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를 꿈꾸지만
출근한지 일주일이 조금 더 지났다. 방송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1 리소스가 많은 방송사에서
2 영상 콘텐츠 중심의 뉴미디어 프로젝트를 하는데
3 궁금했던 뉴스랩 펠로우십 수료생들과 함께 작업하는 거고
4 방송사는 집에서 가까워 출퇴근이 편한데
5 이미 잡혀있는 일정에 대한 배려를 해주기로 했고
6 3개월만 하면 되는 단기 프로젝트이며
7 현재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는
내 상황에 맞았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뉴스, 뉴미디어, 혁신 어쩌구 저쩌구'라며 떠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필드에서 결과물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다. 그간 필드에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미디어-콘텐츠-플랫폼을 글감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훈수 두는 역할이 메인이었다. 여기에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내가 실제로 해 보지도 않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고, 그런데도 일이 그 따위로 굴러가는 데는 대체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알고, 알면서도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고, 어느 수준의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지금 담당하는 역할은 스크립트 1차 책임? 정도 된다. 일 시작한지 3년 정도 된 주제에 이런 일을 맡았다는 게 사실 좀 그렇긴 하지만, 이미 업계의 전반적인 관행과는 따로 놀아야 하는 길을 가고 있으므로 뭐 대수인가 싶다. 현재 이슈를 고르는 일, 스크립트를 작성하는 일을 주도하며 그 외에 연출회의, 촬영 등을 돕는다. 콘텐츠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전반적인 시간 관리 작업도 같이 하고 있다. 아직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라서 이 정도 일만 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1순위 과제는 영상 프로그램을 익히는 거다. 나 빼고는 다들 할 줄 아니까 물어볼 사람도 많아 배울 환경도 좋다. 조금 해볼까 하고 금요일에 퇴근하면서 촬영 파일을 몇 개 가지고 왔는데 얼마나 만져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글을 좋아한다. 그간 영상을 배워야 겠다... 생각만 했지, 실제로 실행에 옮겨본 적은 없다. '영상은 어떤 감각의 영역일 것 같고, 내가 해도 차별성을 가질 수 없겠다' 싶어서 시작도 전에 포기했다. 장기적으로 봐도 글 쓰는 일 하고 싶은 나에겐 문장 하나의 전달력을 고민하고, 좋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스킬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집단에서 기본적인 수준도 못하는 건 (개인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게 안 되면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분업화가 필수인 팀 프로젝트다. 프로젝트가 크면 남이 뭐 하는지 몰라도 돌아갈 수 있어야 하지만, 비교적 규모가 작으면 서로가 하는 일을 이해하는 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이다. 원활한 분업화는 다른 단계에서 팀원들이 하는 일의 성격과 느낌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에 달려있다.
대학 다닐때 기를 쓰고 조모임이란 조모임은 최대한 피해놓고 이런 말을 하는게 웃기긴 하다. 당장 면접 같은 장소를 가서 협업 잘 하냐고 물어보면 '저는 협업 싫고 혼자하는 거 좋아합니다' 당당하게 떠들고 다녔다. 왜요? 라고 물어보면 '저는 모든 일정을 제가 컨트롤 할 수 있어야 맘이 편합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거는 뭐 기본적으로 남을 못 믿는다는 말인데 인성 무엇. 사실 내가 짐이 되는 게 무서워서 피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팀 프로젝트 싫어해도 이걸 안하면 커리어 자체를 쌓기가 어렵다. 장기적으로 혼자 놀 수 있는 프리랜서를 꿈꾸더라도, 지금 당장은 팀 프로젝트를 잘 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방법론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프로젝트는 모든 구성원이 동시에 일을 진행해도 괜찮다. 전체의 각 부분이 비교적 독립적으로 존재하면 따로 일해도 된다. 이런 방식에서는 조율자의 배분능력이 중요하다. 구성원 능력을 감안하고, 각자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수준으로 일을 쪼갠다. 일차적으로 완료가 되면 후작업을 통해 필요한 수준의 통일성을 부여하면 끝난다. 합체로봇 같은거다. 혼자서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뭉쳐서 더 커다란 효과를 낸다. 대체로 기획기사 같은 작업이(일반적인 예시는 아니지만 당장 생각나는 게 이것...)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순차적으로 작업물이 넘어가며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팀 프로젝트가 있다. 촬영이 그렇다. 현재 우리 팀의 작업 흐름은 다음의 순서를 따라간다. 중간중간 회의를 빼고도 이 정도다.
이슈선별
스크립트 제작
촬영
자료 찾기 + 컷 편집
종합편집
모션 / 디자인 작업
퍼블리싱
이전 단계에서 마무리가 안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넘겨주고, 넘겨주고, 넘겨주는 방식이므로 내버려두면 단계별 렉이 걸린다.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서는 어디에서 적절하게 단계를 쪼갤 수 있을지, 자기 단계가 아닌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노는 인력은-어떤 종류의 작업을 해야-전체적인 작업의 속도를 줄일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중간에 있는 한 두 단계의 작업 속도가 빨라진다고 전체적인 작업 시간이 빨라지진 않는다. 다음 단계들이 그대로면 어차피 결과물이 나오는 시점은 같다. 하나에서 50분 줄이는 것보다 각각에서 5분 줄이는 게 결과적으로 낫다.
그래서 다른 팀원의 작업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부드럽다. 자기가 맡은 작업만 알고, 그것만 잘 하려고 하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시간만 오래 걸리고 만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다고 꼭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단계별-유기적 구성을 통해 계단이 아니라 경사를 만들어야 한다.
결론은 영상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것. 폐 끼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지만 이 외에도 배운 게 많은데, 그건 다음번에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