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을 주도했던 대표적 친일파 이완용은 권세를 누리다가 1926년 사망했다. 그의 후손들은 그의 시신이 훼손될까 두려워 화장을 선택했고, 전국에 여러 개의 무덤을 만들어 그를 나눠 묻었다. 분노한 민중에 의해 전국 각지에 있는 이완용의 무덤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이완용은 죽고 없었으며, 그의 시신은 뼛가루로만 남아 시신을 끌어다가 다시 목을 자르지도 못했으므로, 민중의 응징은 어설프게 끝났을 뿐이었다. 한참의 세월 뒤 그의 후손들은 국가를 상대로 조상의 땅을 되찾아 팔고는 캐나다로 유유히 떠나 안락하다. 이렇듯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흔적은 이 땅 곳곳에 깊숙이 남아있다.
친일파가 말하는 친일의 이유는 분명하고, 때때로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들려 식은땀이 난다. 무능하고 피폐한 봉건제 국가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일본의 도움을 받은 것이며, 근대국가 일본에게 합병됨으로써 비로소 조선의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논리적 궤변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 말속에는 친일에 앞장섰던 지극히 탐욕스러운 자들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한다며 국가를 팔아넘기고, 민중을 위한다는 이념으로 민중을 탄압했으며, 그 대가로 일제에게 명예와 지위와 돈을 받아 쌓아 간 그들의 행태에서 친일의 정당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일제의 철도 위에 기차가 달리고, 일제의 항구에서 배가 드나들며 부를 실어 날랐어도, 친일은 개인의 야욕을 위해 국가와 겨레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반인륜적 범죄에 불과한 것이다.
오늘날 ‘토착 왜구’라 비판받는 자들의 명분과 행태, 그 이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한일 갈등은 양 국가와 국민의 감정을 깊이 쑤시고 있다.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 못한 채로 덧났을 때 더욱 아프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과 과거사의 잔재가 여름의 더위에 덧나 곪아가고 있는 것이다. 당장 강대국 일본의 힘을 꺾지 못하므로 우선 과거의 문제는 덮고 가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양국 갈등의 악화는 국가의 위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간결하고 힘이 있다. 다만 모든 문제를 정권의 오판과 오만으로 몰고 가는 그들 주장의 마무리에서 현 정권의 몰락을 바라는 특정 세력의 야욕의 냄새가 나 뒷맛이 씁쓸하다. 갈등의 씨앗이 된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국가 간 합의 밖에서 떠돌던 인권을 회복하라는 헌법의 준엄한 명령이다. 정치와 경제라는 거대 담론은 인권을 덮고, 숨기고, 억압해 흔적을 없앤다. 100년 전 그랬던 것처럼, 평범한 자들의 삶은 지워진다. 반복해선 안 될 친일의 답습이다.
하늘 길로 금방이니 일본은 이웃이다. 한국과 일본은 바닷길로, 하늘 길로 사람과 물자를 교환하며 함께 살아왔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좋든 싫든 세계 속에서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야 함은 틀림없다. 세계 강대국이자 한국 경제와 외교, 안보의 주요 파트너로서 일본은 중요하다. 다만 친일세력이 이 기회를 틈타 되살아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완용은 죽었으나 목을 자르지 못했으며, 위안부로,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이 땅의 사람들은 살았으나 아직 편히 쉬지 못하고 있으니, 지금은 합리의 가면 뒤에 야욕을 숨긴 친일의 목을 치고 공동체의 가치를 위한 지일(知日)로 탈바꿈해야 할 역사적 시점이다.
아무쪼록, 대한독립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