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랑 난 그릇이 다른 것 같아
어렸을 때의 나는 운동은 못하고 공부는 잘하는, 그런 전형적인 범생이였다. 공부를 잘했다는 건 꽤 큰 장점이지만, 운동과 공부를 둘 다 잘하는 친구 옆에 있으면 스스로가 좀 찌질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살아온 남자애들에겐 운동이나 게임이 꽤 중요했다. 인싸 같이 놀고 싶으면 원만한 교우관계에 운동 하나는 잘하는 게 필수 조건. 안타깝게도 나는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축구를 했다 치면 중앙선을 넘어가지 못했다.
수비수. 너무 싫은 포지션. 그럴싸하게 전략을 짜고 4-3-3이니 4-2-3-1 같은 소리 하는 축구에선 안 중요한 포지션이 없지만, 애들끼리 공 던져주면 우르르 몰려가는 공놀이에서 수비수란 그냥 못 하는 아이들을 지칭하는 다른 말이었다. 뒤에서 발 끝으로 모래나 긁으며 낙서나 쓰고 있다가 공이 이 쪽으로 온다 싶으면 주위에서 조금 뛰는 척하는 포지션. 세상 일도 그렇지만, 위치의 중요도에는 차등이 있다. 중요한지 아닌지가 어떻게 나눠지지 않냐. 당연히 나눠지지. 초등학생 축구에서 공격과 수비는 특히나 명확하게 쪼개지는 성질의 것이었다.
운동은 잘하고 싶지, 축구는 이미 늦은 것 같지. 그래서 중학교 들어가서 농구를 하려고 했다. 반에서 농구 좋아하는 애는 서른 명 기준 3-4명도 안 됐다. 조금만 열심히 해도 잘하는 척할 수 있었다. 5명이 뛰는 농구 특성상 잘하는 한 두명만 재밌게 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골 넣을 기회를 꽤 잡을 수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운동에 재미를 느꼈다. 집 근처 도서관 옆엔 문화센터라고 부르는 체육관이 붙어있었다. 농구공 가져가서 공부하는 시간 앞이나 뒤로 연습했다. 얼마 안 되는 용돈 모아 나이키 농구공도 하나 장만했었다.
거의 매일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다 보니 또래 중에는 그래도 조금 하는 수준 정도는 됐다. 노력의 결실도 거뒀다. 중학교 체육대회 날. 내가 반에서 대표 선수 중 한 명으로 나가게 됐다. 고작 중학교 반 대표인 거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떤 마일스톤을 하나 달성한 기분이었다. 축구 수비수 출신은 대체로 다른 종목에 가도 쩌리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시골의 작은 학교라 반도 세 개 밖에 없었는데, 그 대회가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멋있게 골도 막 넣고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수비하던 애가 뛰어다니기에 학교 체육대회는 너무 큰 장소였다. 넓은 풀코트를 수많은 동기생들이 둘러싸고 구경했다. 하프라인만 넘어가도 심장이 막 쿵쿵거렸다. 골대로 공을 던지는 거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운 상황. 초등학생 때 축구하면 수비를 보던 것처럼 경기를 했다. 내 손에 공이 들어오면 큰 사달 나기 전에 돌려버렸다.
가장 쉽고 안정적으로 골을 넣을 수 있는 레이업 하나도 시도를 못 해봤으니 말은 다 했다. 슛 정확도가 떨어질수록 레이업으로 쏘는 게 안정적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애매한 곳에서 링에 들어가지 않는 공을 던졌을 뿐, 단 한 번도 레이업을 시도하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 사이를 파고 들어가서 슛을 넣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안 났다. 문화센터에서 농구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반코트 뛰거나 훨씬 덩치 크고 힘이 센 아저씨들과 할 때도 이렇진 않았다. 근데 그 체육대회라는 부담감이 레이업 하나를 못 올리게 만들었다. 같은 반 친구가 왜 레이업을 안 올리고 슛을 던지냐고 한소리 했다. 결국 경기 끝날 때까지 한 골도 못 넣었다. 그게 수비수 출신의 그릇이었다. 농구는 그닥 잘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축구는 잘했던 '핵인싸' 친구는 교체로 들어와서(원래 후보였는지, 그냥 자기가 답답해서 뛰고 싶었던 건지는 기억이 안 난다) 코트를 운동장처럼 뛰어다녔다. 잘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확실히 당당하게 휘젓고 다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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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릇이 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했다. 꿈을 크게 꾸거나, 더 먼 곳을 보는 것도, 더 큰 리스크를 지고 더 큰 리턴을 얻는 것도. 그런 그릇이 되는 애들이나 가능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갈수록 짙어만 간다. 대학 와서 외고 출신 친구들을 만났을 때 절절하게 느낀 점인데, 걔네들은 나랑 그릇이 달랐다. 꿈의 크기와, 밀도와, 다채로움에서 큰 차이가 났다. 그런 그릇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경제적인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았다. 짧은 인생 경험하면서 만난 다수의 케이스가 그랬고, 일을 하면서 그런 사례를 더 많이 접했다.
물론 이 문제를 극복할 방법은 굉장히 쉽고 명쾌하다. 농구를 했던 것처럼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보고, 매일 슛 연습을 한 것처럼 꾸준히 노력하는 것. 실패와 작은 성공을 반복하는 것. 그릇의 크기가 고정되진 않았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릇을 최대한 키워보려고 하는 태도.
문제는 나보다 앞서 있는 상대방이 나의 성장을 기다려 주진 않는다는 데 있다. 차이는 유지되거나,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기도 한다. 별 수 있나, 방법이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 결국 이 문제는 작은 그릇을 가지고 끙끙거리는 과정에서 '있는 집 자식' , '될 놈' , '재능충' 들을 마주치며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현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입맛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