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겠다, 살겠다

by 모구차

며칠 전 잠을 잘못 잤는지 목이 심하게 결렸다. 하루정도는 목을 아예 돌릴 수가 없어서 옆을 바라보려면 몸전체를 돌려야 했고, 밥을 먹을 때도 그릇을 입 근처까지 들고 먹어야 하는 판이었다. 의원에서 며칠 치료를 받고 시간이 지나니 좀 나아졌다. 목을 가눌 수도 없던 때를 지나니 불편함이 조금 남아있지만 훨씬 나아져서 '어우 살겠다' 말이 절로 나왔다. 무심코 내뱉고 나니 살겠다는 말이 거슬렸다. 살겠다니.


오늘 회사 동료와 까다로운 일 하나를 어찌 처리하나 이런저런 논의하며 제법 긴 시간을 고민을 거듭하며 보냈다. 나도 지치고 그도 지치고 모두가 지쳐갈 무렵, 불현듯 그가 답답한 공기를 뚫고 말했다. '어우 죽겠다'라고. 무심코 들린 말이 어쩐지 귀에 맴돌았다. 죽겠다니.


나도 그도 살고 죽는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사느냐 죽느냐는 동사가 전과 너무나 다른 생경한 표현으로 들렸다. 그동안 습관처럼 죽네, 사네를 관용어구처럼 써 버릇했고, 타인의 표현도 무심코 흘려들어왔음에도 한 번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갑자기 새로운 단어처럼 느껴졌다.


우리 가족은, 나는 이제 이 단어를 쉽게 내뱉지 못한다. 무의식적으로 내뱉더라도 아차 하게 된다. 아버지의 투병 이후 이 표현은 이제 쉽게 쓸 수 없는 심각한 표현이 되었다. 그래서인 것 같았다. 이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지 않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실제로는 건강하고 괜찮은 사람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 죽겠다는 말을 툭 가볍게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죽음을 앞두기는커녕 잘 살고 있는 사람이겠구나 하고.


아무렇지 않게 이 말을 쓰던 때가 좋았구나 싶다. 아주 한동안은 이 말이 쉽게 나오지도, 쉽게 들리지도 않을 것 같다. 아주 한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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