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씁쓸한 이야기
나와 관련된 설명 중에 아직까지도 내가 인정하지 않는 단어
인 싸(이더) insider
인싸란, 사전에 따르면 각종 모임이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인사이더를 세게 발음하면서 다소 변형된 형태로 표기했다.
“나는 인싸 아니다” 라는 말을 ENFP 라고 밝힐 때마다 부연설명했다. 모임의 중심에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이 아니고, 모임에서 주목받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오늘 나의 오래된 스승님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 인싸였구나.’(씁쓸)
내가 인싸인 걸 알게 되니 과거 내 방식들을 떠올려본다.
내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였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 수 없다. 어느 단체나 모임에서든 아웃사이더여도 인사이더가 되고싶은 욕구가 있는지 인지조차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한다. 조용히 있는 것이 좋다거나, 모임에 나가는 것이 오히려 진이 빠진다고 하는 걸 보면. 어떤 사람들은 대화의 주도자가 되니 자연스럽게 모임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내 마음 속에는 무대를 휘젓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광대나 연사가 되어 남들이 나를 보면 웃고 즐거워하고 또는 감동받는 것을 꿈꿨다. 그 열망이 결국 나이 들어 시민 연극을 하게 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었겠지.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동아리 활동 때, 동아리에 들어가면 동아리 막내로 어수룩한 후배로 보고 배웠다. 동아리 중심에 있는 선배들을 보면서 참 멋지다 여기면서도 나는 명예나 단체장에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열심히 활동했다. 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의 성취감, 선한 일을 한다는 자긍심,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만족감을 느꼈다. 어느덧 내 삶의 한가운데로 옮겨온 동아리 활동을 1순위로 손꼽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내일 내야하는 과제는 포기하더라도 모임의 활동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나갔던 때도 있었다. 몇년 후 내가 경력이 생기고 동아리가 운영되는 방식을 충분히 익힌 후 더 봉사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겨울 이면 뽑는 새로운 부장 자리를 두고 단체 유권자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였다. 그런데 다행히도 후보자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얻은 부장 직함을 달면서 단체의 중심에서 활동을 했다. 처음이라 잘 못하는 것도 있지만 동아리 성격을 모르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후배들에게 엄하게 굴고 그랬다. 그게 문제였다. 결국 권위적인 부장이 되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 부장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팀원들이 못마땅했다. 내가 생각한 바가 맞다는 확신에 내 머릿속 그림대로 하지 않는 후배들에게 감정을 실어서 혼내기도 했다. 나보다 앞선 부장들이 지키려 했던 역사와 전통을 보면서 나도 그것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와 사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ENFP로서 사회적으로 활동반경을 넓혀가며 중심에 서서히 접근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한다.
나, 은근히 인싸, 맞네.
모임이나 단체에서 못 이기는 척, 나설 사람 없으면 나서서 행동했었으니까. 나보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그 기회를 가져가면 조용히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못 이기는 척 내가 나섰으니까. 내가 가슴에 남겨둔 말들은 무의식이 원하는 말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대를 만난 영웅.’
평화 시대에 영웅은 나서지 않으니까. 조용히 살아가니까. 난세에 영웅이 나서니까. 어릴 때는 누구나 그렇듯이 히어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면 인간은 대개 은근히 인싸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인가.
조용히 나서서 “내가 해결할게.” (멋있음.)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철이 들기까지는 조용히 있다가, 자격 조건 (경력 등)이 갖춰지면 중심 역할에 슬며시 도전장을 내미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감투를 쓰면서 그 단체에서 뭔가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 그것이 인싸일까. 중심에서 활동하고 싶어하는 것.
다시 조용히 나를 들여다본다. 오늘 내가 이번에도 못 이기는 척 직장에서 부장을 달았다. 출세길에 부장이라는 역할을 맡으려면 책임감과 그에 맞는 능력이 필요하고,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출세길을 달리는 것이라면 동료들과 경쟁하여 얻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내 직업에서 부장은 피하고 싶은 직함이다. (출세나 점수가 필요한 분 제외)
가끔 멋진 부장들을 본다. 나는 그런 부장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이번에 또 은근히 나섰다. 부장할 사람 없으면 내가 우리 팀에서 경험이 가장 많으니 어렵진 않겠지, 하며 “할 사람 없으면 할게요.” 했다. 권위적인 부장이 아니라 민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시대의 요구를 바탕에 깔고.
그런데 최근 들어 회의를 하면서 내가 그린 그림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이는 왜 말을 안 하지, 같이 하면 좋은데. 자기 뜻을 내세우는 건 좋지만, 나는 저경력 시절에 단체의 뜻에 따라서 내게 어색해도 해보면서 지금의 경력과 통찰력도 얻게 되었고.’
회의가 끝나고 스승님께 전화를 눌렀다. 스승님과 가볍게 시작하다가 회의 이야기를 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분위기로 부장으로서 쫌 이야기해야되지 않냐고. 스승님은 그랬다. 권위가 있는 부장과 권위적인 부장은 다르다고. 순간 아찔했다.
“아, 권위적인 부장. 스승님,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저는 어렸을 때 선배들에게 들은 말을 고분고분 듣고, 그 전통을 지키려고 후배들을 혼냈어요. 그 후에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래. 생각해보면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권위적인 선배, 부장이 되는 길은 내겐 쉬웠다. 내 성격대로, 내가 선배들에게 익힌대로, 동아리에 애정을 쏟고 전통을 지키려다보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는 길이었다.
‘야, 너 왜 내가 했던 대로 안 해!’
내 마음 속에 있는 꾸지람의 소리는 이것이다. 내가 체득한 대로 전통을 지키려 인사이드에 슬며시 발을 들여놓으며 인싸의 권위를 끌어왔다. 부장, 그리고 내가 여기서 먹은 경력. 권위는 남들이 인정하는 것인데, 나는 인싸이드에 들어와서 권위를 끌어다쓰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권위적인 부장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스승님께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 저는 그동안 ‘허수아비 부장’이 되고 싶다고 했었어요. 제겐 권위도,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도,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권위적인 부장이 되어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군요. 그러니까 ‘허수아비 부장’이 되는 것은 권위를 끌어다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군요. 제가 부장이 되어 지키려고 하는 것들을 내 고집대로 밀어붙이다보면 제 말들이 권위적이고, 강압이 될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어요. 전 오늘부터 노력해야겠어요. 허수아비 부장이 되도록.”
세상에, 권위적인 부장은 쉽게 되고, 허수아비 부장은 노력해야 되는 것이라니.
인싸가 되려는 사람,
인싸인 사람들은
자칙
권위적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명상 말씀 끝.
에필로그…
며칠 뒤 허수아비 부장하려다가 결국 나는 감정적으로 호소했다. 저 많이 힘듭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