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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브 Jun 07. 2022

나의 외모 콤플렉스는 사라진 걸까?

외모 콤플렉스가 나의 인간성에 기여한 공로


결혼을 왜 안 하셨나요?

누군가 물었다. 나는 결혼 적령기를 지난지 오래라 진짜 오랜만에 듣는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을 했다.


“못생겨서요. 외모 콤플렉스가 있어요.”


그동안 한번도 입밖으로 내뱉어 본 적 없는 말이었고, 남들도 나의 미혼 이유를 얼핏 짐작은 할 때 외모 때문인가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차마 생각을 밖에 꺼내놓지 않거나 못했을 것이다. 결혼을 못한 이유를 외모로 들기엔 우리 너무 성숙해졌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성숙했어도 과거의 나는 외모 콤플렉스를 끌어안고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내가 미혼을 유지하는 이유를 답변하게 된 것은 한 기관의 연구 때문이었다.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원인을 다각도로 살펴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한다고 했다. 내게 대상자로서 적합한지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이 질문을 받게 되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대답을 말했고 이 질문에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일찌기 연애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져서 진출을 안 했어요. 그리고 결혼이 괜찮을 나이에 결혼 생각 있는 후보군들은 다 가고, 저는 연애시장에는 아예 기웃거리지도 않았어요. 딴짓(수능공부)을 하며 다른 길을 갔어요. 그리고 그 이후 결혼에 관심갖게 되자 남자를 만나도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함께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잠깐 만나기는 했네요.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외모 콤플렉스가 작용해서 그럴 거예요.


나는 오랜만에 결혼과 관련된 답변을 해서 신선했다. 내게 주어진 질문과 내가 답한 내용을 지인들에게 전하며 대화하는데 한결같이 그런다.


“뭐? 네가 외모 콤플렉스라고? 만약 그랬다면 네가 시민 연극하러 가고, 남들 앞에 나서는 활동을 했을 것 같아? “
“네가 정말 외모가 콤플렉스면 돈이 생기면 성형수술 먼저 했겠지. 그런데 넌 다른 데에 시간을 들이고 돈을 썼잖아. 그냥 네가 추구하는 가치에서 외모가 1순위가 아니었을 거야.”


정말인가? 내가 외모 콤플렉스가 없었나? 생각에 잠겼다. 난 분명 있었는데. 어린 시절 내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아주 존재감 있는 콤플렉스인데 말이다. 그런데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외모콤플렉스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지금은, 지금은 어떻지?



외모 콤플렉스의 시작


어릴 때, 남자애들은 내게 불친절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은 아닌데 같은 반이었어도 남녀가 의견차이 등으로 갈라지는 학창시절인지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이성에 대한 관심조차 없을 무렵이었는데, 골목을 지나가는 길에 모르는 남자애들 무리가 “야, 못생긴 애 지나간다.”며 키득거리는 말을 듣고 집에 가서 울었던 기억을 시작으로, 내 외모 콤플렉스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거울을 봐도 객관적으로 이쁜 구석은 없었다. 가족에게도 친척에게도 친구들 선생님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사랑받았던 기억을 말하는 거다. 어린 시절 예쁘다는 외적 기준이 내게 어떻게 생긴 건진 몰라도 남들에게 사랑받는 대우 혹은 칭찬의 말을 듣는 경험이 전무하고, 내 또래 타인이 칭찬받거나 사랑받는 것을 보며 갖게 된 기준일 것이다. 초창기 나의 외모 콤플렉스는 어린이의 본능으로 타인과 비교를 하며 점점 자리를 잡아간 거라 봐야겠다. 6학년 때 내 짝이 곱상한 얼굴을 가진 아이였는데, 그 친구가 졸업하며 써준 롤링페이퍼에 나에게 하는 말이 “얼굴만 better 한다면 good”. 이렇게 썼다. 영어 잘 모르던 시절에 나는 그말을 곱씹으며 의미를 알아낸 순간, 그 애와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 애와 짝이 됐던 겨울, 거의 대화도 하지 않던 그 아이와 나는, 어는 날 아이가 마스크도 쓰지 않고 콜록더리다가 폐렴이라며 며칠 나오지 않았다. 곧 나는 누울 정도로 심한 감기를 앓았다. 성인이 되니 내게 폐렴을 앓았던 흔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그처럼 심한 감기를 걸린 적이 없는지라 6학년 때 앓았었구나, 생각했다. 그 당시 난 심한 감기를 누구에게서 옮았는지 알듯했지만, 그 아이를 절대 탓하지 않았다. 그러나 졸업 날 롤링페이퍼 구절을 보고 내가 수양하며 감싸주던 마음을 풀어버리며, 날 아프게 한 놈. 이라고 태그를 붙였다.



외모 콤플렉스 굳히기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여드름 투성이에 뚱뚱하고 이목구비가 못생겼었다.이목구비 놀림을 많이 받았다. 미인의 기준인 작은 얼굴, 흰피부, 작고 오똑항 코, 큰 눈, 진한 눈썹, 긴 손, 가는 팔다리. 그 어느 것도 맞아떨어진 게 없이 반대인 나는, 장난 삼아 놀림을 받았고 실제로 사실이라 반박 또를 화를 내진 않았다. 사실이니까. 요즘 말로 팩폭.

그렇게 여드름 투성이 못생긴 얼굴인 나를 좋아할 남자나 여자 친구들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내게 이유없이 퉁명하거나 불친절한 아이들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장마철, 교실마다 쓰레기통 같은 바스켓에 우산을 꽂았다. 비슷한 우산도 많았던 시절이라 헷갈리기 마련이었다. 자신의 우산을 잘못 가져간 여자아이랑은 웃으며 이야기한 현철이라는 아이가 그 다음 날 내가 똑같이 실수했는데 성질을 부리며 나를 잡아먹을 듯이 따졌다. 그래도 잘못 가져간 걸 일찍 알아차리고 다시 교실로 올라와 주인에게 갖다두러 온 내가 솔직하고 양심적이었는데도 말이다.속상했다. 내게 불친절한 아이들에게 외모 콤플렉스와 연결시키게 된 경험이었다.


날마다 거울을 보면 전보다 배로 늘어나는 여드름과 살찌는 체질, 어딘가 귀여운 구석이라곤 없는 뜯어봐도 (자세히 봐도) 예쁜 구석을 못찾아서, 외모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콤플렉스가 심해졌다. 중학생 무렵, 여드름이 질병처럼 심해져갔다. 피부과는 여드름 치료가 미용이라고 의료보험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비쌌다. 이런 나를 보고  뭐라고 할지 몰랐었는데. 나를 설명하기 위해 어떤 아이가 그 1반에 00이 있잖아, 라고 했더니, ‘아! 그 얼굴 더러운 애’라고 했던 애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듣는데, 그걸 또 전해주는 순박하지만 친절한 친구도 있다, 마음이 아려서 말초신경들이 우는 느낌이 났다. 그런데 그때 이미 운명을 받아들인 건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한 명이 그렇게 표현했다면 분명 많은 이들이 내 뒤에서 그렇게 바라보고 느끼며 표현하고 있지 않을까, 혹은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것까지 생각이 미쳤다. 슬펐다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깊은 우울감이 왔다.



외모 콤플렉스 묶어두기


우울감은 찾아 왔지만, 그래도 선천적인 유머기질이 있어서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웃음을 팔며 인기를 조금씩 얻고 있었다. 나를 찾는 친구들이 생겼고, 공부도 못하지는 않아서 같이 스터디하거나 내게 알려달라며 공부에 도움을 청하는 애들도 있었다.

또 우리 반에 소설쓰기가 유행이었는데 내가 쓴 소설이 우리반 대출 순위 2위였다. 1위는 누구의 것인지 기억 안나지만, 내 소설을 대출하러 오는 아이들을 보며 잠시 외모 콤플렉스는 수면 아래로 깊이 들어가 있었다. 그래도 외모가 걸림돌이 되어 나를 싫어할 거라는 생각이 우선이 되어 소극적으로 지냈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동아리 활동으로 신문부에 들어갔다. 다른 학교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냈다. 2학년 때는 신문부 리더도 맡아가며 열심히 활동했다. 그 시절 무슨 리더십이 있었겠냐만 신문부 부장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연애를 하는 애들이 생겼다. 친구들은 고백을 받고 고백을 하고,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나는 까였다. 내 고백은 두려웠다. 그리고 연애 시장에서 발을 뺐다. 내 스스로 거울을 보며 연애하기 어려운 얼굴이라고 경험상 느끼고 내 스스로도 인정하며 연애는 내 삶의 밖에 두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느꼈기에 고통은 따랐지만 가까스로 고백한 사람에게 외모를 관리할 생각은 없냐는 수치스러운 말을 들으며 그를 보냈다.



외모 콤플렉스의 완성


나를 좋아하고 자주 연락하는 이성의 친구가 있었다. 이성은 내게 조금만 관심만 주어도 내가 좋은가 싶어서 나도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난 편하고 웃긴 친구.

대학을 다닐 때 나는 미팅 섭외 대상에서 늘 빠졌다. 다행히 내 경험에 친한 친구들이 미팅에 한번 껴줬다. 미팅에서 난 안 되었다. 그런데 그 미팅 주선자가 나를 제외한 세 명의 친구들을 만나러 또 모임을 하고 싶다며 나를 한번 더 초대했다. 구면이 되자 나는 웃기기 시작하였는데, 내가 웃기다고 분위기 메이커로 찾지만 정작 연애는 내 옆의 친구들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역시 내가 무슨 미팅이고 연애야, 그랬다. 나를 미팅에 끼워주지 않아도 이해했다. 대신 내 말초신경이 닿는 곳은 이상하게도 뭔가를 느끼는지 아파왔다.

내게 친하게 지내자는 남자아이도 있었는데, 내게 한번은 여자친구를 고르는 기준을 말해주었다.

“내 여자친구가 될 아이는 안 예뻐도 돼. 대신 두 가진 충족되어야 해. 얼굴 피부가 깨끗하고, 치열이 고르면 돼.”


친했기에 나와 단 둘이서 만나 술한 잔 하던 그 때, 그 아이가 나를 겨냥하고 한 말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냥 듣는 나의 입장을 몰랐고, 자신의 생각을 올곧게 이야기했을 뿐일 것이다.

당시 친한 남자였던 그 아이의 발언에 나는 겉으로는 “음 그렇구나.” 했지만, 굳이 내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구겨졌다. 그 뒤론 그 친구를 슬슬 피하게 되었다. 만날 일이 있어 내게 친절하게 다정하게 굴어도 구겨진 흔적은 남아 있었다. 이 사건으로, 24살까지의 외모 콤플렉스가 완성되었다.  



외모 콤플렉스가 내 삶에 기여한 점 생각하기


- 부정적인 것, 긍정적인 것 모두 살펴보면서 내가 되어버린 콤플렉스를 어찌 할지 생각해보려고


콤플렉스 정의를 살펴보아야겠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았다.


콤플렉스: 현실적인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감정적 관념. 유의어로 열등감, 욕구불만, 강박관념을 든다.

쉽게 외모 열등감으로 보면 되겠다. 그런데 내가 이 열등감을 극복할 생각은 왜 안 했겠는가. 은근히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려 했을 것이다. 어릴 땐 눈에 띄는 옷을 입고, 과한 액세서리를 하였다. 피부과에 아르바이트 한 돈을 다 쏟아부었지만, 여드름 흔적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피부과 원장님 말이나 피부샵 원장님 말을 듣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 여기고 발을 뺐다.

더이상 극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냥 나는 못생긴 사람이라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그게 힘들긴 했다. 그래도 내 얼굴을 거울로 잘 안 보니까 나는 가끔 잊었다. 그런다가 남에게 받는 대우 때문에 각성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그것이 부담스러워 삶의 태도가 몇 가지 형성된 것 같다.


콤플렉스는 내게 친절해야 함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누군가 내 얼굴을 볼 때 여드름 흔적을 보는 것인가 싶고, 꺼려했다. 이유 없이 내게 불친절한 사람들에게 괜한 상처를 받아서 더 친절하게 했다. 그랬더니 친해지고 나를 받아들여주었다. 그것마저도 힘들었지만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번은 맞선을 보았는데, 주선자에게 후기를 들어보니 내가 불친절했다고 한다. 내가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는 그렇게 말했단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면, 그러면 안 될 얼굴 같은데. 라고 했단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콤플렉스는 내게 자연스럽게 포기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내가 게임에서의 승부욕 같은 것은 별로 없는 이유가 비슷한 습성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포기하는 것이 쉽다.


콤플렉스는 상처가 되는 말들과 행동, 시선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내가 생각 을 깊이 하지않고 말하는 때도 더러 있어서 주의를 한다. 그래도 실수한다. 내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타인의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들을 경험하며 나는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일들이 많겠지만 줄이려고 노력한다는 점.


콤플렉스는 내 콤플렉스를 생각나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구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을 만나면 내 콤플렉스가 아니라 나의 다른 면모가 떠오르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콤플렉스는 아무하고나 쉽게 사랑하지 않게 해주었다. 내 사랑은 자주 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랑을 더 귀하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희’귀하다.


콤플렉스가 인간성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내면화되면서 그저 내 것의 일부로 받아들이다보니 예전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런가보다, 하는 상태로 옅어졌다. 그러다보니 외모를 떠올리지 않고 새로운 도전들을 하고 있다. 내가 하나하나 성취해나갈 때마다 이런 나도 해낸다는 작은 기쁨을 주었다. 콤플렉스에 가려 소극적으로 지내던 내가 나이가 들어 외모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다른 것들의 중요도가 커지면서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될 때마다 기분좋음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그동안 몰랐던 내 재능에 대해 이제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다. 콤플렉스가 내 삶에 한 일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일은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래도 내 콤플렉스가 이제는 나를 어떻게 잡아서 묶어뒀는지를 자각했으니까 말이다.


결혼했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면서 부터 시작된 이 생각들은 좀더 갈고 닦아야 할 것 같다. 속상한 경험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냐는 사람들에게, 너무 오래된 콤플렉스여서 그다지……


(사진 설명: 2016년.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찍은 사진. 그 해 여행 이후 내가 조금 변했던 때. 그 때 만난 카드 속 인물들에게 Merci라고 한 건 나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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