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특권이다

공익과 사익의 경계선. 이해충돌 방지, 그것이 정답일까?

by 차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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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김영란법’ 시행의 후폭풍이 전국을 강타했다. 공직자의 청렴성을 법으로 강제한 내용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언론은 앞다투어 법의 부작용을 보도했다. 법 적용 대상과 사례의 모호함을 지적했고, 심지어 한 끼 3만원이 넘는 음식을 파는 고급 식당들과 고가의 선물세트를 판매하는 농수산가를 법의 억울한 피해자로 만들었다(물론 어느 정도의 경제적 타격은 실제로 있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여론은 김영란법을 환영했다. 언론의 부정적 보도는 특권을 사수하려는 ‘기레기’의 저항으로 간주됐다. 특권을 이용해 얻는 공직자의 부당한 이익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반감이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바람은 좌절됐다. 김영란법 시행 3년차에 접어든 오늘날까지도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문제는 여전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연이어 수감됐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의 위법행위 및 사익추구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심지어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이라는 전례 없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공직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무너지고 무뎌져갔다. 공직자의 청렴이라는 윤리적 가치는 강제한다고 해서 결코 달성할 수 없다는 반증일까.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사회’를 구성한 인류가 만들고, 수정하고, 유지해온 대부분의 시스템은 정치 대리인에게 강한 권력을 허락했다. 대한민국 역시 국민 뜻을 대변할 소수의 대리인을 선출하는 정치 시스템을 채택했다. 또한 국민이 맡긴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대리인에게 그에 상응하는 특권을 위임했다. 국민의 대리인, 즉 공직자에게 주어지는 권한은 ‘자연의 산물’은 아니지만 필연적인 ‘사회의 산물’로서 인정되었다.


허나 자연적 인간의 속성과 만난 사회적 특권은 점점 통제 불가의 힘을 발휘했다. 공익추구의 본질에서 벗어나 사익의 영역에 교묘히 숨어들기 시작했다. 때론 대놓고 탐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익을 위한 권한이 사익을 위해 이용됐다. 이러한 시스템의 심각한 부작용 속에서 ‘이해충돌 방지’ 개념이 파생됐다. 이 개념은 대리인도 지극히 인간적인 탐욕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공직자로서의 의무와 사익이 충돌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사익을 위한 특권 남용을 제한하고자 했다. 당초 김영란법의 취지도 이와 맥락을 같이 했다. 단지 3만 원짜리 식사 대신 2만 원짜리 식사를 대접하고, 명품 선물 대신 가벼운 ‘성의표시’를 하라는 것이 법의 본질이 아니었다.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명시해 공직 윤리를 바로잡고자 했다.


그러나 국회의 입법 논의 과정에서 이해충돌에 관한 내용은 자취를 감췄다. 이해충돌은 증명이 어렵고 너무 모호한 개념이라는 논리였다. ‘윤리에 대한 강제’의 막연함으로 인해 김영란법은 결국 반쪽짜리 법, 아니 핵심을 잃은 ‘껍데기 법’으로 변질됐다. 겉으로는 김영란법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성토하던 공직자들도 속으론 겨우 3만 원 희생으로 더 큰 것을 지켜냈다며 쾌재를 불렀을 결과였다. 법 시행 얼마 후, 첫 번째 신고가 접수됐다. 한 교수가 학생에게 무려 ‘캔커피’를 건네받은 혐의였다.


공직자의 청렴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늘 존재했다. 그러나 이를 올바르게 다룰 제도적 장치는 미흡했다. 제도적 장치를 구성할 권리 또한 공직자에게 양도했으므로, 그들의 특권 남용을 막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공직자의 잘못을 금방 잊었다.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지지자들은 언제나 굳건했다. 은밀히 이해를 충돌시키는 공직자는 두 번, 세 번, 쉽게 배지를 달았다. 두 세 차례 배지를 단 공직자들의 권력은 두 세배로 커져갔다. 커져가는 특권은 겸손할 줄 몰랐다.


다시 한 번 이해충돌 방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불타오르고 있는 지금, 우리의 시선은 문제의 본질로 향해야 한다. 핵심은 특권이다. 공직자, 특히 고위공직자의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한껏 몸집을 불린 그들의 특권이 존재하는 한, 이해는 늘 충돌한다. 그 어떤 선의를 가졌다고 해도, 말 한마디, 지시 한 번으로 공동체와 이를 둘러싼 환경에 변화를 가져올 정도의 거대한 특권은 존재해선 안 된다. 본질을 흐리고 거대한 특권의 존재를 은밀히 덮으며 알량한 제한조건만으로 눈가림 하려는 시도를 철저히 비판해야 한다. 이해충돌을 어떻게 방지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애초에 이해를 충돌시킬 능력이 없도록 해야 한다.


가진 자는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제도를 수정할 권한까지 공직자들에게 양도한 현 정치 시스템에서 특권 빼앗기는 쉽지 않은 과제다. 또한 공직자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도록 하며, 어떻게 감시하고, 누가 판단하도록 해야 최대의 공익이 보장될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결론을 내리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공직자에겐 국민들의 행복이 최고의 보람이요,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특권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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