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날 퇴근길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부류였다. 자신을 잘 관리하는 사람들로 보였고, 참 멋졌다. 매일 하는 운동과 그 의지를 따라할 수는 없지만 멋졌다. 감탄이 나왔다.
나는 경험해본 적 없고 시도해 본 적은 몇 차례 있지만, 하루나 이틀 만에 끝났던 터라, 그분들처럼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이 궁금했다.
고작 자전거를 삼일밖에 안 타고 내가 그분들에 대해 이런 말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가 될 수는 없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느낀 점 중에 하나가 있어서 자전거 출퇴근 삼일차의 경험을 남겨본다.
직장은 나를 시험하는 장이다. 때로는 친구에게 ‘시험’에 나온 일들을 이야기하며 내가 그 문제를 푸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는지 이야기하며 게워낸다.
혹은 원치 않는 기습 ‘시험’을 보고 상처받은 후 홀로 집에 돌아가는 길은 씁쓸하다. 퇴근길의 외로움이 시험을 본 후의 분노나 고통을 가중시키고 만다. 부정적인 감정의 불똥이 튄다. 스스로를 위한 다양한 위로법이 있겠지만, 나에겐 끊었던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등의 애써 억누르던 욕구를 깨우고 만다.
그랬다. 내겐 과자를 먹거나 맥주를 먹는 일이었다. 혹은 폭식을 하는 것이었다.
어제 예상치 못했던 ‘시험’ 후 지친 마음이었다. 게다가 그 ‘시험’이 내게 어떤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지연되었다. 일을 마무리할 수록 판단이 선명해지며 눈치챈 것은 나에 대한 비하였다.
일 마무리로 원래 나가려던 시간보다 한시간 정도 늦었다.
‘‘따릉이’ 자전거를 탈 수 있으려나?’
시간이 빠듯했다. 그러나 퇴근 연습할 때 많이 쉬지 않고 자전거를 탔을 때 도착 가능한 실제 최소 시간 1시간 30분이었다.
“그래 지금부터 정기권 기차 마지막 열차를 탈 시간 딱 1시간 50분 남았네. 해보자. 시간 넘기면 승차권 사야지 뭐.”
자전거로 퇴근하려던 의지를 작심삼일 하기 싫었다. 자전거 대여를 하려는데 그 많던 자전거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여기저기 오래된 흔적이 많은 대여 자전거 다섯 대가 있었다. 그나마 나은 것을 골라 잡았는데 착석해보니, 안장의 기울기가 이상했다. 바꿨다. 두 번째 것은 브레이크가 뻑뻑했다. 그래도 멈추는 것을 확인하고 탑승했다.
점차 명확해지는 나에 대한 부정적 발언과 그에 따라 자신감이 사라지는 내 모습의 관계를 생각하며 페달을 굴렸다.
자전거 위에서 바라본 한강변의 풍성하게 자란 짙은 빛 초록이들은 내게 살랑살랑 바람따라 흔들렸다. 길 옆으로 나온 풀들이 있어 밟지 않으려 곡선 주행을 했드. 풀들에게 나도 모르게 마음을 주었다.
‘너 참 아름답구나, 너의 생명력에 감탄해. 그런데 난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아.’
목이 말랐다. 땀이 조금씩 옷에 스며들고 있었다. 물을 마셨다. 벌컥벌컥. 멈춰선 자리에서 풍경 바라볼 새 없이 누가 오는지 정도만 뒤를 보고 안전거리를 확인했다. 안장에 앉아 페달을 구르기 시작했다.
페달을 밟으며 달리는 내게 다가오는 건 바람. 오늘은 꽤 센 바람, 역풍을 맞으며 달리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바람 너까지 나를 힘들게 하니.”
바람과 씨름하며 언덕길에서 비틀거리다가 “에휴 정말. 왜 이러니.” 된소리도 내뱉으며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 수서였다. 중간중간 시간 확인도 하지 않았다. 그냥 왔다. 도착해보니 기차 탈 시간 15분이 남았다.
“잘했네. 예상보다.”
긴장한 다리 근육에 칭찬 한마디 보냈다. 직장에서 받아온 부정적인 문장을 갖고 이리저리 확대하며 튕겨보다가, 언덕을 오르고, 바람과 맞서고, 초록이들에게 마음을 주다보니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기분 나쁜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맥주를 끊을 수가 없어.”
힘든 일이 생겨 맥주가 생각났다. 내 체중증가에 단단히 한몫 한 맥주를 다시 마실 생각을, 퇴근길의 고단함을 달래던 알콜을 마실 생각을 했다.
아직 글에서 밝히지 않았는데, 기차역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또 한번 자전거를 탄다. 아직 해보는 중이다. 힘들면 집 자전거는 동네 마실용으로 두려고.
기차역에서 내려 힘든 감정을 맥주로 추스를 생각을 하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언덕을 올라가는데, 그 힘든 구간에서, 내가 내게 악다구니를 했다.
“내가 어떻게 결심한 건데. 삼일 동안 실천해왔는데, 운동으로 건강하게 살려고 했는데, 그걸 무너뜨리는 게 돼? 한번의 시험 상처로 맥주를 마시고 또 몸이 무거워져서 내일 안 타려고? 그러지 마. 시험은 또 오고 또 힘들어. 그 때마다 운동하면서 나를 지켜내.”
집에 도착하여 앉으니 눈물이 흘렀다. 흐흐흑 소리내 울었다.
그 시험의 장에서 나를 지키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자전거가 나를 지켜내는 힘을 주었다는 것도. 운동의 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