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IBS Jun 02. 2021

'수준이 낮다'는 잣대가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을 때

환장의 콜라보

프로덕트를 만들어 내놓는 일을 하면 함량 미달의 무엇임이 확인됐는데 폐기되지 못하고 나가거나, 나가지 못한 상태에서 상당한 잡음을 만들어 낼 때를 간혹 보게 된다. (지금 내가 속한 곳에서도 말이 나오고 있...어서 생각난 주제임 ㅇㅇ;) 사회생활 그렇게 길게 한 게 아닌데도 이런 케이스를 가끔 겪게 된다.


예전엔 일하던 팀에서 납득이 안 되는 결과물들을 퍼블리시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게 뭐지? 이게 왜 나갔지? 싶었고, 공식적인 회의에서 문제제기도 하긴 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명문화된 규정 같은 걸로 처리될 문제라고 하기 좀 애매하기도 했고, 선례도 없었기 때문에 일을 더 키우지 않고 넘어갔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되는 거다 이거지? 흠 일단 알겠다' 하고 찝찝함을 대충 뭉갠 거다.


이렇게 애매한 합의 혹은 합의 아닌 무언가로 넘어간 문제들은 꼭 나중에 다시 터진다. 앞서 나갔던 그 납득이 안 되는 무엇과 수준이 유사한 무엇이 나왔는데, 이번엔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받은 거다. 이거 당해보면 어이가 없어지면서 짜증이 확 난다. '아니 나도 이번 프로덕트의 퀄리티가 맘에 들진 않는데, 예전엔 암말 안 하고 냈잖아? 근데 이건 왜 안 된다고 하냐? 뭐야 니 맘대로야?'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상품의 퀄리티가 개운하진 않지만 선례가 있으면 공평한 기준이라는 차원에서 이건 나가는 게 맞다고 보는 입장과, 그때 어떻게 했든지 간에 문제가 있는 게 맞으면 안 나가는 게 맞다는 입장이 충돌한다.


전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후자의 주장은 앞으로 기준을 제멋대로 적용하겠다는 선언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암만 봐도 똑같은 데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 그럼 우리의 기준이라는 건 없고 그건 사실 네 기분이구나? 근데 납득을 하라고?'


후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전자의 주장은 퇴행적인 어깃장이다. '아니 그니까 너도 이게 문제라는 건 동의한다는 거 아냐? 근데 옛날에 그랬으니까 이게 잘못된 걸 뻔히 알면서 그렇게 가자고? 그럴 순 없는 거 아니냐?' 는 거다.


얼마 전까지 빠져서 줄창 시켜먹던 김밥. 계란김밥이 일품이다.


기준인가 기분인가, 이 애매한 문제는 다채롭게 변형되어 적용되기도 한다. 뭐가 있을까... 김밥을 판다고 해 보자. "예전에 김밥 반 줄은 팔아놓고 왜 이번에 한 줄 반을 파는 건 안 된다고 하냐", "김밥이랑 아메리카노도 같이 팔았었는데 김밥과 아이스크림 같이 파는 건 왜 안 된다는 거냐", "저번에도 햄이 빠진 김밥을 판 적이 있으니, 이번에 계란을 뺀 김밥도 팔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등등


서로 기분 상해가며 투닥거릴 무엇은 되는데, 해결할 문제다 생각하고 보면 결론은 조금 심심해지긴 한다. 문제가 있는 상품은 나갈 수 없다. 함량 미달인 걸 알고도 내보내는 것도 일종의 사기다. 그렇다고 입 씻는 건 안 된다. 기준이 일정하지 않았다면 역시 큰 문제니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구성원이든 소비자든 사과할 게 있으면 사과하고, 재발방지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겠고 뭐 그런... 심심하다고 쉽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선언적인 무엇으로 '땅땅땅' 했다고 증명되는 게 아니고, 시간을 두고 실천으로 증명되는 종류의 것이니까. 신뢰라는 게 이렇게 어렵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크랩 제작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