연습했고, 거리에서 하루 종일 허술하게 만든 홍보 전단지를 돌렸다.


공연 하루 전, 하청업체 김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갑자기 대량 주문이 들어와서 급하게 일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도와드리기 힘들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돌아온 대답은 짧고 날카로웠다. “자네, 올 가을에 다시 계약 안 할 건가?”


물류창고는 여름의 열기를 그대로 품고 있었고, 작은 선풍기 몇 대만이 애처롭게 돌아가며 열기를 식히려 애쓰고 있었다. 창고에 높게 쌓인 무거운 패딩 상자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다니다가 사람의 손으로 옮겨져 물류차량 안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일이 마무리 되고 있을 무렵 컨베이어 벨트에서 연기가 나더니 덜컹거리며 굉음을 냈다. 벨트 위 상자들이 흔들리며 쏟아졌고, 그 상자들이 쌓아 놓은 다른 상자들을 무너뜨리며 내 몸 위를 덮쳤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왼손 전체에 멍이 들고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김 과장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병원에 다녀오라며 내게 2만원을 쥐어주고는 작업을 계속 진행시켰다. 컨베이어 벨트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움직였다. 피땀이 엉겨붙은 2만원을 쥔 왼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공연장엔 관객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뜨거운 핀 조명이 켜졌고, 나는 왼손으로 가볍게 기타 코드를 짚어나갔다. 퉁퉁 부은 손가락에서 무서운 통증이 밀려왔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대로 눌리지 않은 기타줄이 지잉거리며 거친 쇳소리를 냈다. 엉망진창인 기타 소리 위에 내 목소리를 쌓았다. 목이 메어 목소리는 떨려왔고 음정은 제멋대로 어긋났다. 관객들이 민망해하며 하나 둘 씩 자리를 뜨고 있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두 뺨을 타고 흘렀다. 그래도 도저히 노래를 멈출 수 없었다. 난 계속 노래했다.


“그래요 난...난 꿈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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