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시뮬레이션
상사보다 후배에게 말하기다 더 어렵다
회사에서 말을 하기 전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때가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개는 보고하기 전 혼잣말을 해보거나, 소리가 나지는 않더라도 머릿속으로 예상되는 흐름을 짚어보고 순서를 바꾸는 식이다. 그렇다. 보통의 경우 손윗사람에게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보고'를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종종 반대의 상황이 생긴다. 손아랫사람에게 코칭, 당부, 꾸중을 해야 하는 경우인데, 사건이나 이슈가 터지기 전에 시간이 충분하다면 미리미리 대화나 논의로 풀 수 있겠지만, 늘 상황이 그렇게 해피할 수는 없고, 이미 벌어진 뒤 코칭과 당부가 따라와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갈 때야 무슨 말이든 듣는 사람 쪽도 귀에 들릴 리가 없고, 말해야 하는 쪽도 이슈 수습에 여유가 없다. 결국은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된 후에 왜 그리 되었어 라든지, 앞으로는 이렇게가 아니라 저렇게 해보자 라든지가 나오게 되는데, 이때 감정적이지 않기 위해선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다만, 시뮬레이션을 하는 동안 생기는 감정의 흐름은 온전히 내 몫이다. 답답한 마음도 들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혹은 똑같은 실수를 주구장창 반복하는 후배에는 괘씸한 마음도 든다. 근데 그럼 초벌마음 그대로 코칭이랍시고 부딪히는 경우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보니 감정의 찌꺼기만 전달되고, 정확히 필요한 당부나 업무상 지침은 머릿속에 남지 않는 것 같았다. 말하는 나도 감정소모에 기운이 빠지고.
그래서 온전히 내가 나에게 하는 것이 되지만, 스스로 제3자와 같이 시뮬레이션을 하며 멀리서 지켜보면, 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구나. 이건 내 기분만 전달하고 있구나. 이건 누구를 위한 이야기인가, 여러 생각이 끼어들면서 적당히 걸러진 콘티가 정해진다.(물론 머릿속으로) 그러면 물론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좀 나은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 같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상사에게 하는 보고보다, 후배에게 말하기가 더 어렵더라를 참으로 길게 썼다. 시뮬레이션이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의,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 참 어렵다.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