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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IBS Sep 27. 2015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사람들

왜 다들 까만점퍼를 입고 있었을까

극한직업은 짧은 미니다큐다. 예전에 EBS  원서접수했을 때 처음 접했다. 그래도 다큐 몇 편은 보고 지원해야 할 것 같은데 뭐 쉬운 거 없나 찾다가 보기 시작했다. 극한직업의 종류는 다양했다. 참치 해체사, 의사, 유해동물포획단 등. 접해보지 못한 영역들의 극한 상황은 흥미로웠다. 어쨌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접하는 스마트폰 너머의 남 얘기였으니까. 안전한 상태에서 타인의 위험을 소비하는 경험은 시간을 때우기에 꽤 괜찮다.


집에 내려와 지루한 일과를 보내며 침대에 누워있다가 심심해서 유튜브를 켰다. EBS 극한직업 <수지접합병원> 편이 눈에 뜨였다. 수지접합이라면 손가락이 잘린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분야가 아닌가. 재밌겠다 싶었다. 의료분야의 이야기는 나름의 특성상 내보내는 장면들(수술 장면 등)이 전해주는 긴장감이 있다. 이전에도 극한직업에서는 의료분야의 이야기를 종종 다뤘다. 이번에도 기대를 갖고 시청했다. '기대를 갖는다'니, 어쩜 이렇게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지 스스로가 약간 혐오스럽다. 어쨌든 그랬다.

시작부터 너덜너덜해진 손가락이 전시됐다. 부분 흑백처리가 되긴 했지만, 참상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약간 흐릿하게 보이는 흑백필터 너머의 손가락은 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비어 있는 부분도 보인다.  '으으' 얼굴은 찌푸려지고, 괜스레 손가락을 더듬어 본다. 그래도 시선은 화면에 고정돼 있다. 왜 다쳤냐는 의사의 질문에 아주머니는 프레스 기계에 다쳤다는 말을 했다.


프레스 기계라니, 마음이 찌부러졌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이야기다. 손가락 잘릴 일이 뭐가 있을까. 프레스 기계, 가공기계, 절단기계. 손가락이 잘릴 위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장에서 이런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이다. 이후에 손가락이 다쳐서 응급실에 실려오는 사람도 대부분  빛바랜 검정 작업 점퍼를 입고, 싸구려 목장갑을 끼고 나타났다.

절단 사고를 일으키는 기계는 다양하다. 프레스, 절단기, 전단기, 연삭기, 둥근톱 등. 특히 많은 것은 프레스다. 프레스를 사용할 때는 위험한 부분에 가까이 가야 하는 작업이 많다. 위험부위에 작업자의 신체 노출 횟수도 빈번하다. 단순 반복 작업이 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불안전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금형 설계 제작 시 안전성보다는 경제성을 우선 고려하여 만들어진다.  ('손가락 절단시 응급처치 기법' 참고, 한국산업안전공단 경기서부지도원 안전보건팀)


2014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절단/베임/찔림 재해는 전체의 8.6%로 총 7,802명이었다. 적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사도 제대로 나오는 게 없다. 오마이뉴스 기사만 2-3개 정도 나왔던가. 이 분야에 들어오려는 의사도 손에 꼽힌다고 한다. 힘이 없으니까 주목하는 사람도 없고, 돈이 없으니까 고쳐주려는 사람도 적나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물론 이유가 꼭 그것 뿐은 아닐 테다. 그래도 착잡함을 가릴 길이 없다.  

손가락 절단은 생물학적인 죽음과는 그리 상관이 없다. 하지만 사회적 삶에는 치명적인 위기다. 안 그래도 가진 건 몸뿐인데, 가장 중요한 몸의 일부가 망가진다. 너덜너덜해진 손가락의 살점을 꿰매는 시술을 받던 청년은 수술 중인 의사에게 일은 할 수 있을지 물어본다. 적어도 6주는 일을 쉬어야 한다고 말을 하니 표정이 착잡하다. 어린 딸과 아내를  몽골에 두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는 손가락 세 개를 잘라내야 한다. 한국에 온 지 고작 8개월이었다. 잘려나간 건 비단 손가락뿐만이 아니다. 삶이 잘려나간다. 나름대로 그려봤을 소박한 미래도 잘려나갈 위기에 처한다.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는 마음이 아파 울었다.


험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난마저 험난하다. 우리는 정말 같은 사람으로 태어난 게 맞을까. 평등하게 존엄한 삶을 살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뭐가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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