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의 조화
의미와 현실 사이를 찾아가는 노력
일에서의 보람과 의미, 노동과 현실이 적당한 비중으로 기획되어 제 눈앞에 펼쳐지기를 늘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은 물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여러 상황들 속에서, 적당한 타협과, 적당한 보람과, 큰 슬픔과 큰 노여움의 연속이지요. 일을 하는 직장인은 다 그럴까요. 제가 유난인 건지, 남들도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회사를 향해 집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 중 8~10시간+a 남짓되는 그 시간이 절대 불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찬란하게 충만하고 행복할 수 없다고 해서, 불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 시간이 적어도 버티기 힘든 지옥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걸 위해,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지 않기 위해, 공허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있지 않기 위해,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고, 왜 내가 이 회사에 존재하고, 나는 어떤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어떤 역할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급적 생각하고자 합니다. 물론 일상에 치이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찰나 속에서는 이런 생각은 사치입니다. 하지만 장담컨대, 수시로 이 생각을 합니다. 제 생각, 마음의 한켠에 늘 있는 것이지요. 그럼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먼저, 미리 생각하게 됩니다. 아, 이런 건 고쳐야겠구나. 아, 이걸 먼저 해봐야겠구나. 아, 이게 바뀌어야 하는구나. 노력하지 않아도 개선하는 사람이 되고,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 됩니다. 아, 정정하겠습니다. 생각을 늘 하는 것은 노력이 될 수 있으니 노력을 해서 개선하고 아이디어가 많고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최근, 그 방법론으로 좋은 것을 발견해 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미 어딘가, 누군가 대선배님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일지도요.)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3가지를 체크해 보는 것입니다.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저는 보통 그렇습니다.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우선순위나, 중요도, 파급력을 따질 때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동원됩니다. 보통은 할 수 있는 일이 더 우선되겠지요. 사실 할 수 있는 일도 연차가 쌓이면서 제법 늘어났습니다. 처음 보는 일은 당연히 있지만,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는 보입니다. 최소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른다면,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는 보입니다. 반대로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지도 보이구요. 그런 다음에는 하고 싶은 일이 최후에 동원됩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나? 물론 이건 단순한 취사선택이나 심경변화 같은 맥락은 아닙니다. 선택의 여지가 혹여나 있다면 흥미나 관심도에 따라 조금의 자유도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것보다는 최소한의 가치관 정도는 감안되어야 한다는 말이 맞을 것입니다. 이 일이 정말 내가 하고 싶어 했던 일인가? 나쁜 영향력을 주는 일은 아닌가 정도이지요.
지금 제가 쓰는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 개인에 따라, 연차에 따라, 상황에 따라 순서나 중요도는 달라질 수 있겠지요. 그리고 저에게도 언젠가 이것보다 맞는 다른 프레임이 찾아올지도요. 하지만 우선 지금은 적어도 이 3가지를 체크해 보면 대부분 답이, 힌트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 3가지가 모두 겹치는 궁극의 원은 사실 찾지 못했지만, 3개의 원을 가운데로 모으고, 크게 그려보는 일을 매일같이 합니다. 네, 노력해서 개선하고, 아이디어가 많고,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 되지 않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