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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구차 Dec 27. 2023

대화 시뮬레이션

상사보다 후배에게 말하기다 더 어렵다

회사에서 말을 하기 전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때가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개는 보고하기 전 혼잣말을 해보거나, 소리가 나지는 않더라도 머릿속으로 예상되는 흐름을 짚어보고 순서를 바꾸는 식이다. 그렇다. 보통의 경우 손윗사람에게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보고'를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종종 반대의 상이 생긴다. 손아랫사람에게 코칭, 당부, 꾸중을 해야 하는 경우인데, 사건이나 이슈가 터지기 전에 시간이 충분하다면 미리미리 대화나 논의로 풀 수 있겠지만, 늘 상황이 그렇게 해피할 수는 없고, 이미 벌어진 뒤 코칭과 당부가 따라와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갈 때 무슨 말이든 듣는 사람 쪽도 귀에 들릴 리가 없고, 말해야 하는 쪽도 이슈 수습에 여유가 없다. 결국은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된 후에 왜 그리 되었어 지, 앞으로는 이렇게가 아니라 저렇게 해보자 라든지가 나오게 되는데, 이때 감정적이지 않기 위해선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다만, 시뮬레이션을 하는 동안 생기는 감정의 흐름은 온전히 내 몫이다. 답답한 마음도 들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혹은 은 실수를 주구장창 반복하는 후배에는 괘씸한 마음도 든다. 근데 그럼 초벌마음 그대로 코칭이랍시고 부딪히는 경우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보니 감정의 찌꺼기만 전달되고, 정확히 필요한 당부나 업무상 지침은 머릿속에 남지 않는 것 같았다. 말하는 나도 감정소모에 기운이 빠지고.

 

그래서 온전히 내가 나에게 하는 것이 되지만, 스스로 제3자와 같이 시뮬레이션을 하며 멀리서 지켜보면, 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구나. 이건 내 기분만 전달하고 있구나. 이건 누구를 위한 이야기인가, 여러 생각이 끼어들면서 적당히 걸러진 콘티가 정해진다.(물론 머릿속으로) 그러면 물론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좀 나은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 같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상사에게 하는 보고보다, 후배에게 말하기가 더 어렵더라를 참으로 길게 썼다. 시뮬레이션이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의,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 참 어렵다.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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