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와 함께 여행의 시작
자동차 등록대수 2177만 시대, 가끔 경차의 수난시대 이야기가 올라온다. 우스갯 소리로 몇몇 에피소드가 돌아다닌다. 아주 오래전엔 티코 경차는(지금은 단종) 커브 돌 때 손을 짚어야 한다는 농담 식이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진 업그레이된 경차라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언덕길에서 뒤에 차들이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가 된다거나 하는 말이 돌아다닌다.
실제로는 차선 바꾸니 뒤에서 경적을 울린다거나, 커브 돌 때 나를 추월해간다거나 등의 경험담들도 들었다. 도로에선 거리를 두는 존재이거나 구전으로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은 차의 예전 소유주로서 한마디 하고 싶다.
내 첫 자동차는 경차였다.
나들목 커브길을 돌 때 원심력을 제대로 받는 덕에 옆으로 쓰러질 듯한 느낌이 나는데, 더 밟으면 날아갈 거 같아서 시속 50km를 넘지 못했다. 차 안에서 원심력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핸들을 잡고 있었지만, '너와 함께라면 산꼭대기라도 올라갈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지까지 생각하는 여행가의 꿈을 꾸었다.
주말엔 집밖으로 나가 살았지만 여행은 안 다녔다. 그러다 직장을 바꾸고 나서 주말이면 간식거리를 3만원어치 사서 집에 틀어박혀 TV시청하며 종일 빈둥거렸다. 직장 스트레스는 이렇게 풀어야 한다고 믿었다.
출퇴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거리지만 차를 이용하면 20분 거리라서 오래 고민한 끝에 차를 사기로 했다. 자동차 쉐보레 대리점을 들렀을 때 다크그레이 풀옵션 스파크를 보자마자 반했다. 매끈한 디자인, 내부 공간은 혼자 타고다니기에 정말 아늑했다. 볼수록 감탄사가 나왔다. 시크한 그레이 색깔은 몇달 세차를 안 해도 깨끗했다.
출퇴근을 위해 차를 구매하고 나니, 없던 취미가 생겼다. 집에 누워 있으면 뭐하나. 가족들 또는 친구들과 차를 타고 어딘가로 다녔다. 엄마와는 큰 대형마트도 다니고, 가까운 지역에 입소문난 꽃 구경도 다녔다.
그러다 점차 먼 곳도 떠났다. 메밀꽃 필무렵 이효석 생가, 순천만 정원, 삼시세끼 촬영지 정선, 지형이 특이한 한탄강, 남산타워, 인천, 닭강정 소문에 간 속초, 굴정식이 먹고 싶어서 간 통영, 등산의 정석 설악산, 녹차밭과 최참판댁 하동 등.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을 돌아다녔다. 친구, 동료들과는 퇴근 후 저녁의 낭만을 즐기러 미사리 카페도 가고, 갑자기 바닷가도 갔다. 별 트러블 없이 나는 스파크를 타고 3년 동안 좋은 장소에 다녔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은 S 휴양림, 경기도에 있는 곳이었다.
차를 사고 나니 그동안 집에서 틀어박혀 보았던 주말 예능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김성주 아나운서가 초등학생 아들 민국이를 데리고 '아빠 어디가' 예능을 찍었다. 어느날 이 부자가 숙소로 뽑은 것이 원터치 텐트였다. 다른 팀들은 그럴듯한 숙소에서 자는데 텐트에 당첨된 민국이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민국이의 마음과 달리 나는 그 텐트가 너무나 신기했다.
아빠가 아들 민국이를 달래며 텐트를 가방에서 빼서 바닥에 던지니까 자동으로 펴지면서 자립이 되었다. 손댄 것도 없는데 텐트가 완성되어 집이 뚝딱 만들어졌다.
'세상에! 요새는 저렇게 텐트가 좋아진 거야?'
어릴 때 캠핑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계곡물 옆에서 돌멩이 만지고 쌓고만 있어도 좋았던 장면, 텐트 앞에 앉아 바람에 날려온 바다 모래가 씹히는 밥을 먹던 서걱서걱한 그 느낌이 떠올랐다. 그리웠다. 캠핑은 텐트 설치 등의 전문가 영역의 느낌이 났다. 더구나 나는 스카우트 야영의 경험도 없다. 내겐 캠핑은 어려운 것, 특히 텐트 때문에 진입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본 원터치 텐트를 보고 상상했다. 숲속에 텐트를 친다. 시냇물에 발도 담그고,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고, 나뭇잎 사이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쉰다. 상추쌈에 된장올려 먹고, 삼겹살 구우며 밥 위에 얹어 먹는다. 상상 끝에 그 날 원터치 텐트를 인터넷으로 하나 샀다. 정보 검색을 하며 프랑스 퀘차 브랜드로 14만원 주고 녹색으로 원터치 텐트를 구입했다. 장점과 단점, 접는 방법을 모두 영상으로 익히고, 그 텐트를 갖고 엄마와 함께 자라섬을 방문했다. 낑낑 거리며 텐트를 접으면서 힘들었지만 첫 캠핑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그 이후 꾸준히 캠핑을 다니며 니중에는 자동차를 여객선에 실어 제주도 비양도, 휴양림, 해변 노지 캠핑까지 엄마, 친구, 동료들과 캠핑을 다녔다.
캠핑 텐트 하나만 사서 집에 있는 용품을 갖고 다녔지만 나중에는 차가 작아서 수납이 잘 되는 캠핑 용품들을 사들였다. 그러다가 친구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첫 초대는 나의 직장 동료들이었다. 그분들과 첫 캠핑을 떠났다. 엄마와 몇 번 가본 곳이다. S 휴양림 내 야영장.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