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분보남보, 반쎄오

향의 중첩

by CHAIBS

하롱베이 다녀와서 저녁 먹으려고 호텔 직원이 추천해 준 집으로 갔다. 호텔에서 5분 거리다. 이름으로 외울 자신이 없어서 주소로만 봤다. 67 Hang Dieu, 79 Hang Dieu. 여기는 뭐가 맛있다고 설명도 해 줬는데, 직원분이 하는 영어를 다 알아듣기 어려워서 그냥 맛집이다... 정도로만 기억해 뒀다. 저녁에 한 곳을 방문하고, 마지막 날 점심을 다른 한 집에서 해결하는 게 계획이다. 둘 중 맛있는 집이 있으면 마지막 날 저녁으로 한 번 더 가는 걸로.


하노이는 야간에도 시끌시끌하고 복작복작해 좋다. 온갖 식당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어지럽다. 낮과 다를 바 없이 혼잡한 거리에서 지도를 보며 찾아가고 있는데, 여기서 먹으라며 호객행위를 하는 아저씨가 있어 쳐다봤다. 추천받은 그 집이다. 냉큼 들어갔다. 분보남보를 파는 집이다. 조리대에서는 한 명이 소고기를 볶고, 다른 한 명은 분과 채소를 담아 그릇을 세팅하고 있었다. 주문하니까 거의 바로 나온다.


분보남보는 일종의 비빔 쌀국수다. 샐러드에 국수와 소고기를 비벼먹는 음식. 샐러드 파스타와 간장 비빔국수 그 사이 어딘가의 맛. 단짠이 조화롭다. 분짜와도 비슷한 느낌이 있는데, 견과류 토핑과 마늘 후레이크 같은 게 잔뜩 들어가 있어서 고소한 맛과 바삭바삭한 식감까지 더해진다.


가격은 여타 쌀국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저렴하다. 6만동이니까 3천원. 편의점에서 파는 공산품들은 대체로 한국이랑 큰 차이가 없지만 식당만 가면 정말 드라마틱하게 차이가 난다. 하다못해 밥버거도 메뉴판 아래쪽에 있는 거 시켜 먹으려면 3천원쯤 써야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음식이 2-3천원밖에 안 할까. 이것도 맛있는데, 같이 시킨 ‘반 바오’라는 빵이 진짜 맛있었다. 처음엔 덤플링이라고 쓰여 있길래 ‘만두인가?’ 싶어서 시켰다. 젓가락으로 쿡 찔러 찢어보니 아무것도 없는 그냥 튀긴 빵이라 실망했다. 버리긴 아까워서 한 입 베어 무니 고소하면서 향긋하다. 추가로 몇 개 더 사가려고 했는데 다 팔려서 없다더라.



추천 식당 중 다른 하나는 분보남보 옆집이다. 마지막 날 점심을 이 집으로 잡았다. 처음 먹었던 반쎄오에 조금 실망했던 터라 맛있는 반쎄오를 먹겠다는 열망이 가득한 상태였기에 우선 반쎄오부터 하나 시켰다. 만날 국수만 먹고 다녀서 한 그릇에 10만동 넘어가는 비싼 돼지고기 음식도 하나 추가했다. 그래 봐야 5-6천원 수준인데, 만 단위가 기본이다 보니 자꾸 돈을 많이 쓰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찜찜하다.


조금 기다리니 향과 색이 다른 야채가 한가득 담겨있는 소쿠리를 건네준다. 이어 엊그제 먹었던 그것과 때깔과 두께가 다른 반쎄오를 가져다준다. 처음 먹어본 그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맛있었다. 같이 시킨 구운 돼지고기(아마 삼겹살)도 맛있었는데, 색다른 맛의 충격이라는 점에서는 반쎄오가 훨씬 위다.


짭조름한 라이스페이퍼에 향긋한 채소들을 얹고, 새우와 돼지고기, 숙주를 품은 채 바삭하게 구워진 반쎄오 한 조각을 얹어 돌돌 만다. 새콤달콤한 느억맘 소스에 찍어먹는다. 여러 가지 식감과 맛, 향이 느껴진다. 이 조화로움에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채소다. 한국에서 야채라고는 만날 채 썬 양배추나 곁들여 먹었는데 수준이 다르다. 하노이가 채식주의자들이 여행하기 좋은 도시라더니 이유를 알 것 같다. 소쿠리에 나온 채소에서 향긋한 이파리를 똑똑 떼어내어 차곡차곡 쌓아 생기는 향의 중첩이 좋다. 이걸 못 먹고 출국했다면 진짜 억울했겠다. 그래서 하노이를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로 이 집을 다시 찾아 한 번 더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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