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느낌 아시나요?
나 자신이 ‘ENFP’ 성향이 있다고 미리 말해두고 싶다. 기다림과 먼 것 같은 성향, 무계획도 실행하고 즉흥적인 사람.
ENFP, 아니 빠르게 쳐야하니 엔프피. 이것이 엔프피 성향의 특징 중 하나라고 지적되는 부분이다. 하고 싶은 말이 시작되면 의식의 흐름이 수도꼭지 틀듯이 나온다. 빠르다. 글들은 대개 한번에 쏟아지는 생각들을 적어서 고친다. 이 글도 마찬가지.
당신 친구가 엔프피 성향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요즘은 MBTI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물어보면 왠만하면 대답해줄 것이다. 아니 궁금하지 않아서 안 물어봤다고? 그럼 지금부터 내가 설명하는 것에 해당된다면 당신의 친구는 나와 비슷한 성향이 있을 확률이 높다.
나, ENFP인데
내 성격 설명하면 되려나?
1. 외향
주말에 친구가 사람들을 만나고 들어왔다고 했다. 전화통화를 하는데 왠지 나가서 커피 먹자고 하면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친구 목소리에 기운 빠져 보이지 않는다.
E와 극단에 있는 I와 비교를 해줘야 구분이 갈 수 있으려나.
I는 일단 누군가 사람들을 만나는 모임을 하고 나면 기운이 쭉 빠진다고 한다. 평일엔 일만하기에도 벅차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 자체가 기운 빠져서 큰 결심하고 나온다. 평일 약속은 미리미리 잡아두어 에너지 분배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언지를 해줘야 한다. 주말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미리 잠을 자든, 게임을 하든, 독서를 하든 해서 에너지를 보충해놓아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일하고 나서도 사람들과 만나는 약속을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거기에 가서 에너지를 채워오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주말에 사람들을 만나서 신나게 놀고 나면 다음 주에 또 활동 에너지를 쏟아낸다. 그렇다고 잠을 남들보다 덜 자는 건 아니다. 숙면으로 8시간은 자야 한다.
2. 인식형
혹시 계획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때가 있나? 예를 들어, 갑자기 불현듯 뭔가를 떠올리며 "우리, 이거 해볼까? " 하는 당신과 사전에 계획하지도 않은 것을 할 때 말이다. 혹은 자기 혼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잡아채어 싱싱한 아이디어를 채집하여 즉흥적으로 하는 것 말이다. 의식에 떠오르면 그 아이디어가 숙고되어 발효되기 전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기타를 치고 싶다고 생각하면 주말에 통기타를 사서 주민센터 통기타 야간반 강좌에 등록한다. 신기하게도 분기별 접수 기간이다.
3. 직관형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살다보면 어느날 의미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을 흐름대로 부지런히 받아적다보면 글 한편이 완성되어 있다. 퇴고를 하고 나면 앓던 생각 하나가 정리되어 나온 느낌이다.
4. 감정형
갈등(너 늦는다고?), 불편한 부분(어디 앉아서 기다리지?) 을 맞닥뜨리면 원래 계획을 토대로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생각하기보다 의미부여를 하려고 한다.
이런 내게 기다림이란 무엇인지를 말해보고 싶은 거다.
기다림 단어를 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나오는 결과들은 한마디로 시적이다.
“기다림” 연관된 것은 은은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부터 사랑과 결합된 글, 이미지, 마침내 얻게 된 성공 등과 관련시켜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또 '미학' 이라는 말과 연결시켜 놓기도 한다.
정여울 작가가 2016년에 쓴 책 서평 중에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에 기다림의 가치'에 보면 기다림을 보존해야하는 가치라고 서술해놓았다. 이처럼 기다림은 미덕과 연결되거나, 고통이 동반되지만 아름다움과 연결되는 예술 승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좋은 의미로 자리잡았다.
의미를 중시하는 캘리그래피 영역에서도 작품을 쓰기에 아름다운 소재이다. 누군가를 기다린다,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응답을 기다린다 등 ; 이 의미들을 기다림이라고 정한 소리가 먼저였을 텐데 누가 이 소리를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기다림이란 단어에 정이 가기는 한다. (정이 간다.)
이렇게 정이 가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요즘 육아 솔루션에서 아이들에게 참을성을 가르치기 위해 "기다려"를 말하고 아이가 기다리게 하는 그 단어이기도 하다.
반려동물 시대를 보여주듯 텔레비전을 켜면 여기저기서 반려동물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는데, 그 속에서도 반려동물에게 "기다려"라고 말하면서 참을성, 적절한 습관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훈련사들이 말하기를 기다려를 말하면서 내가 너의 우위에 있다, 그리고 나는 네가 내 말을 잘 들을 때까지 네가 바라는 것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이 훈련 속에 내포된다고 한다.
동물적인 감각의 서열은 "기다려"를 발음하는 사람에게 주어지게 된다. 앞서 말했던 정여울 작가는 와시다 기요카즈의 <기다린다는 것> 책 서평 속에서 말한다.
상대방에게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은 상대를 기다리게 한다. 연락을 기다리며 줄다리기를 하고, 약속 시간에 일부러 늦어 상대를 노심초사하게 한다.
동의한다. 주로 기다리는 쪽에 있었고, 기다림을 참지 못했던 엔프피의 입장에서 보면 주로 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다리는 쪽)
ENFP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고 있는 나로서는 기다림이 마냥 좋지는 않다. 충동적인 성향이 주된 내게, 의식의 흐름이 곧 생각 전체를 이끌어 행동으로 옮겨지는 시간이 짧은 엔프피인 나에게, 기다림이란 개인적인 교훈과 관련이 깊다. 기다림이 필요한 상황에서 나는 기다리지 않으려고 고민한다. 이때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기다려'를 말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입장과 달리 나도 모르게 기다리지 않고 내 뜻대로 행동하고 나서 항상 경험을 통한 교훈을 얻게 된다. 둘 중의 하나였다. 후회한다. 혹은 내가 맞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무르익기 전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참지 못하는 성향이었다. 그래서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던 경험은 내가 후회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자고 생각한 뒤에 좀더 생각해보고 기다려보자고 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생각이 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니 나는 시작했고, 남들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성장했고, 내가 맞았다.
자, 그럼 첫 질문에 답할 시간이 되었다. 당신에게 ENFP 성향의 친구랑 만나기로 한 날인데, 당신이 오늘 만남에 지각을 할 것 같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깊이 할 필요없다. 만남에 지각한다면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1시간 정도 지각하면 밥을 사라. 15분까지는 봐준다, 사과만 한다면! 아니, 그럼 16~59분까지는? 이라고 물어볼 수 있겠다. 에이 그냥 당신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결정하라! 엔프피는 당신과의 만남을 좋아한다.
나에게 기다림은 어렵다, 그러나 기다림은 정이 간다, 그리고 나는 기다림에 져준다.
때로는 기다리지 못해 후회하곤 하지만 오래 기다린 끝에 깨달으며 기다림에 고개를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