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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출퇴근 족, 이제 자전거 길 탐색합니다

직장에서 기차역까지 가려고 따릉이가 달릴 길을 익혀봅니다

by 글담연
상일에서 수서역까지 21.5km 라이딩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 잔업을 처리하러 직장에 왔다. 나뿐이었다. 일을 끝내놓고 집에 돌아갈 때, 기차역까지 서울시 공유자전거인 ‘따릉이’를 탈 생각이었다. 그 덕분인가 연휴에 해야할 잔업이 성가시진 않았다.

나보고 어디가냐고 묻자 내 대답을 들은 친구들이 위로할 때,

“그러게. 흐흐흐 잔업이 있네, 자전거 타고 슬쩍 다녀올게.”

이렇게 말하곤 가볍게 나왔다.


한강 자전거 길을 햇빛이 있을 때 바라봐야 했다. 자전거 핸들링과 페달링에 신경쓰되, 시선은 길을 바라보며, 추석연휴 마지막날의 느긋한 퇴근길을 즐길 수 있을 터였다.


나답지 않게 일을 순식간에 마치고 퇴근길에 나섰다. 잔업 중에 몇 개는 놓고 나온 건 아닌가 싶게 의외로 일찍 끝났다. 퇴근길 자전거를 얼른 타기 위해 나도 모르게 발휘된 초스피드 일처리 능력이었을까.


“그럼 수서역까지 시간 재볼까!”

앱을 켜서 자전거 길찾기 검색을 했다.


어떤 속도로 달리면 1시간 13분이 나오려나? 이미 달려본 이들의 조언이 그랬다.


“지도앱 소요시간을 그대로 믿지 마세요.”


곧이 곧대로 믿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해보려고 한다. 우선 따릉이 대여소에 갔다. 평상시에는 5-6대밖에 없는데 오늘은 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반납을 하고 갔나보다. 정말 많은 후보군이 있었다. 바퀴가 너무 닳지는 않았는지, 브레이크는 내 손에 맞게 부드러운지, 빡빡하진 않은지 점검도 해본다. 그리고 안장 높이가 얼핏 맞아 보이는 따릉이를 골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탄 자전거 중에 어떤 따릉이는 뒷바퀴 물받이부분이 망치로 때린 듯 아주 구김이 많았다. 누군가가 탔다가 넘어져서 생긴 흔적은 아닌지 다치진 않았는지, 자전거에 새겨진 흔적들이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의 경험까지 가 닿는데, 낯설지 않다.


오늘 빌릴 자전거는 바퀴가 튼튼해 보이는 따릉이였다. 따릉이에 바구니 달려 있는 것은 정말 장점이다. 이렇게 무거운 가방을 등에 메지 않고, 바구니에 올려놓고 탈 수 있다. 물론 횡단보도 신호에 멈춰섰을 때는 자전거 바구니의 무게로 인해 핸들이 약간 틀어지는데, 따릉이는 세웠을 때 버팀대가 아주 튼튼하게 달려 있다. 따릉이는 뒷바퀴가 살짝 들어올려지도록 버팀대가 중심을 잘 잡아준다. 단,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다시 버팀대를 뒤로 넣고 출발하는 데 애를 먹을 정도로 아주 강력하다. 요령을 안다면 금방 적응된다.


한강으로 향하는 뚝방길을 달리는데, 15분 정도 걸린다. 또 저번처럼 지도를 켜는 것을 깜박했다. 똑같은 지점에서 지도앱 출발을 누르고 시간을 측정해보았다. 그런데, 측정을 하려다보니 갑자기


‘그럼 오늘 지도에 따라서 1시간 13분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페달을 힘껏 밟고 있었다. 안장 높이가 낮게 맞춰 놓았기 때문에 무릎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안장 높이는 내가 자전거에 좀더 익숙해지면 그때 천천히 높이자고 생각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때문이었다. 페달을 밟으며 나도 누군가를 추월하고 있었다. 추석 연휴에 느긋하게 한강을 즐기는 사람들을 하나 하나 추월해 가고 있었다. 분명, 느긋한 퇴근 연습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지도맵을 보니 도전정신이 생겼다. 퇴근 연습이라고, 이렇게 빨리 달리면 최소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도 내가 언제 또 이렇게 밝을 때 한강길을 달릴 수 있으려나, 해는 점점 짧아질 텐데. 그럴 수록 나는 저녁 라이딩이 일상적이 되어 저녁이 익숙해지겠지. 그럼 이 밝은 라이딩은…! 추억으로 기록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간 중간 사진을 찍었는데, 시간에 구애를 받고 그만 앵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찰칵 찍고 달렸다.

길 옆 초록이 너무 아름다워서 1초컷으로 찍은 사진. 내 눈은 분명 아름다운 자연을 찍었지만, 남은 것은 그저 그런 모습이다. 내가 목격하고, 내가 감동받은 초록 풍경을 담기 위해서 1초컷이 아니라, 더 정성을 들여야 한다. 어떤 빛이 어떤 각도가 내 눈이 발견한 그 감성을 담을 수 있을까.


이 곳은 오르막길. 따릉이로 올라갔지만 뒤에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민폐일 듯하여 끌고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도 헉헉대며 끌었는데, 이 언덕 끝으로는 또 끝이 어디일까 알 수 없을 정도로 내리막이 이어진다. 브레이크 성능이 좋지 않은 경우라면 후덜덜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래서 조심해야 할 곳, 한편으로는 페달에 발만 올려놓은 채, 점점 가속되는 속도감을 느끼며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들었던 땀에 젖은 옷을 시원하게 말려주는 듯한 바람폭포에 “이 맛에, 자전거 타는건가.” 싶어진다. 오르막의 그 긴장감과 한계에 도달한 것 같은(아직 나는 초보니까) 다리 근육이 마침내 내리막 직전에 도달했을 때의 그 기분. 정말 누구의 설명처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때이다. 아, 이 느낌. 누군가가 자전거로 언덕을 오르고 싶어요! 라고 쓴 글을 보고 와, 이 분… 그랬는데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오늘 일을 조금만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어서 힘이 조금 남아 돌았다. 여유있는 페달링보다는 힘껏 밟았다. 진짜 사거리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논스톱으로 한강길을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시원하고 상쾌했다. 페달을 밟으면서 힘을 조금만 아끼면서 밟아보았다. 그래도 로드를 하시는 분들에게 길 오른쪽으로 비켜드려야 하므로 길 끝에서 정말 씽씽 속도를 냈다. 시원하다는 말보다 눈이 시리고 바람을 맞는 몸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한강에 사람들이 많았다. 캠핑 의자와 돗자리를 갖고 와서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 제각각 이었다. 모두들 집에 있기 보다는 밖에 나와서 이 에너지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신기하게도 공기의 온도가 달랐다. 그곳에서 자전거를 달릴 때는 살짝 더운 공기가 섞여 있었다. 바람이 얼룩 공기라니, 신기했다. 덥다가 시원했다가, 시원했다, 더업다가, 시이이이원 했다가 그렇게 섞인 공기를 느끼는 것이 신기했다. 수풀이 우거진 곳을 달릴 때는 그야말로, 청량하고도 천연 냉장고 바람이었다. 그 모든 공기가 좋았다.


하루에 물을 그다지 마시지 않는 나였다.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며 하루의 수분을 섭취하던 나였다. 수분 부족으로 겨울이면 건조해졌다. 그래도 물을 마시는 일은 습관이 되지 않아 버거웠다. 그런데 자전거를 탈 때면 물이 필요하다. 500ml로는 부족했다. 1리터짜리를 갖고 다니면 정말 다 마실 수 있다. 땀이 그렇게 나는 것 같진 않았는데, 수분을 채워넣었다. 1리터 물통은 필수였다. 수분을 많이 먹게 되자, 물을 달고 사는 내가 된 것 같아 낯설었다. 내 몸이 물을 원하는 갈증의 신호가 그렇게 신기했다. 때로는 더 달리고 싶어서 갈증이 나도 좀 참고, 속도를 낸다. 그런데 견딜 수 없는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멈춰섰다. 나도 자전거 신호를 썼다. 왼손을 펴서 좌회전 신호를… 아직 익숙하지 않아 핸들에서 한 손을 빼면 2초 이상은 어렵다. 1초간 손으로 찍고, 얼른 핸들을 잡고 물을 마셨다. 물이 정말 고픈 내 몸을 위해 잠시 쉬었다. 아직도 내 다리에 힘이 있었다. 다리가 아닌 물을 마시기 위해 쉬는 것이었다.



잠실에서 탄천 들어가기 직전까지 유람선 선착장도 있는 그곳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있었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서 사람들이 쉬는 모습을 볼 여유는 없었지만, 전방 주시와 빠른 페달링 때문에, 공기로 곁눈으로 보는 풍경에서 사람들의 수를 짐작하였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전거 행렬도 가장 길었다. 사람들이 따릉이, 혹은 자신의 자전거를, 또 모임 사람들인냥 속도를 맞춰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처음으로 자전거 도로가 한동안 정체되었다. 페달을 밟지 못하고, 천천히 주행하였다. 그리고 탄천에 들어섰을 때 반포 쪽으로 가는 사람들과 수서, 성남쪽으로 가는 길이 나뉜다. 여기서 사람들이 많이 갈라져서 자전거 수가 줄어들어 길이 여유가 있었다. 수서쪽으로 향하면서 자전거 길은 좁아지지만 길에 늘어선 가로수들은 더 우거지고 멋있었다. 갓길이 아닌, 졸음쉼터처럼 공터가 나오면 쉴 수 있는데, 초행길이다보니, 번번이 쉴 곳을 놓쳤다. 후진할 수 없어서 그냥 전진을 하며 겨우 멈춰선 곳이 여기였다.




앗, 다 왔잖아. 그럼 여기에라도 이 멋진 풍경을 찍어둬야지.


이렇게 수서역에 도착하였다. 따릉이를 반납하고 주행기록을 저장해보니, 아까 켜지 않고 달렸던 15분을 추가한다면, 대략 1시간 15분이 나온다. 15분 휴식시간까지 정말 빠르게 주행했을 때, 1시간 30분 정도 수서역까지 갈 수 있음을 알았다. 최고속도와 평균 속도를 보니, 저번보다 훨씬 열심히 페달을 돌렸구나, 애썼다.



여유있는 퇴근 연습이 아니라, 기록 측정을 위한 퇴근 연습이 된 것이 아쉽지만, 최소한 1시간 30분이상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저번에 2시간 15분 걸려서 앞으로의 퇴근길이 걱정되었던 것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길을 헤매고, 넘어져서 다치고, 수습하느라 그랬던 것이 꽤 많은 시간이 걸렸었구나. 얼마 남지 않은 자전거 퇴근길, 겨울에는 못 타고, 한 여름에도 못 타는 자전거 퇴근길. 할 수 있는 이 시기에 틈틈이, 기회를 만들어서 하려고 한다.

사람은 뭔가에 열중할 때 다른 감정을 느끼는구나. 그리고 또 다른 나를 만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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