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맥북프로
IT매체에서 2년 반 일했다. 이 바닥이 유난히 더 그런 것 같은데, 애플 사용자들이 정말 엄청나게 많다. 애초부터 애플 제품은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전자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써서 그럴까? 아무튼 이 사람들 사이에서 윈도우-안드로이드를 사용하다 보니 애플 제품에 대한 괜한 반발심이 생겼다. 아마도 애플 유저들이 보여주는 윈도우-안드로이드에 대한 무시 비슷한 평가가 맘에 안 들었던 것 같은데... 다들 맥에 한 번 적응되면 돌아갈 수 없다는 거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싶으면서도 '정말 그렇게 되어 버린다고 ㄷㄷ?' 싶은 불신과 호기심을 반반씩 가지고 있었다.
IT 업계에 있으면서 괜한 객기로 윈도우와 안드로이드를 잘 쓰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갤럭시를 쓰다가 바꾼 핸드폰도 구글 레퍼런스폰인 넥서스 5x 였고, 윈도우 10을 가장 잘 쓸 수 있다는 투인원 PC. 그것도 잘 쓰지 않는 브랜드인 HP의 스펙터 x360을 사서 썼다. 쓰는 것도 그냥 쓰지 않았다. 안드로이드-윈도우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툴, 맥의 장점이라는 것들을 윈도우-안드로이드 환경에서 최대한 구현하려고 진짜 별 것들을 다 찾아봤다.
윈도우 터치패드를 좀 더 쓸만하게 만드는 프리시전 드라이버
다중 데스크톱 환경을 편하게 쓸 수 있는 3-4 손가락 제스처 설정
스마트폰의 가상 화면을 PC에 띄워 편리하게 파일을 이동하는 삼성 플로우
윈도우 잠금해제를 핸드폰 지문 센서로 대체
원활한 터치패드 사용을 위한 터치화면 온오프 프로그램
윈도우 기본 폰트 변경 프로그램
등등 이거 말고도 몇 개 더 있을 것 같은데 이 정도만. 본론도 아닌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건 지금부터 쓰는 글이 상당히 객관적인(?) 위치에서 적는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애플 제품 쓴지는 1년 반 넘었다. 아이폰, 애플워치, 에어팟 다 쓰고 있다가 맥북 구입한지 대략 한 달쯤 됐다.
왜 애플로 싹 갈았는지는 바로 아래의↓ 글에서 확인
맥북을 나중에 산 이유는 윈도우 노트북에 대한 부심을 버리지 못해서 영상편집용 노트북이 필요해져서다. 가지고 있는 노트북이 간단한 영상 편집은 가능하지만, 시키면 거의 뭐 죽는 소리를 낸다. 에펙도 좀 배우고 싶고 해서 노트북을 바꿔야 하나 고민했는데, 윈도우 노트북은 한국 살면서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맥북 프로를 추가로 데리고 왔다.
이 노트북을 처음 만져봤을 때의 느낌을 얘기해야겠다. 당연히 맥북을 처음 만져본 건 아닌데, 이게 또 자기 물건으로 만져보면 느낌이 다르다. 솔직히 이 물건이 전반적으로 예쁜 무엇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처음 만져봤을 때는 정말 감탄의 연속이었다. 아니 고작 노트북인데 이렇게 예쁠 일인가. 디스플레이는 왜 이렇게 좋은 것 같고, 사운드는 또 왜 이렇게 풍성한지. 다들 나쁘다고 하는 키보드도 잘각잘각 거리는 느낌이 세련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건 다른 애플 제품들을 만져봤을 때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첫인상에서 압도하고 시작하는 게 있음. 일단 만져본다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맥북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동급의 노트북보다 몇 십만 원이 더 비싸서다. 그 가격만큼의 가치가 있느냐! 그렇지 않다! 가 사용자들끼리 주로 싸우는 이유인데, 둘 다 잘 쓰고 있는 입장에서 정리하자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 다만 이건 노트북이 살면서 좀 중요한 물건이다 싶은 사람 한정이다. 노트북이 그냥 여러가 지 물건 중에 하나라거나, 기본적인 수준에서만 쓸 사람이라면 본인에게 필요한 스펙 기준으로 동급의 윈도우 노트북을 사는 걸 추천한다. 한국에서는 꼭 맥북을 써야할 때라는 건 없지만, 꼭 윈도우를 써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건 반드시 찾아온다.
맥북의 장점은 대체로 노트북을 끼고 살 때 더 빛을 발한다. 예를 들면 이런,
타사 노트북과 비교하기 어려운 소프트웨어의 아름다움
마찬가지로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좋은 스피커
윈도우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기기 간 연동성
사람 빡칠 일이 줄어드는 적은 오류
좋게 말하면 완성도가 무척 높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가성비 떨어지는 쓸고퀄인 셈. 맥북을 사기 위해 돈을 몇십만 원 더 내야 하는 이유에서 필수적인 어떤 이유 같은 건 없다. 기본 폰트로 맑은 고딕과 굴림을 쓸 것이냐, 애플고딕을 쓸 것이냐를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스피커도 적당히 잘 들리면 되는 거지 서라운드로 들을 필요도 없는 거다. 애플의 장점이라는 기기간 연동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물건은 조금 더 나을수록 조금 더 비싼 게 이치고, 맥북은 그런 면에서 더 비싼 값어치를 한다. 조금 더 나은 부분들을 확실하게 충족시켜준다. 맥북을 한 번 써보니까 알겠다. 맥북의 비싼 가격이 사과 마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잘 모르면서 하는 소리다. 예쁘긴 함;; 맥북과 윈도우 노트북을 비교하면서 CPU랑 그래픽 카드 같은 성능적인 차원에서만 비교하는 것도 좀...포인트를 제대로 못 잡았다고 본다.
맥북은 별로 상관도 없어 보이는 스타벅스랑 자주 엮인다. 맥북의 수많은 별명 중 하나는 '스타벅스 입장권'인데, 사람들이 카페에서 허세부리려고 맥북 산다는 비하의 표현에서 유래했지 싶다. 맥북이나 스타벅스 둘 다 별 거 없는데, 비싸기만 비싸다는 거다. 카페를 많이 가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텐데, 만만하게 믿고 선택할만한 카페가 스타벅스다. 일 하기에도 좋고 미팅하기에도 좋다. 전반적인 환경이 가장 편안하다. 그런 면에선 맥북이랑 비슷한가 싶기도 하다. 나머지 평가는 각평으로 대체. 비교의 기준은 윈도우다. 참고로 내가 쓰고 있는 맥북은 프로15인치 2018 버전 기본형이다.
디스플레이와 스피커 : 디스플레이가 동급 대비 대체로 훨씬 밝고 선명하다. 선명한 건 소프트웨어 빨이 좀 있는 것 같은데, 넷플릭스 틀어 놓고 보면 대단히 차이 난다는 느낌까진 들진 않았다. 스피커는 비교하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다른 노트북은 '아 저 뚫린 스피커 구멍에서 소리가 나는구나' 싶은데 맥북은 서라운드로 들림. 요새 다들 넷플릭스나 왓챠 볼 텐데 굉장히 좋은 넷플릭스 머신이다.
좋은 마감 : 애플 제품 마감 자체가 타 제조사보다 낫다. 그냥 만져보면 훨씬 더 견고하게 잘 만든 물건이라는 게 느껴진다. 다만 요새 다른 윈도우 노트북의 하드웨어 마감이나 디자인 수준도 많이 높아졌기 때문에 갈수록 격차가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프리미엄 라인업인 서피스나 XPS나 씽크패드, 스펙터는 나름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발전시키고 있다. LG그램이나 삼성 갤럭시북은 개인적으로 좀 덜 예쁘다 생각하는데, 대신 엄청 가벼우니까 뭐 ㅇㅇ
적은 오류 : 한 회사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다 만들어서 그런지 안정성이 높다. 노트북은 하나로 보이지만 사실 다양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물건이다. 키보드, 마우스, 트랙패드, 디스플레이 등 여러 입출력 장치가 있다. 이 입출력 장치를 중앙에서 처리하는 보드에 물려 쓰는 건데, 이걸 잘 쓰기 위해서 '드라이버'라는 게 존재한다. 일종의 통역장치다. 물리적으로 들어온 신호를 중앙에서 처리하고, 그 결과를 다시 사용자가 볼 수 있게 돌려줘야 한다. 근데 이게 매번 원활하게 이뤄지진 않는다. 윈도우에선 뭘 업데이트 하래 가지고 했더니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보통 MS에서 업데이트를 진행하면, 제조사에서 맞는 드라이버 등등을 업데이트를 해 줘야 하는데, 이게 매번 원활하게 되는 게 아니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나는 윈도우 터치패드를 잘 쓰자고 프리시전 드라이버를 잘 설치해서 썼는데, 이게 어느 업데이트 이후부터 먹통이 됐다. 맥에선 이럴 일이 없다.
애플 기기간 연동성 : 아이폰과 윈도우 노트북을 같이 쓰는 1년 동안 연동성 관련해서는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간 동기화에는 대체로 구글 프로그램을 이용해 왔다. 크롬이나 구글포토, 구글 킵, 드라이브와 구글 독스 같은 프로그램이면 대체로 필요한 동기화는 거의 다 할 수 있다. 이 부분의 툴을 애플 것으로 딱히 대체할 생각도 없다. 구글 프로그램들이 워낙 좋음. 그래서 아직도 아이클라우드는 연락처 백업 용으로만 쓴다.
기기간 연동성이라는 게 그렇다고 해서 별로라는 건 아니고 확실히 좋은 점이 몇 개 있기는 하다. 에어드롭으로 파일을 옮길 수 있다든지, 애플워치로 맥북 잠금이 풀린다든지, 아이폰 사파리로 보던 인터넷 창을 맥북에서 연다든지, 아이폰에서 복사한 걸 맥북에 붙여 넣는다든지, 필요한 사진은 아이폰에서 바로 땡겨올 수 있다든지 등등. 적고 나니까 많기는 많네;; 아무튼 다양한 연동을 제공하는데 이런 기능을 쓰고 있으면 여러 기기를 물 흐르듯 쓸 수 있어서 부드럽고 쾌적한 사용자 환경이 된다. 이런 기능은 노트북을 많이 쓰는 직업일수록 크게 느껴지지 싶다. 윈도우에서도 굳이 구현할 수는 있는데, 애플만큼 매끄럽진 않다.
깔끔한 맥 OS : 깔끔함...별로 할 말이 없네 하여튼 깔끔 ㅇㅇ...
무척 괜찮은 트랙패드 : 윈도우의 터치패드와 비교하면 훨씬 부드럽고 편안하다. 제스처도 실용적인 것들이 꽤 있는데, 확실히 맥에서는 확실히 마우스를 쓰는 것보다 트랙패드가 좋다. 요새는 윈도우 세 손가락-네 손가락 제스처들을 지원하고 있는 등 정밀 터치패드도 많이 발전하고 있는 중이긴 해서 이게 넘어설 수 없는 격차까지는 아니지 싶다. 스크롤이나 부분 확대-축소에서의 부드러움은 별 차이가 없음.
형편없는 마우스 : 다들 맥북에서는 마우스가 별로 필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맥북에서 마우스 사용이 형편없어서 그렇다. 똑같은 마우스를 써도 윈도우에선 쾌적한 반면 맥북에서는 이게 뭐지? 싶음. 단적으로 스크롤의 부드러움부터 다른데, 맥북 트랙패드가 스으으윽 하는 느낌으로 내려가고, 윈도우 마우스가 드르르르르륵 하는 느낌이라면 맥북에서 마우스는 드드드드드드득에 가깝다. 이거 조절도 쉽지 않은데, 맥북 기본 스크롤 세팅이 너무 답답해서 스크롤 당 움직임 정도를 올려놨더니 포토샵 가니까 너무 민감에서 못 쓸 정도였다. 매직마우스를 쓰면 좀 다르려나 싶긴 한데, 써드파티에서 너무 폐쇄적인 건 아닌가 싶은 느낌도 있음. 이건 나중에 로지텍 키보드-마우스 리뷰할 때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둘 다 써본 바로는 윈도우에서 훨씬 잘 동작한다.
애매한 키보드 : 처음에 몇 번 눌러보면 잘각거리는 느낌이 색다르다 보니 뭐랄까... 신박하다? 그런 느낌을 준다. 가지고 있는 스펙터의 키감과 비교하면 확실히 별로다 싶긴 하지만, 사람들이 욕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타이핑을 많이 해야 하는데, 키보드가 제일 걱정이라면 어디 매장 가서 한 번 쳐 보는 것 추천.
얕은 키감은 호불호라고 넘겨도, 하나 실드가 안 되는 건 구조상 고장이 잘 난다는 거다. 하루에도 최소 몇 백번, 몇 천 번은 때리는 게 키보드인데 약하면 쓰나. 애플이 욕을 너무 많이 먹다 보니 거의 매해 새로운 버전의 맥북에선 키보드 개선이 들어갔다. 돌고 돌아 결국 가장 최신 버전인 2020년 판에서 다시 2015년 형에 쓰였던 구형 가위식 키보드로 돌아왔음.
의외로 없는 프로그램 : 좋은 프로그램도 많긴 한데, 또 의외로 없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짜증 날 때가 있다. 맥 필수 프로그램이라는 INNA를 받아서 써 봤다. 이거 영상 플레이어인데, 솔직히 카카오 팟플레이어가 훨씬 사용하기 좋다. VLC도 마찬가지. 솔직히 이거 두 개 보고 놀랐다. 이딴 걸 쓰고 있었나? 싶었음. 이런 게 필수 프로그램 소리를 듣는다니 좀 어이가 없다. 맥에서 꿀앱이라고 불리는 마그넷 같은 프로그램도 그렇다. 창을 단축키로 쉽게 분할해서 쓰는 기능을 제공하는 건데, 이거 윈도우에서는 기본 기능이다. 몇 푼 안 됐지만 이걸 돈 주고 사야 한다니.
쓸모없는 터치바 : 딱히 편한 부분은 모르겠는데, 확실하게 불편한 부분들이 몇 개 있다. 원래 펑션키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화면 밝기 조절이나 음량 조절을 터치바에서는 두 단계로 해야 한다. 물론 이걸 해결할 수 있는 pock나 btt 같은 프로그램도 있긴 한데 음...
세상에는 여러 입력장치가 있다. 펜도 있고, 태블릿도 있고, 다이얼도 있고, 터치스크린도 있고. 하지만 이 입력장치들은 정말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키보드나 마우스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그닥 존재감을 드러내진 못 한다. 터치바도 마찬가지다. 그냥 신기한 기술이네 정도? 확인/취소 같은 걸 왜 터치바에 띄우는지 1도 이해가 안 감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