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쓴 글을 훑었다. 변한 것은 없었다.
2년 전 쓴 글을 훑었다. 변한 것은 없었다. 단어 몇 개를 고치는 것이 다였다.
[내가 감히 ‘샤’라고 지칭하는 이들은 서울대 출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모든 지적 인재들을 포괄하는 것임을 미리 말해두는 바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자 서울대 공화국이다.’
과장을 심하게 하자면, 머지않아 헌법에 이런 조항이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거물들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출신들이 다수다. 물론 이 단언이 성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은 지난 국정농단 때 대한민국에서 막대한 권력을 쥐고 흔들어온 ‘수재(秀才)’의 농간과 숨 막히는 철두철미함에 온 국민이 아연실색하였음은 물론이요, 이번 사법농단을 통해 그들의 엄청난 권력이 살아남아 위세를 떨치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샤’들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권력의 힘으로 약자를 찍어 누르는 단골 캐릭터들이다. 오만하기 그지없고, 어떤 부정한 일이든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완벽하게 저지르고 흔적도 없이 숨기는 그들의 치밀함은 보는 이에게 분노를 넘어 소름이 돋게 만든다. 그래서 그들은 억울하다. 투철한 정의감, 혹은 평범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99%의 ‘샤’들에게 단지 1%의 ‘샤’들의 이야기만 과장되어 부각되는 것이 불편하다. 그러나 그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런 이미지로 존재한다. 다수는 그들에게 존경보단 의심, 부러움보단 질투의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마냥 억울하다고만 할 수도 없다. 그들과 같은 길을 앞서 걸었던 ‘샤’들이 세워놓은 벽과 울타리가 공고하다. 새로운 ‘샤’들도 앞선 세대의 그들이 닦아놓은 보장된 길이 존재하며, 학벌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한 때 대한민국은 절망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발전에 모든 것을 바쳤고, 그 와중에 다른 많은 가치들을 접어두어야 했던 시절을 겪었다. 우리는 눈부신 성장을 이끌어준 엘리트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의미를 담은 감투를 씌워주웠다. 누구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던 암묵적 동의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가난 극복만이 유일한 과제였던 시대에 작별을 고했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찾는 시대가 왔다. 이념으로 분열시키고 경제논리로 눈을 가리며 그들끼리 배를 불리던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없어진 것이다. 지난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들의 분노가 그들에게 향했고, 이번 사법농단 사태로 그들은 다시 한 번 심판대에 섰다. 이제 그들만이 국가의 주역이던 시절은 지나갔다. 진정으로 모든 국민들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시대가 태동하고 있다. 그들이 쌓아올린 성벽을 깨고 있다. 본격적인 ‘샤’ 부수기가 시작되고 있다.
정책으로, 법률로, 또 다른 권력으로 엘리트를 부수고 누르는 데에는 거대한 갈등과 혼란이 따라온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책과 법률과 권력을 지배하는 자들이 바로 그 엘리트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은 ‘샤’인들의 지성과 양심, 정의를 믿어보고 싶다. 1%의 ‘샤’를 스스로 깨고 99%의 ‘샤’로서 국민들의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진정한 엘리트의 부활을 지켜보고 싶다. 더 이상 국민들의 탄식 없이, 스스로가 개혁하고 변화하는 그들의 모습을 기다리고 싶다. 그들이 가진 것을 내려놓을 때, 국민들은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쥐어 줄 것이다.
각자의 삶속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행복해야 한다. 피땀 어린 노력으로 공부해 명문대에 입학하고,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온 ‘샤’인들 역시도 인생의 주인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모든 권력에는 책임이 따르듯,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도 그들의 모든 권력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그들이 가지는 막대한 영향력은 그 책임이 더욱 강조될 때 합당하게 인정된다. 권력과 탐욕이 기반이 된 ‘샤’의 굴레를 부수고 정의가 기반이 된 올바른 가치관으로 그들만의 울타리를 치되, 그 안에서 모든 국민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다.
‘샤’는 ‘샤’인들만이 부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