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도망자의 반성문

by 차구마

저녁 6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엄습하는 두려움에 무작정 밖으로 밀려 나왔다. 가방엔 필통과 원고지, 그리고 이어폰만 간단히 챙겼다. 뭐라도 하지 않는다면 오늘을, 이 소중한 일요일 하루를 완전히 버리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가진 것에 비해 버릴 것이 많은 나에게 하루마저 버리는 일은 큰 사치였다. 심지어 버려진 하루는 주워서 다시 쓸 수도 없으니. 나의 외출은 지나간 하루의 끝자락이라도 잡아보기 위한 발버둥이다.


자취방에서 느린 걸음으로 이십 분 정도 걸으면 한 대학교 캠퍼스가 보인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아니지만 상관없다. 그곳은 명문 대학치고 크기가 작고 아담해서 좋다. 캠퍼스 한 바퀴를 둘러보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부담이 없다. 그래서 난 그곳에서 자주 뛰고 걷는다. 걷고 뛰다 보면 땀이 흐르고 숨이 찬다. 뛰다 지치면 땀에 젖은 상태로 다시 자취방을 향해 뛰는데, 갈 때보다 다리는 무겁지만 마음은 훨씬 가볍고 개운하다. 땀엔 물과 소금기, 노폐물과 함께 생각이 뒤섞여 있는 모양이다. 땀은 내가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오늘은 뛰거나 걷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대학 근처 카페에 왔다. 케이크 한 조각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트를 주문했다. 지난 3월 내 생일에 받은 기프티콘을 이제야 쓴다. 선물해준 친구에게 새삼 감사하며 자리에 앉아 무작정 원고지를 펼쳐놓고 연필을 든다. 첫 문장을 고민하던 찰나에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천천히 받아서 천천히 자리로 돌아온다. 생각할 시간을 좀 더 벌어보려는 개수작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오늘 도망쳤다. 오늘 오전 9시에 서류 합격한 기업의 필기시험이 있었고, 나는 9시 반에 일어났다. 일부러 알람도 맞춰놓지 않았으니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인 셈이다. 취준생에겐 모든 기회 한 번 한 번이 소중할 텐데, 나는 그걸 스스로 걷어찼다. 그랬는지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무튼 그랬다.


지난밤에 도통 잠을 자지 못 했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 것은 새벽 5시를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잠을 자려고 누운 게 밤 12시쯤이었으니 5시간을 넘게 뒤척이며 깨있던 셈이다. 온갖 생각을 하다 보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때만큼 시간이 빨리 간다. 그래, 나는 간밤에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했던가. 뻔한 고민. 흔한 고민. 철학적인 척하면서 전혀 철학적이지 않은 고민. 지극히 현실적이며 형이하학적인 그런 고민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저 일이 정말 하고 싶은가. 그리고, 내일 시험 본다고 합격할 수 있을까.)


저런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반복해 굴리는 동안 시간은 아주 부드럽고 정확하게 흘렀고, 나는 맞춰둔 알람을 껐고, 그제야 잠들었다.


예정된 시험시간이 지난 후 눈을 떴다. 시계를 확인하고도 한참 동안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잠이 오지도 않았다. 배설의 욕구가 극에 달해 몸의 움직임을 강요할 때까지 나는 그렇게 하염없이 누워있었다. 나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하루는 어젯밤처럼 정확하게 흘러갔다. 물론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시간은 언제나 가차 없다.


이 글은 내가 나에게 쓰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혹은 '됐어. 그럴 수도 있지 , 뭘' 하며 나를 위로하는 격려다. 연필을 놓고 나면 내일부터 갈 길이 다시 멀다. 그 먼 길을 가며 몇 번을 더 도망치고, 굽히고, 흔들리고, 꺾일지 알 수 없다. 그때마다 또 무작정 밖으로 밀려 나오기로 다짐한다.


쓰고 보니 부끄러워 이 글을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이 글이 많이 읽혀 많이 위로받는 것도 좋겠다. 이제 나가서 캠퍼스를 조금 걷다가 들어가야겠다. 땀은 흘리지 않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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