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명칭은

정부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며 명칭을 변경했다.

by 차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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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폭동이었다. 적어도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사건의 진상이 온전히 드러나기 전까지 많은 시민들이 그렇게 믿었다. 사실이 밝혀져 ‘민주화운동’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바뀐 이름은 한 역사적 사건의 본질을 다시 정의했다. 그러나 ‘폭동’이라는 이름이 주는 강렬한 인상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지금도 시민사회의 한 편에서 5.18은 폭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본질을 왜곡하거나 오해를 유발하는 명칭이라면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에서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로 용어를 변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헌법상의 양심은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할 뿐 도덕적 절대성을 전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양심은 사회의 윤리적 기준으로 인식되었다. 병역 거부 행위를 ‘양심적’이라고 지칭한다면, 병역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들이 ‘비양심적’이라는 의미가 된다는 불만이 존재했다. ‘양심’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의 남용을 우려한 목소리도 있었다. 모두 단어의 모호함에 기인했다.


‘양심적’이란 단어를 ‘종교적’이라는 단어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헌법상 권리인 양심의 자유를 축소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양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부가 양심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긴 시간 논란만 지속해왔던 병역거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대체복무제를 마련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양심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병역거부 이유 중 대부분이 종교적 신앙에 기인한다는 사실과, ‘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그 범위를 더 넓게 해석할 여지를 남긴 것 역시도 양심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미 많은 사안들이 명칭을 둘러싼 논쟁을 빚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이냐 정부수립이냐를 둘러싼 좌우의 논쟁이나 제주4.3 사건의 정명 문제 등이다. 새로운 제도가 생기거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명칭은 중요한 문제다. 본질과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는 명칭을 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잘못된 명칭으로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한 명칭 논쟁은 소모적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의 본질은 같다.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양심이라는 단어를 통한 병역거부의 남용을 우려한 보수적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 대체복무제의 명칭을 둘러싼 논쟁은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매우 긍정적 변화다. 용어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멈추고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병역 거부자가 대체복무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도록 제도를 잘 운영하고, 국방력 약화 등 부작용이 없도록 보완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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