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기록하다보면 알게 되리
2022년 여름 휴가 여행에서 어제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엄마와 통영을 한번 더 들렀다가 10년 전 이야기를 했다.
엄마, 우리가 통영 갔다왔을 때, 그때도 동피랑을 왔었나?
-응 왔었어.
그래, 왔었겠지? 난 왜 오늘 처음 온 것 같지?
-아냐, 여기 왔었어.
엄마의 기억으로 동피랑에 왔었다고 하니, 온 거겠지. 그런데 그 외에는 통영에서 어디를 갔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날 굴 정식을 먹고 그 날밤 집에 도착하여 노로바이러스로 지독한 후유증을 겪었다. 출근하다가 쓰러질 정도로. 그래서 내 여행 기억에는 노로바이러스 후유증만 있고 나머지는 희미해진 듯하다.
통영을 시작으로 우리의 다른 여행도 떠올리다가 내가 교대 다니던 시절 3학년 때, 돈을 모아 힘들게 갔던 해외여행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엄마와 둘이서만 여행했던 첫 여행, 내겐 첫번째 해외여행이었다. 2010년 캄보디아 패키지 여행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액션영화를 찍었고, 그 영화를 보면서 캄보디아의 신비한 모습에 관심이 있었다. 당시 6월 중순이라 최저가로 하나투어를 이용해 갈 수 있었다. 그때의 여행, 안타깝게도 그때의 사진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저장장치 메모리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누군가가 훔쳐간 외장하드 속에 고이 저장해두었던 그 사진들, 외장하드가 없으니, 없는 사진이다. 그렇다고 캄보디아 여행 기억이 아예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앙코르와트와 그 외 몇 장면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에 대한 기억으로는 패키지 여행에서 만났던 내 또래 자매들과 열심히 살아가던 여행 가이드가 기억이 난다. 가이드가 설명했던 앙코르와트 사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풍경 사진을 찍던 아련한 기억들과 35도 이상의 기온과 스콜이, 도마뱀이 떠오른다. 그렇게 하나둘 더듬다보니, 내 여행의 자세도 떠올랐다. 그때 첫 해외여행이어서 수첩 하나를 들고 다니며 가이드의 안내말을 적으며 마치 교육여행을 온 듯 열심히 했던 모범생 같았던 내가 떠오른다. 아, 그 때의 수첩이 책장 어딘가에 있겠구나, 그걸 찾으면 되겠네.
여행 기억은 더듬을수록 하나씩 끌어올려지고, 그것을 실마리로 기억의 뭉텅이들이 하나씩 뭉쳐진다. 그렇게 기억해내다보면 캄보디아 이야기도 정리할 수 있겠다 싶었다. 3박5일 일정이었던 그때의 기억을 조금씩 찾아가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기억을 더듬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진을 바라보며 그 여행을 함께 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방법이 있다. 사진이 사라진 여행은 함께한 사람들 혹은 가족들과 대화를 하며 기억을 하나씩 꺼내가면 된다.
“엄마, 그때 캄보디아에서 맨 처음 공항에 도착해서 비자 발급 받을 때 기억나?” 사실 나는 그때 기억이 난다, 가이드북의 조언(!)대로 행동했던 살짝 고지식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기억하고 있으시려나.
그 이후로 떠난 국토 여행과 순례길, 캠핑도, 여행한 후에 정리를 하지 않았더니, 내가 얻었던 감정,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글로 옛 기억들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 먹고나서 질문을 던졌다. 내가 했던 여행을 떠올리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아니, 나는 왜 여행했던 기억을 떠올려서 저장하고 싶은 거지? 내 생각을 따라가보아야겠다.
여행은,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특별한 기억으로 생각한다. 일상 속에서는 바라보기 힘든 정경들, 낯선 환경 속에서 겪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있으면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게 되지 그리고 그 때 얻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행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한동안 소홀히 했더니 후회가 된다. 왜냐하면, 여행 중에 피곤해서 자느라 기록에 게을러졌다. 혼자하는 여행이 아니다보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다. 말하고 보니 변명이다.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사진만 찍었다. 두 번째 방문한 통영에서 첫번째 통영의 기억을 꺼내려고 했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로, 그동안 내가 여행 사진을 찍고 정리하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예전엔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면 무엇을 찍었는지 궁금해서 인화를 해서 한장씩 갖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사진이 앨범 속에 고이 남아 그 시절을 보며 웃는다. 그러나 글이 없으니 가끔, 내가 이런 걸 찍었네. 하며 놀라기도 한다.
13년 전, 첫 해외여행 때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곧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어서 인화하지 않았다. 용량 제한이없는 편이다보니 많이 찍고, 수백장의 사진을 컴퓨터 하드에 옮기고, 양이 많다보니 정리는 안 하고. 컴퓨터 본체 용량이 모자라니 사진 폴더는 외장하드에 옮겨두었다. 그것을 회사에 갖고 다닌 것이 잘못이었다. 초창기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몇 년 동안의 여행 사진은 정리를 잘하지 않는 탓에 외장하드 속에 있다가 도난 당해 사라졌다. 외장하드가 타인에게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 생각하지 않고 본체위에 툭 두고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없어진 사진, 어쩔 수 없다.
여행이 특별한 경험인 것은 인정하지만, 일상의 경험도 소중하다. 그런데 오늘 내가 여행의 기억만을 떠올리고 정리하여 저장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남들에게 여행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고, 혹은 내가 당시 여행에서 못 갔던 곳이나 놓쳤던 곳을 다음 번에 가기 위한 것도 아니다. 무엇 때문에 내가 갔던 곳을 더듬고, 그곳에서 했던 경험, 나의 행동들과 어렴풋한 감정들을 찾아내어 무엇을 정리하고 싶은 것일까.
계속 생각해보니 단지 글을 쓰고 싶어서인 것 같다. 일상의 경험보다 쓸 거리가 많은 것이 여행이니까. 기행문을 쓰면, 여정, 견문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므로 쓸 거리가 많아서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닐까. 삶에 치여 좋아하는 글쓰기도 뒷전으로 미뤄둔 내 자신에게 ‘너 이거 좋아하잖니…’ 하는 내면의 소리가 부과하는 과제인 것 같다. 2010년 캄보디아, 백두산, 2011년 상하이, 2012년 군산, 전주, 필리핀, 일본, 2013년 파리, 로마, 캠핑 시작, 2014, 2015 이렇게 여행의 기록을 하면서 밀린 일기를 쓰듯 하면서 기억을 정리하는 프로젝트. 사진이 없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은 어떻게 쓸지 고민하면서 내 기억들을 재구성하며 내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프로젝트.
내 여행의 기억들을 정리하는 프로젝트 글쓰기. 현재 가장 생생한 기억인 이번 여름 휴가 여행부터 정리해야겠다. 아직은 사진이 남아 있는 생생한 자료가 있는 것부터. 내면의 소리가 장려하는 프로젝트니까 장거리 출퇴근으로 길위에서 하루 4-5시간을 보내느라 빠듯한 삶에서도 글쓰기를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나는 여행에서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다. 예전에는 셀카를 참 많이 찍었는데, 요새는 셀카보다는 풍경이나 인물 사진을 찍는다. 이번 여름 휴가에서 찍은 것도 주로 가족의 사진이거나, 여행 중에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을 찍어 저장했다. 내 생각의 언어를 대신하여 짧은 순간에 이미지를 저장하여 두었는데, 며칠이 지나고 또 지나다보면 사진을 찍은 나의 의도를 유추해내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첫번째 사진 : 이 사진을 찍을 때 이 말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생명은 능동적이다. 생명이 아름다운 것은 능동적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사진: 통영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작업을 했음을 알았다 그 중에 박경리 선생님의 사진을 보며 통영을 다시 보게 되었음을 찍었다.
이번 여름에 남해에서 함께 캠핑을 했던 절친은 인스타그램을 한다. 사진을 찍고 곧바로 인스타에 올리며 그 순간을 기록해두었다. 자신의 팔로어들이 쓴 댓글을 보며 여행을 그때그때 전달하며 저장하고 있었다. 나는 인스타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보느라 쓰지 않는다. 순간의 기록을 잘하지 않는 탓에 기억이 많이 휘발되고 있지만, 13년 전의 기억도 하나씩 더듬으면 조금씩 끌어올려지기는 한다. 그러니 생각을 정리해 쓸 수 있다. 순간 떠오른 감정과 생각의 기록도 좋지만, 삭히고 발효된 뒤의 기억도 내겐 의미 있고 좋다.
이번 여행에서 예전 통영 여행 때 가보았던 곳을 떠올리려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아쉬웠다. 그 덕분에 언어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에서 많은 것을 느끼는 나는, 나를 위해 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행문을 쓰는 것이 나를 더 기쁘게 할 것이다. 그래,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2022년 8월 21일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